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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자 Oct 18. 2021

나의 삶은, 고구마

내 인생을 인터뷰한 책에 이름을 짓는다면

“안녕하세요, OO매거진 박주연 기자입니다.” 3년이 조금 넘는 시간 줄창 나를 소개하던 인사말이다. 잡지 만들던 기자, 사회생활의 첫 걸음이었다.


여행 기사, 맛집 소개, 경제 기사 등 여러 분야를 취재하고 편집하며 글을 지었지만 가장 좋아하던 것은 누군가를 인터뷰 하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1~2시간 동안 타인이 걸어온 날 것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두꺼운 전집을 1~2시간 만에 읽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인터뷰어가 아니라 인터뷰이

글짓기의 8할은 기획이고, 기자로 일하며 쌓은 기획력이라는 장점을 발휘해 마케터로 직무를 전환했고 현재는 기업의 ESG경영을 알리는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전보다 양은 줄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 삶을 콘텐츠로 풀어내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허나, 사실 오랜 내 꿈은 ‘인터뷰이’였다.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A4 한조각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내가 잡지를 만들 수 있다면 뭐니뭐니해도 나의 삶을 이야기하는, 나를 인터뷰한 잡지가 아닐까.


사실 저를 인터뷰한 잡지는 이미 세상에 있답니다

좋아하는 잡지인 ‘컨셉진’에서 한 달간 메일로 매일 한 개의 인터뷰 질문을 보내오고, 거기에 답변을 적어 보내면 자신을 인터뷰한 한 권의 잡지를 만들어주는 프로젝트를 했다. 기자로 일할 때, 외고를 요청한 필진들이 마감을 지키지 않을 때면 ‘어떻게 약속을 안지킬 수가 있지!’하며 황당해했는데, 나를 위한 잡지를 만드는 데도 어찌나 마감일을 못지켰던지. 지난날의 필진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잡지가 완성됐고 친구가 잡지를 보고 싶다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이 잡지는 내 인생이었다. (나름) 비밀스러운 마음들도 가득했다. 역시 인터뷰는 한 사람의 삶 그 자체다.



*인터뷰 잡지 속 나의 이야기 몇 조각

Q.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삶의 원동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A. 꾸준함에 대한 믿음이요. 졸업 유예만 3학기를 했을 만큼 취업에 애를 먹었지만 100개의 서류에 떨어지면 울면서 101번째 서류를 썼어요. 그러다 보니 제법 서류에 붙는 확률이 커지더라구요. 그 후엔 10번째 면접에 떨어진 날 11번째 면접을 준비할 수 있었죠. 그렇게 입사한 회사에선 정말 힘든 일이 많았고, 다들 어떻게 버티나 했는데 저는 버텼어요. 그게 제 꾸준함이었고 그 덕에 지금도 길을 잘 찾아 나가고 있어요. 

Q. 최근 당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A. 작년 2월에 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실천과 생각을 책으로 엮기 위해 15명이 뜻을 모았고 <어쩌면 당신의 가방은 무거워질 수 있겠지만>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됐습니다. 제가 꽤 성실한 환경운동가로 보이겠지만 그건 아니고요. 하지만 방송인 타일러가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내가 목소리를 내지 않을 이유가 될 수 없다”라고 말했듯이 저도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결론적으로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만난 사람들이 제게 지난 1년간 정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까?’ ‘왜 저렇게까지 할까?’ 싶을 만큼 환경에 진심인 사람들을 보며 많이 반성하고 배웠습니다.

Q. 당신이 가장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A. 일 벌리는 것을 가장 잘해요. 주변에서 자주 ‘부지런하다’란 말을 들어요. 하고 싶은 게 많고 생각한 걸 작든 크든 해보는 편이거든요.



내 인생을 인터뷰한 잡지의 이름을 정한다면 <나의 삶은, 고구마>로 하고 싶다. 삶은 고구마는 내가 먹고 싶어서 먹으면 별미지만 다이어트를 위해 먹으면 고역이다. 가끔 먹으면 맛있지만 매일 먹으면 질리고.

삶도 그렇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할 때 즐겁고 시선을 의식해서 하면 재미가 없다. 특별한 일도 하루이틀이고 평범한 일상들이 더 소중하고 그것들이 모여 삶이 된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소중했듯, 나의 ‘삶은 고구마’ 같은 삶의 이야기도 소중하다. 내 삶을 이야기한 세상에 단 한 권 뿐인 잡지, 언젠가 누군가가 읽고 ‘박주연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한 권으로 읽다니, 난 축복받았어’ 라고 해준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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