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욕심에는 끝이 없다.
날씨가 제법 선선해지면서 옷장 정리를 했다. 옷장 수납 공간은 늘 부족하므로 가장 옷을 쉽게 꺼낼 수 있는 메인 공간에는 그 계절의 가장 자주 입는 옷으로 채우려는 편이다. (옷장 큰 집에서 살고 싶은 로망은 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 본다)
한번씩 옷장 정리를 하다보면 이런 옷도 있었지, 생각이 드는 옷이 있다. 너무 오래전에 사서 존재감을 잊거나 버리기도 아깝고 놔두자니 손이 잘 가지 않는 옷 말이다. 한참 후 발견하곤 이거 이렇게 매치해서 입었다면 좋았을텐데 생각하며 타이밍을 놓치는 옷도 있다. 3년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과감히 처분하는 것이 맞다고 하던데 꼭 과감히 버린 옷은 갑자기 다시 입고싶을 때가 있으며 괜히 버렸다고 후회하기도 한다. 때론 그 옷을 버린 사실 조차 잊기도 하며 버린 줄 알았던 옷을 버리지 않아서 안도할 때도 있다. 어른이 되면서 몸은 그대로이니 굳이 버리지 않는다면 옷은 계속 쌓인다. 버리게 되는 옷은 몇 년 뒤 다시 꺼냈을 때 촌스럽다고 느껴지거나 너무 많이 입어 바래진 옷들이다. 십년전 쯤 친구들과 버리고 싶은 옷을 가져와 맘에 드는 사람이 가져가기로 한 적이 있다. 친구는 이제는 안입는다고 했던 베이지색 목폴라티를 가져와 입었더니 나름 괜찮았다. 그마저도 몇 년 안 입고 지금은 없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옷과 패션은 지극히 자기 만족이며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성질이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옷을 구매했고 버렸는지 알 수 없다. 옷은 너무 많지만 정작 입을 옷은 없다. 마음에 들어 구매한 옷들도 몇 년 지나면 지겨워진다. 항상 새로운 옷이 좋아보이는 이유는 뭘까. 헌 옷은 닳은 티가 나지만 새 옷은 깔끔하고 단정하며 나이듦에 따라 스타일이 바뀌기도 하니 예뻐 보이는 옷이 달라진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쇼핑은 계속된다.
나는 옷에 관심이 많고 옷 사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기 보다 의무감이 더 크게 작용한다.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거의 사는 편이지만 엄밀히 말해 옷 사는 것을 즐기는 것 같지는 않다. 월급은 정해져있고 양심과 경제적 여건 내에서 구매해야 하므로 쇼핑을 즐긴다기 보다 하나의 과제에 가깝다. 그래서 수시로 인터넷 쇼핑몰을 들락거리며 가격 착하고 디자인과 색상이 취향저격인 아이를 찾고자 한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면 패스, 택배 받고 시착한 뒤에도 조금이라도 걸리면 반품이다. 한 때는 백화점에서 주로 구매했지만 지금은 주로 인터넷 쇼핑을 이용하는 것 같다. 훨씬 볼거리도 많고 가격 착하고 시간 절약되니 반품비 정도야 기꺼이 감수하면서 말이다.
옷장 정리를 하며 자연스럽게 겨울 아우터에 눈이 갔다. 두꺼운 코트와 얇은 코트, 출근용으로 라인이 들어간 패딩과 일자 패딩까지 제법 많은 아우터가 있다. 일자로 떨어지는 패딩이 2개 있긴 한데 낡고 유행지난 디자인이라 폐기처분하려고 한다. 출근용이 아닌 이러한 캐주얼한 패딩이 사고싶었으나 가격이 만만치 않아 최근 몇 년 엄두를 못냈다. 혹시 지금 구매하면 이월상품은 저렴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검색해보니 역시 나는 빠른게 아니었다. 40만원 훌쩍 넘는 브랜드 있는 패딩이 1,2년 지난 상품이란 이유로 역시즌 패딩이란 이름하에 반값보다 훨씬 싸게 구매가능했고 제법 많은 최근 리뷰가 있었다. 옷을 살 때에도 고려해야 할 것이 참 많은 것 같다.
쇼핑도 습관의 일환일까. 매년 초 ‘올해는 정말 옷사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옷에 관심있는 편이고 꾸준히 보다보니 필요하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사게 되는걸까. 생각해보면 그 옷 몇 개 없어도 사는데 아무 지장없다. 지장있는 거라곤 그 옷을 보기 전과 다르게 보고 난 후의 그 아른거림과 내 손에 넣고 싶다는 욕구 뿐이다. 그나마 가방이나 신발을 자주 구매하지 않음에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 스스로 만족도가 높은 옷을 입고 일을 하거나 누구를 만날 때에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기분이 조금 더 좋으며 매일이 그렇게 살고 싶다는 거다. 패션도 개인의 한 능력이며 나의 그 능력이 좋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