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2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백두살. 1920년생 김묘임 여사.
백두살이란 나이에 누군가는 '호상' 이라고 했지만, 좋은 죽음이란 건 없다. 한 달이 다 되어도 할머니 생각에 코가 시큰하다.
할머니가 시어머니인 엄마 입장에서는, 할머니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우리 친가가 "유별난 박가네 효자들"이었다. 그만큼 할머니가 우리집에서 가진 의미는 너무 컸다. 산송장으로 몇 년을 누워있었어도 저 침대에 할머니가 있다는 것이, 말도 못하고 혼자선 몸을 옆으로 뉘우지도 못하는 할머니라도 내가 손을 잡으면 본인이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짜내어 꽉 쥐어주는 할머니가 있다는 게 참 좋았다.
"뭔가를 잃어버린 거 같아 꼭. 섭섭하고 서운해."
할머니 영정 앞에서 둘째 고모는 그렇게 말했다. 할머니 간호하느라 몇 년간 자기 시간도 없이 말도 안되는 고생을 한 막내고모는 할머니 가시는 길에 보낸 편지에 '못된 딸 올림'이라고 적었다. 이 정도로 사랑받고 살았던 할머니이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참 섭섭하고 서운한 일인 것이다.
3년 전만 해도 루즈를 곱게 바르곤 혼자 지하철을 타 쇼핑을 다닐 만큼 정정하셨던 할머니가, 몇 번 넘어지며 무릎을 다치고 난 뒤론 꼼짝없이 누워만 지냈다. 농담하듯 어른들은 할머니가 걸려 넘어졌던 그 문턱을 툭툭치면서 "이것만 아니었어도! 이 나쁜놈!"하며 허허했지만, 사실 그 문턱이 얼마나 미웠을까. 효자, 효녀 자식들 덕에 행복한 삶을 사셨지만 최근 3년 정도를 누워만 지내면서 오히려 행복했던 기억이 할머니를 참 힘들게 했을 것이라서 나도 그 문턱이 정말 밉다.
보는 것조차 힘들던 할머니의 최근 상태에 '돌아가시는 게 할머니한테도 더 좋지 않을까' 했지만, 그래도 좀 더 계셔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드는 아이러니한 날들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의 반려묘인 동동이와 여느 날처럼 평범하고 무료하게 재택근무를 하던 날이었고 팀장님과 화상 미팅 중 이었다. 회사에 있을 언니가 느닷없는 시간에 전화를 걸어와서 급히 끊었고, 무슨 일인가 싶어 카톡을 들여다보니 언니와 남동생이 있는 대화창에서 '몇 시에 출발할거냐'며 시간 약속을 잡고 있었다.
나 회의 중. 왜?
할머니 돌아가셨대.
모든 피가 얼굴로 쏠리듯 시뻘개지고 팀장님이 날 보고 있는 것도 잊은 채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쏟았다. 소식을 알리고 급하게 미팅을 마치곤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3일을 지낼 짐을 싸서 언니, 동생과 광주로 내려갔다.
장례를 치렀다. 입관이란 걸 처음 지켜보며 몇 년을 흘릴 눈물 콧물을 다 쏟고, 재가 된 할머니를 보고 삶의 허무까지 느낀 복잡한 시간들이었다.
3일장을 치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아파트 고양이들 밥을 챙겨주시는 같은 동의 마음씨 좋은 캣맘 어머니에게서 온 문자였다.
사정이 길어 이곳에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차저차하여 2주도 안된 아기 고양이를 얼결에 맡게 되셨다 한다. 식구들이 모두 출근을 해서 3시간마다 밥을 먹어야 하는 아깽이를 돌볼 수가 없고, 내가 재택근무를 하니 당분간 아이를 평일에 봐줄 수 있냐는 문자였다.
할머니 장례가 아니였다면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땐 며칠 잠도 제대로 못자고 할머니도 눈에 밟히는 때라 '하는 수 없지' 정도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얼결에 임시보호 아닌 임시보호를 하게 됐다.
아직 눈도 못뜨고 쥐보다도 작은 아가 고양이를 본 첫 날, 강렬한 책임감과 에너지가 차올랐다. 새벽에도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분유를 먹이고, 보온 물주머니를 수시로 갈아주면서 귀찮고 힘들다는 생각도 여러번 했지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뭔 지도 느꼈다.
주말이면 캣맘께 다시 아이를 맡기고 평일엔 다시 우리집으로 데려와 아이를 돌보았는데, 주말에는 시원한 감정은 없고 섭섭한 마음만 자꾸 들었다.
한 생명을 기르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나의 반려묘인 동동이도 두 달이 안되었을 때 우리집에 온 길냥이인데, 그 때는 모든 게 처음이라 놀라운 경험임을 느끼기 보다 매일이 전쟁이라고만 생각됐다. 이래서 둘째 낳고서야 첫째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느끼나보다.
아가는 그 사이 눈을 떴고, 그루밍을 하고, 청각과 시각이 점점 선명해지며, 먹는 양은 갈수록 늘어간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바들거리던 다리였는데 이제는 뛰어다닐 수도 있게 됐다. 자고 일어나면 사람으로 치면 한 살 씩은 더 먹는 것처럼 크고 있다.
아가에게 온 집중을 다 한 몇 주를 보내고 있다. 생명을 키워내는 대단한 일을 열심히 해내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 아침이면 이별이다.
주말을 맞은 이별이 아니라 영영 하게 될 이별이다. 아가는 캣맘께서 키우는 것으로 마음을 굳히셨고, 따님이 퇴사를 해서 이제 낮 시간에도 집에 식구가 있다고 했다. 캣맘은 언제나 아가를 맡겼다는 것에 미안해하셨고, 나에게 짐을 지우고 있다 생각하셔서 이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전하셨지만 나는 많이 슬프고 섭섭했다.
아가 덕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슬픔을 곱씹을 새도 없이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생명을 키우는 책임감을 느꼈고, 동동이가 점점 아가에게 마음을 열고 친하게 지내려는 것을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마음에 꽉 찼다.
틀림없다. 할머니 장례가 끝나자 마자 온 연락, 그래서 슬플 틈도 없이 지냈던 시간과 그 시간을 꽉 채워준 감정들. 할머니가 손녀딸 생각하며 고양이를 보내셨구나, 생각한다.
그러다 할머니 성함을 생각하면서, '진짠데...' 싶어졌다.
김묘임 할머니.
이름에 무려 '묘'가 들어간다!(억지스럽다고 살짝 웃어도 좋다. 난 몹시 진지하니까!) '묘임' '고양이임'의 흐름도 놀랍고, 옛날 사람들의 한글 습관으로 '김묘님'으로 불렸기 때문에 '고양이님'이 되는 것도 엄청나다.
할머니, 이거 진짜구나!
내가 할머니 많이 좋아하는 걸 할머니도 알았나 보다.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이렇게 선물로 보내주다니. 할머니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한 가족처럼 생각된다.
다만 놀라울 정도로 친해진 동동이와 아가 고양이를 보면 아쉬운 마음도 든다. 서로의 똥꼬 냄새를 맡고 그루밍까지 해주고, 아가 고양이에게 다가가 등을 보이곤 털썩 누워 자는 동동이, 자기가 자고 있는 방석에 올라와 온 방석을 휘젓고 다녀도 봐주는 동동이. 아가 신경 쓴다고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는데 이 아가에게 마음을 주다니, 넌 정말 좋은 고양이야.
오늘은 아가 고양이랑 보내는 마지막 밤. 뭘해도 '마지막'이란 생각을 하니 아쉽다. '마지막 한 침대' '마지막 분유 타기' '마지막 젤리' 다 섭섭하고 다 아쉽다.
이제 이 말랑한 젤리를 만지지도 못하고 내 손가락에 침이 흥건해지지도 않겠지. 점점 날카로워지는 이에 손가락을 콱 물려서 아프다고 불평할 고양이가 없겠지.
할머니가 보낸 고양이, 그 고양이 덕에 얻은 많은 감정들. 이 놀라운 일이 '웃기고 있네'류의 이야기로 치부되어도, 나한텐 진지한 에세이다. 할머니가 고양이를 보냈다는, '어쩌면 헛소리'가 나한텐 큰 의지가 된다.
아가, 좋은 가족이 생긴 거 축하해. 아프지 말고 오래 행복하게 살다, 무지개 다리는 안아픈 날에 낮잠을 자다 사르르 건너는 행복한 장수묘의 삶을 살아줘. 그리고 나보다 먼저 할머니 만나면 반갑다고 머리 박치기도 한 번 해주렴. 선물 참 좋아하더라는 말도 전해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