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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간 있으세요?

-수술방 의사의 한마디-


" 오늘 시간 있으세요?. 수술 방 잡아서 수술하고 가시죠!"

 

시간 있냐는 말은 원래 커피 한잔 마시자거나 호감 있을 때 만나자는 말 아닌가.

그런데 수술하자면서 가볍게 말한다. 오늘 시간 있냐고? 




지난겨울 재수술하고 정기 진료를 받는 중에 생긴 일이다. 발목이 부풀어 올라있었다. 어딘가 부딪혀서 그런 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발목 안 수술 자리에 트러블을 일으켜 염증이 생긴 거라며 안을 열어서 염증을 제거하고 다시 봉합하는 수술을 해야 한단다. 오늘! 




 갑작스러운 수술. 수술 방이 차서 진료시간이 끝나는 저녁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허둥지둥 당일 진료를 끝낸 선생님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방으로 나란히 가는

 ‘나는 시간 있는 여자!’ 




순간, 눈에 들어온 건 의사의 머그컵. 그것도 커피를 여러 번 마신 듯한, 커피 물이 진하게 든 머그컵. 머그컵을 보니 그가 보인다. 아하! 누가 씻어주거나 시키는 타입은 아니고, 세제로 꼼꼼히 씻는 타입도 아니고, 물만 넣어서 헹구는 사람일세. 그의 사생활이 읽혔다. 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닌 생활인 의사 선생님의 모습이. 




 세 번째 누운 수술실. 두 번은 전신마취라 기억 불가지만 부분 마취인 오늘은 수술실 분위기가 그대로 읽혔다. 의사와 간호사간에 오가는 대화. 저녁 이후의 일정을 서로 묻고 가벼운 대화가 오고 가는 그런 수술실. 이곳은 젊고 자유롭구나. (이전에  병원 프로그램을 2년 넘게 하면서 수술방과 의사들의 뒷모습을 많이 보게 된 터라 권위적이지 않는 이들의 관계가 조금은 신선했다.) 이렇게 딴생각을 하는 사이, 나의 담당의사가 옷을 갈아입고 들어와 수술개시를 알렸다. 




그런데 수술 바늘보다 아픈 건 마취주사. 마취주사를 찌를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다행인 건 '커피 물이 찐하게 든 머그컵을 든' 그 의사 선생님이 바늘로 찌를 때마다 아픈지를 묻고,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자세히 얘기해 준다는 사실이 안심되었다.  마지막 한 바늘은 마취주사가 더 아프니 그냥 꿰매겠다며 수술을 마무리지었다. 그렇게 다시 곱게 바느질된 나의 발목 



 

한쪽 발을 절뚝이며 혼자 수술실을 걸어 나와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마주친 선생님. 그는 여전히 '커피 물이 든 머그컵'을 소중히 손에 들고 있었다. 낯익은 물건이, 그의 짐작할 만한 사생활이 나에게 위안을 준 하루. 

오늘 시간 있는 여자에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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