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와 엔지니어의 역량이 동시에 요구되는 시대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AI의 시대가 다가왔다. 챗GPT는 하루가 다르게 학습하며 무서운 속도로 업데이트가 되고 있고, 미드저니를 비롯한 생성형 AI 도구들은 점점 실제에 가까운 그림들을 그려내고 있다. 몇 년 내로 연예인의 화보 촬영이 필요 없어질 거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최근의 발전에서 오는 충격은, 이세돌을 꺾었던 알파고의 임팩트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내가 최근 가장 충격을 받은 건 바로 이 영상 때문이다. 바로 'demonflyingfox'라는 AI 아티스트가 만들어낸 '해리포터 발렌시아가'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E39q-IKOzA
해리포터 시리즈의 인기 캐릭터들이 발렌시아가 스타일의 옷을 입고, 실제 주인공의 목소리로 자신들의 트레이드 마크 대사에 발렌시아가를 섞어서 말하고 있다. 조회수가 600만 뷰가 넘은 이 영상 덕분에 발렌시아가는 약 몇 억 원의 홍보효과를 공짜로 누렸다.
심지어 해당 영상의 제작방법이 상세히 공개되어, 해리포터뿐만 아니라 마블, DC, 심지어 각 나라 대통령들까지 발렌시아가를 입고 런웨이를 활보하고 있다(한국에선 침착맨을 활용한 영상도 나왔다). 나도 만들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겨서 직접 테스트를 진행해 봤다. 방법은 챗GPT를 통해 캐릭터에게 어울리는 발렌시아가 스타일링을 제안하고, 해당 프롬프트를 미드저니와 같은 생성형 AI 툴에 입력해 그림을 그려낸 후 영상화를 진행해 완성하는 식이다.
아직 생성형 툴이 익숙하지 않아, 약 2시간을 들인 후 하나의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들에게 발렌시아가를 입혀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YikVmjb2lV0
(위의 해리포터 영상과 다소 퀄리티 차이가 나긴 한다)
이렇게 직접 AI 툴을 만져가며 결과물을 만들고 나니,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키워드가 있었다. 바로 10년 전 유행했던 '융합형 인재'. 그 당시 4차 산업혁명이 뜨거운 키워드가 되면서 문과와 이과의 역량을 모두 갖춘 융합형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며 사회적으로 난리가 났었다. 심지어 대학에서는 융합전공이 생기기도 했고, 그 결과 나는 '문화콘텐츠 융합전공'을 이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 이후 문과와 이과가 결합한 융합형 인재의 소식이나 사례는 보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그 키워드는 머릿속에서 잊혔다. 하지만 이제야 AI 툴을 쓰면서 비로소 느꼈다. 이제는 융합형 인재의 시대가 다가왔다는 것을.
먼저 필요한 것은 문과적 역량이다. 정확히는 '생각하고 질문하는' 역량이다. 챗GPT든, 미드저니든 내가 프롬프트에 명령어를 입력해야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 어떤 것을 그려내고 창조하고 싶은 지다. 이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힘에서부터 출발한다. 나만의 철학, 관심사가 없다면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은 그저 남들을 따라한 카피 수준에서 그친다.
그다음으로 이과적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내가 AI에게 주는 명령어는 코딩을 하는 것처럼 컴퓨터 친화적이어야 한다. 내가 알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을 AI가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정확하게 입력해야 한다. 컴퓨터 언어를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AI툴을 활용한 결과물의 퀄리티가 올라간다.
정리하자면 문과적 역량으로 얻어낸 아이디어를 이과적 역량을 발휘해 정확한 명령어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기획자, 창조자인 동시에 AI와 소통할 수 있는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없어질 직업 중 영상 PD도 상당히 높은 순위권에 위치한 기사를 봤다. 내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좋든 싫든 AI와 놀면서 친해져야 하는 순간이 왔다. 이제 배우지 않는 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