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칼럼은 90년대~ 00년대 이시형 박사가 젊은이들에게 보냈던 이야기입니다. 약 20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젊은이들은 4-50대의 중년이 되었고, 이제 다시 새로운 20대의 젊은이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이야기를 읽으며, 그때에 비해 지금은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어떠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10월 초순인데 모스크바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질척질척한 거리를 거닐면서도 우린 흥분에 들떠 있었다. ‘차이코프스키 음악홀’ 입장권을 용케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비에 들어서니 양쪽 벽엔 이곳을 거쳐간 세계적 거장들의 공연 사진이 화려하게 붙어 있다. 아쉽게도 한국 출신은 보이지 않는다. 이 무대에 한 번 서는 것만으로도 음악인으로선 최상의 영광이라지만 막상 내부 모습은 소박했다. 나무 의자라 쿠션이 없어 딱딱하다.
▼모스크바, 도시전체가 예술작품▼
하지만 실망은 잠시, 막상 무대가 열리자 그만 넋을 잃게 된다. 그날 공연은 무용이었는데 한마디로 대단했다. 전통무용에 발레의 우아함과 기계체조 같은 역동성이 가미된 내용이었다. 거기다 샤머니즘의 강신무(降神舞)까지, 무대는 잠시도 틈을 두지 않고 이어져 갔다. 동네 처녀 총각들의 수줍은 만남을 주제로 한 군무는 압권이었다. 발랄하고 귀엽고 낭만적이면서 삶의 기쁨이 충만한 ‘젊은 날의 환희’에 관객들은 숨을 멈추었다.
“저러니 보러 오게 되지.” 공연장을 나서면서 우린 그렇게 투덜거렸다. 함박눈을 맞으며 거닌 모스크바 거리에서 우린 밤새 참으로 행복한 여운에 젖었다. 저녁은 굶어도 공연장을 찾는다는 그곳 사람들의 심성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래서들 이 혹독한 동토(凍土)에서도 넉넉한 삶을 이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장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몰리니 테러의 표적이 되는 아이러니도 겪긴 하지만….
지난 여름 우리가 둘러본 소위 구 동구권의 화려한 문화는 가히 충격이었다. 부다페스트에는 50개가 넘는 박물관 미술관이 있어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 순례를 마치고 고교를 졸업할 즈음이면 나름의 작품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룻밤 28곳에서 클래식음악 행사가 개최되며, 국제적 규모의 음악제는 동시에 두 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인구 120만명의 도시에…. 프라하에서도 우린 차마 발을 옮겨 놓을 수 없었다. 오늘밤은 여기 이대로 벌렁 드러누워 버린 그 아름다운 골목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모스크바 역시 도시 전체가 예술 작품이었다. 저게 무슨 건물이냐고 물을 적마다 안내원은 그냥 아파트라고 대답했다. 미술관, 박물관쯤 되는 줄 알았는데….
웅장하고 화려한 스탈린빌딩은 우선 그 외관에서 사람을 압도한다. 7개 중 하나는 예술인, 또 하나는 문화인 전용이다. 대체 이들의 ‘문화지수’는 얼마일까.
지난 주 우리 문화정책개발원에서 각 지역 문화지수를 발표했다. 서울이 예상대로 수위권이고 예향(藝鄕) 광주, 돈 많은 울산이 문화활동과 여가활동 부문에서 수위를 차지했다.
그 고장 시민들은 우쭐한 기분으로 살아도 된다는 뜻인지, 나로선 도대체 그 연구보고서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모든 신문이 박스 기사로 짤막하게 혹은 상세히 보도했지만, 그 흔한 국제간 비교나 심층 해설이 없다. 공연장이나 박물관 관람이 2년에 한 번, 대중음악은 3년에 한 번도 안 된다. 깜짝 놀람직도 한데 어느 신문에고 논설 한 편 쓴 곳이 없다.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앞으로의 구상도 실림직한데 그런 흔적도 물론 없다.
해외에서 성공한 우리 교포들이 그만큼의 존경과 대접을 못 받는 건 문화지수가 낮기 때문이다. 신흥 졸부 근성으로 꼬집히는 것도 그래서다.
돈만 있다고 부자가 아니다. 프랑스에서의 부자의 기준도 문화 의식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예술 문화계 인사와 친교가 있느냐,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관람하느냐, 음악 연극 무용 오페라 등 공연을 월 1회 이상 관람하느냐, 미술 작품이나 골동품을 구입하느냐, 비정부기구(NGO)나 국제기구 등에 기부를 하느냐 등의 항목이 부자의 기준이다.
▼´문화´ 모르는 부자는 졸부일 뿐▼
문화는 이제 사치도, 장식도 아니다. 문화 없는 상품은 팔리지 않는다. 이제 문화는 생존 경쟁, 그 자체다.
하긴 공연장에 가는 것만으로 문화인은 아니다. 공연을 마치고 난 후 출연진, 제작진의 누군가를 초대해 모퉁이 카페에서 뒷이야기도 청해 들어보라. 생활에 윤기가 돌 것이다. 내 삶의 품격이 한 차원 높아진다.
문화 예술인을 사귀려면 돈은 좀 든다. 다른 데 아끼고 여기엔 써야 한다. 공짜표, 이 치사한 것 바라지도 말고, 설령 생겨도 돈 내고 들어가라. 전시장에 가서 작품도 사라. 그게 고사 직전의 우리 문화 예술을 살리는 길이다. “볼 게 있어야지.” 이런 불평을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격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문화가 살아야 나라의 품격이 올라간다. 그리고 그게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