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등바등 모으는 돈이 내 인생을 바꾸게 되는 이유
꿈도 없었다. 하고 싶은 일도 많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오늘이 즐거우면 됐다 믿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딱지치기를 하면서 즐거웠던 시절이 그리울 무렵. 뭐가 그리 좋았는지 재밌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속했던 10대는 아주 지극히 평범하고 또 평범했다. 부자? 부자가 되는 건 정말 특별한 사람들에게나 가능하다 생각했다. 한낱 월급쟁이로서 돈을 벌어봐야 월급이고 못 벌어봐야 월급이라 생각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내 손 위에 떨어진 150만 원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내 20대는 그 누구보다 파란만장했고 수많은 도전의 연속이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부자라는 자기 위안을 삼는 가난한 서민에 불과했다. 공부는 그토록 열심히 하라고 배웠고 매 순간 정직하고 바르게 살라는 얘기는 수없이 많이 들었지만 정작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해야 인생이 바뀌는지를 얘기해주지 않는 평범하디 평범한 인생이었다.
시간이 평범하게 흘러간다는 건 꽤나 불행한 일이다. 누군가는 평범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 목표고 꿈이지만 급변하는 세상에서 오늘 하루의 평온한 삶을 지낸 나 자신을 대견하다고 여기며 만족하며 잠들기엔 우리가 겪는 21세기의 변화는 결코 만만치 않다. 불과 10년 전. 그 누가 우리 삶에 스마트폰이 인생의 전부를 지배할 만큼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라 예상했겠는가.
휴대폰이 없어도 평화로운 인생이었고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심장을 울리며 우리 삶의 곳곳에서 더디지만 더지게 흘러가지 않는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살아온 시대였다. 컴퓨터 공학도로서 세상을 바꾸는 화이트해커가 되고 싶어 처음 진학한 컴퓨터 공학 전공에서 코딩과 전문 기술을 배우며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세상은 내가 앞서 깨우쳤던 변화와는 달리 너무나도 더디고 느린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내가 배우고 공부하는 컴퓨터 공학은 이미 사장되어 빛을 보기 어려운 전공 중 하나라 평가됐다.
오래된 지인들과 얘기하다 보면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하는 말을 새삼 많이 꺼낸다. 그때 내가 다른 꿈을 꾸며 편입을 시도하지만 않았더라도 고급인재로 평가받는 컴퓨터공학 전공자로서의 대단한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 말이다. 인생은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매 순간 다른 변화를 만들어가며 살고 있다.
첫 직장을 구하고 꼬박 2년 넘게 일하며 모은 돈은 고작 400만 원 남짓이었다. 전세금 일부를 제외했다고는 하나 실제 내가 벌어 저축한 돈이 천만 원 수준밖에 못됐다. 실제 가용 가능한 돈은 400만 원이었고 나이는 어느덧 서른을 넘겨버렸다. 매 순간 오늘에 최선을 다하며 저축을 통해 자산 증식을 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무작정 모았던 계좌에 덩그러니 놓은 돈을 보며 허탈한 웃음이 지어졌다.
사고 싶은 물건을 사고, 먹고 싶은 음식들을 맘껏 먹으며 풍요롭게 돈을 쓰며 모은 돈이 400만 원이 아니라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며 최소한의 삶을 꾸리는데 필요한 것들만 했었음에도 모은 돈이 400만 원이었다.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인생의 반려자까지 만나 삶을 꾸리기에 나는 형편없었고 부족한 인생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문득 돈이 돈을 벌 수 있는 스노 볼링을 만들어 내겠다며 무작정 생각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1~2%의 이율을 바라보며 은행 이자만 바라보며 저축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첫 투자는 공교롭게도 누구나 그렇듯 급등하는 주식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때마침 총선이 다가왔고 총선 결과에 따라 어떤 주식이 올라갈지 분석했다. 소위 말하는 '테마주'에 털컥 탑승했다. 파도가 일듯 출렁이기 시작했고 사람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1만 원만 되면 흐뭇해서 기분이 좋았다가 -1만 원이 되면 초조해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특히 무엇도 집중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 매 순간 출렁이는 파도가 신경 쓰였고 그 중심을 즐기지 못하니 심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병이 올 것처럼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매일 집에 와서 그날 그 순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수없이 곱씹었고 무엇보다 여전히 내일 급등할 것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차트 분석과 영상을 공부하며 내일을 도모했다.
기업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 어떤 주식이 수혜를 얻어 급등할 수 있는지 전일 좋은 호재가 무엇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했다. 눈 밑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왔고 매일 하루 수십 수 백 번 머릿속에 온통 주식 생각만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옆에서 올바른 투자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오직 돈을 벌 수 있다는 맹목적인 이야기 하나만 가지고 정신이 온통 쏠려버렸다. 살아 있지만 죽어버린 정신상태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나는 내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한 달이 지날 무렵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가상세계와 현실을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온통 휩쌌고 내가 원하는 투자는 이게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모든 행동을 멈춰버렸다. 더 이상 이렇게 가면 수익이 나더라도 내 인생은 불행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뺨을 거세게 때리며 정신 차리라며 스스로를 거세게 질책했다.
공교롭게도 한 달간 주식이라는 세계에 빠지며 3가지 원칙을 지켰던 것이 있었다.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 덕에 일 년 만에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월급의 약 30% 이상은 꼬박 주식 대금으로 예수금을 넣었다. 저축 대신이라는 명목으로 소위 물릴 때마다 한 달에 한 번씩 추가 매수를 하는 관점에서 계속해서 사서 모았다.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돼도 상관없었다. 언젠가는 필히 올라가는 그날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날이 오늘이 아니어도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일 년에 적금 이자 2% 보다 많이 번다는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 투자 방식을 가지고 있다 믿었다.
두 번째, 기업 분석을 하고 투자했다. 최소한 안정적이고 불안정한 기업은 제외를 했다. 혹은 성장산업이나 현재 꼭 필요한 기술력을 내제하고 있는 기업만 선택했다. 사장되었거나 가치가 없는 주식은 제 아무리 저평가가 되어 있다고 해도 관심도 주지 않았다. 만약 갑작스럽게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거둘 수 있는 수익의 범주가 아니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세 번째, 장기적 안목의 관점과 가치를 쫓는다. 오랜 시간 들고 있다 보면 수익구간에서 손실 구간으로 바뀌는 경우도 수없이 많이 겪었다. 위에서 팔고 아래서 다시 추가 매수하는 전략으로 가는 게 맞지 않냐며 수없이 많은 조언을 들었지만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게 저점이라 판단할 근거도 없고 고점이어서 팔아야 할 근거도 없다 믿었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야 한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는데 그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내가 아닐 테고 나는 그저 내가 생각하기에 조금 더 싼 가격이라면 추가 매수를, 현시점에서 뒤 돌아보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 비로소 판매했다. 올라가도 미련이 없을 때 팔아야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세 가지 원칙에 집중하자 돈이 벌렸고 돈이 쌓였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했고 지속적인 수익 발생을 위해 해야 하는 일들에 집착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 마인드가 변화하고 건강하게 생각이 바뀌자 투자 습관도 좋아졌다. 일 년에 채 10일도 거래 버튼을 누르는 일이 없다시피 거래 회수는 줄어들었지만 수익은 수 배가 늘어버렸다.
10년 후 40살, 나의 목표는 우스갯소리지만 '김렌버핏'(김씨 워랜버핏)이다. 매년 10퍼센트, 20퍼센트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키워나갈 것이다. 돈을 버는 데 집착하는 만큼 돈을 쓰기 위해 건강한 생각과 마인드로 돈을 벌 수 있고 더불어 자기 발전과 경제 공부는 매일같이 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돈을 벌기 위해 집착하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더 여유롭고 편안해졌다.
비로소 돈을 좇지 않자 돈이 벌리기 시작하더라.
내가, 돈을 버는 데 여전히 집착하며 살고 있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