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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Sep 09. 2024

“피곤해 죽겠다”

하루와 하루 사이


일요일마다 집에서 두 시간 걸리는 작은 도서관에 가서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다. 어른들이 목회 활동을 하는 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준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너무나 즐거워서 시간이 순식간에 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철을 두 번 갈아타는데 한 시간 반 넘게 한 번도 자리에 앉질 못했다. 그림책 다섯 권이 든 가방이 너무 무거웠다. 나는 평소에는 자리 욕심이 없는 편인데 이날은 너무나 욕심이 났다. 그런데 매 번 앉을 기회를 놓쳤다. 갈 때는 가볍게 계단을 올라갈 수 있을 정도였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에너지가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다. 일요일이 되기까지 일주일 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그런 날이 있다. 저 먼 남쪽 지역에도 다녀와야 하고, 하루에 스케줄이 두세 개가 되고, 읽어야 할 책이 많을 때. 그런 한 주였다.


도저히 집으로 바로 들어갈 몸이 아니었다.


우리 동네에는 맛있는 평양냉면 집이 있다. 나는 가능하면 바로 집으로 직행하는 편이었지만 이날은 평양냉면 집에서 물냉도 먹고 쉬어가기로 한다.


내가 안내받은 석 바로 옆에서는 두 분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앉고자 하는 자리는 벽면에 놓인 자리로 의자가 옆 좌석과 쭉 연결된 자리였다. 벽면에 등을 기대면 편했다. 나는 그 자리로 간신히 몸을 옮다. 옆 사람의 가방이 내가 앉는 자리까지 넘어와있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나는 음식을 주문하고 벽면에 등을 기대고 넋이 나가 있었다. 바로 옆 테이블 사람들의 대화가 들렸다.  서로를 ‘권사님’이라고 칭하신다. 2시간 전 나의 일터에서도 권사님들을 만나고 인사를 주고받았다. 옆 테이블 사람들도 교회를 다니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는데, 피곤이 가시질 않는다.


피곤해 죽겠다.


나도 모르게, 피곤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진짜로 너무 피곤했다.


그러자 갑자기 옆에 앉아계시던 분이 살살 내 눈치를 살피면서, 가방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다. 옆 테이블에 앉은 권사님이 혹여 가방 때문에 내가 “피곤해 죽겠다”고 말한 걸로 오해했을까 봐, 나는 가만히 있어도 좋으련만 “녜요, 제가 정말 피곤해 죽겠어서요.”하고 덧붙였다.


사람들도, 가게 사람들도 아무도 반응을 안 한다. 아무런 말도 안 한다. 모두 다 그냥 무표정이다. 나 혼자 말하고 나 혼자 뻘쭘한다.


아아, 정말로 피곤해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내 몸 탓인지, 내 느낌 탓인지, 다른 이들도 모두 이상한 한 주를 보내서 그런지, 음식도 평소보다 맛이 별로였다. 아아, 정말로 힘든 일요일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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