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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형박사 Jul 17. 2019

새것이 좋긴 하지만…

동아일보 칼럼 연재 2002년 기재

『다음 칼럼은 90년대~ 00년대 이시형 박사가 젊은이들에게 보냈던 이야기입니다. 약 20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젊은이들은 4-50대의 중년이 되었고, 이제 다시 새로운 20대의 젊은이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이야기를 읽으며, 그때에 비해 지금은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어떠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우리 병원 간호사는 지난해 휴대폰을 네 번이나 바꾸었다. 새로운 모델로 바꾸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 탓이다. 이번에 새로 산 건 어찌나 작은지 손안에 쥐어도 보이지 않는다. 올해는 또 몇 번을 바꾸려는지, 또 어떤 새로운 게 나오려는지 궁금하다. 이 간호사뿐 아니다. 모든 젊은이가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이렇게 왕성한 나라는 지구 상에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번 영국에 갔을 때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거긴 아직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어쩌다 젊은 비즈니스맨이 고작이다. 그것도 군대 야전용 같은 큼직한 걸 어깨에 메고 다닐 정도의 구식 모델이다. 우리나라에선 지금쯤 박물관에 고물로 전시되어 있을 모델을 메고 다닌다. 하지만 거기엔 일종의 위엄이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영국류의 보수주의적 기풍이 보인다. 깊이가 있고 무게가 있다. 권위 같은 게 느껴진다. 그게 영국이어서 일까? 난 솔직히 존경심마저 들었다. 유행에 쫓겨 새것만 찾는 우리 젊은이가 어쩐지 경박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무슨 소릴 하고 있어? 그런 착한 소비자가 있기 때문에 우리 휴대폰 산업이 세계시장을 석권할 만큼 성장한 게 아닌가? 그런 낡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지 말게나.” 무역업을 하는 내 친구의 충고다. 그러고 보니 그런 측면도 있네. 하지만 그래도 난 복고풍에의 향수는 간직하고 싶다. 모두들 새 아파트가 편리하다고 몰려들어도 대대로 물려받은 옛 집이 좋다는 사람이 난 좋다. 부럽고 존경스럽다. 새소리, 맑은 시내, 바람소리, 밝은 별……. 천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옛날 그대로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며 즐거움이냐.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참기름병을 반질반질하게 손질해 놓고 있다. 파란색의 그 병이 언제부터 있어 왔는지 우리 집 누구도 정확히 알진 못한다. 족히 30년, 아니 40년은 되었으리라. 안 깨어진 것만도 신통하다. 거기엔 어머니의 눈물이, 서러움이, 아, 그리고 온갖 애환이 서리서리 얽혀있다. 그 병을 매만지며 가난한 부엌을 꾸려야 했던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눈에 선하다. 


오래된 옛집, 낡은 가구들과 함께 자란 아이들은 사람 깊이에서, 무게에서 다르다. 그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 깊은 인생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배우기보다 절로 몸에 배게 된다. 난 지금도 여름 방학이면 우리 집 중간채 뒤편 툇마루에 게을리 누워 책을 읽으며 간간히 떠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던 시절이 눈물겹도록 그리워진다. 이제 대구 공항으로 바뀐 우리 고향마을은 비행기 폭음으로 요란하지만 내 마음속엔 아직도 ‘음매’하는 우리 집 누렁이의 울음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옛것에의 향수에서만은 아니다. 내가 가진 것에 작은 애착이나마 갖자는 거다. 하긴 사람에 대한 애착도 없는 세상이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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