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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밍 Oct 16. 2020

대학 꼭 가야 하나요?

나의 꿈은 대학 전공과 큰 상관이 없으니까요

지난 주말, 학급의 OO이가 톡으로 다음 주 진학상담 가능한지 물었다. 당연히 가능하니 등교 이후 날 잡아보자 얘기한 후 바쁘게 일주일이 흘러 금요일이 되어서야 시간낼 수 있었다. 몇 달 전 조례시간에 학급 진로발표 중 경찰이 꿈이라는 자신의 얘기를 급우들에게 전하며 왜 경찰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어느 대학을 희망하고 지금은 무엇을 채우고 있는지 발표했기 때문에 시험 기간인 지금 왜 진학상담을 요청했는지 궁금했다.


고민은 이러했다.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를 고2인 지금 바로 시작할지 고민이라는 것이다. 즉 내신과 수능을 버리고 대학진학 대신 공무원 취업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내가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번 주제는 듣자마자 나도 어려웠다. OO이는 현재 전교 여자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강단있고 리더십이 있는 편이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시간을 어기고 들어와 지도를 받은 적이 꽤 있지만 그래도 솔직한 편이고 수업 참여도나 학교 프로그램 관심도로 보았을 때 애살있는 쪽에 속하며 성적은 중간정도이다. OO이에 따르면 지금 고등학교 공부는 자신이 열심히 할 자신이 없단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해보았는데 공부가 어렵고 성적은 오르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경찰 공무원은 대학 졸업과는 실질적으로 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공무원 시험만 합격하면 스무살에 바로 취업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 공부를 하지 않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지금부터 바로 시작해서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첫 공무원 시험에서 합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어떻겠냐는 거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는 것에 대해 괜찮을까. 적어도 대학은 졸업해야 사회인으로의 자격을 갖춰 직업 전선에 뛰어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비록 전공과 관련된 직업이 아니라도 대학 교육과정을 통해 기본 교양을 쌓고 고등 정신 능력을 단련시켜 어떤 일이라도 열심히 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은 중요하므로 대학은 필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대로 굳이 뚜렷한 목표의식이 없다면 대학은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비싼 등록금은 둘째 치더라도 굳이 본인 스스로 대학의 필요성을 못느낀다면 꼭 가야할 이유는 없다. 캠퍼스의 낭만을 쫓기에는 그 시간과 돈의 효용을 무시할 수 없다. 본인은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이다. 십년전만 해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학 입학은 기정사실화되었고 타인의 시선 때문에라도 대학 진학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얘기가 좀 다른 것 같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이고 학력 인플레이션 시대에서 대학 졸업이 취업을 보장하지 않으므로 남들 다 간다는 이유로 대학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OO이의 부모님께서는 본인이 정말 경찰 시험을 원하고 당장 준비를 시작한다면 대학은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단다. 그렇다면 대학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셈이다. 본인의 결정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이 때 이 친구는 무엇을 고려해야할까. 며칠 고민하면서 아이에게 장문의 카톡을 남겼다. 선생님의 고등학교 친구 중 몇 명도 공무원 공부를 했는데 보통 1년 반 정도 공부하니 합격하더라, 한 친구는 5년 공부했는데도 계속 불합격하여 결국 포기했다,, 등등의 이야기.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곧바로 합격하기 위해서는 너도 과감히 내신을 버리고 공시생처럼 새벽부터 밤까지 공무원 공부에 올인해야 한다, 그럴 각오가 되어있는지, 얼만큼 경찰이 되고 싶으며 학교 공부보다 더 절실함과 성실함을 가지고 할 수 있겠는지 말이다. 사실 학교 공부대신 공무원 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몇 보았지만 그 아이들은 대체로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던 아이들이고 그렇다고 공무원 공부에도 올인하지 않았다. 그 학생이 졸업 이후 바로 합격했다는 소식도 들은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밝고 꾸미기를 좋아하는 OO이가 처음 공무원 시험 얘기를 꺼냈을 때 단순히 학교 공부의 도피처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잠시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상담을 할수록 진지하고 반짝이는 눈빛이 거짓은 아니었다. 


공부란 뭘까. 공부에 미쳐 스트레스를 달고 살았던 나의 고2는 행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 때 열심히 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교무실에 앉아 글을 쓰는걸까. 알 수 없다. 그 때 공부에 올인하지 않았어도 또 다른 새로운 길이 펼쳐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임용고시 장수생 기간 동안 그렇게 울기를 반복하며 힘들어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옆자리 친구가 공부하지 않고 주변 아이들과 떠들 때 그 아이들이 한심했다. 왜 미래를 위해 투자하지 않는지 안타까웠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교사가 되면서 학생들이 내 생각을 바꾸게 했다. 모든 사람은 다르고 개인이 선택한 삶에 정답은 없으며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 줄 것.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처럼 공부머리가 있는 아이도 있지만 감성지능, 공감지능, 언어지능, 자연지능, 운동지능, 다양한 지적 영역이 있으며 그 중 어느 영역이라도 우수한 면과 부족한 면이 있게 마련이다. 꼭 모든 사람이 공부를 잘 할 필요는 없으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감내해야할 필요도 없다.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심부름을 시켜도 야무지게 하고 공부와 관련없어 보이는 영역에서도 우수한 역량을 드러내므로 다방면에서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학생의 본분은 학업이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한다면 다른 어떤 것도 평균 이상으로 해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본교에 근무하면서 이 생각도 깨지고 말았다. 학생중심 수업, 배움중심 수업이 실현되고 있는 본교에서 많은 아이들이 수행평가에 최대한의 노력으로 매진하고 있으며 수업 참여도도 높다. 그러나 그 모든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는 못해도 기본적인 자료 조사나 발표 준비에 최선을 다하며 과제나 청소 등 자신의 역할을 부족함없이 해내고 있다. 공부못하고 열심히 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아무리 교사나 부모가 공부해라고 진심을 담아 말해도 학생을 자발적으로 공부시킬 수는 없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지도하고 교육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마음이 움직였을 때 일어난다. 경찰이 너무 되고 싶다면 대학교의 낭만 정도는 기꺼이 감수하고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공시생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그러한 마음의 각오가 되어있고 흔들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실제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던 사람이 뒤늦게 공부에 빠져 늘 배움의 자세를 갖는 많은 사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늘 공부하는 삶이다. 엑셀, 파워포인트 등 컴퓨터 관련 공부, 더 나은 수업을 위한 교재연구와 수업연구, 입시 전문가가 되기 위한 정보 수집,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독서와 영상 시청, 어느 것 하나 놓을 수 없고 미룰 수 없다. 공부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이것도 일종의 병이다. 늘 앞으로 나아가야하고 나아가고 싶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고 또 잃기를 반복함이 삶을 채우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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