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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형박사 Oct 20. 2020

韓-美-日 ´신용카드 삼국지´

『다음 칼럼은 90년대~ 00년대 이시형 박사가 젊은이들에게 보냈던 이야기입니다. 약 20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젊은이들은 4-50대의 중년이 되었고, 이제 다시 새로운 20대의 젊은이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이야기를 읽으며, 그때에 비해 지금은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어떠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오랜만에 셋이 저녁을 먹었다. 일본의 미야와키, 미국의 패터슨. 둘은 지한파요 대단한 친한파다. 해서 술이라도 한 잔하면 체면 불구하고 서로를 험담하느라 때론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게 사랑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날은 미야와키씨가 들고 온 한국의 경제 신문이 화근이었다. 신용 불량자 250만명, 작년에 150만명을 사면해 줬는데도 계속 늘고 있다니…. 대학생 61%가 카드 소지, 그중 30%가 연체 경험. 그뿐인가. 수입도, 자제력도 없는 20대가 카드 연체의 40%를 점한다…. 카드 망국론이 나오게끔 되어 있다.


▼韓-펑펑 美-합리 日-신중▼

빚에 쫓겨 절도, 강도, 유괴까진 또 그렇다 치자. 딸의 카드 빚 때문에 아버지가 자살한 대목에서 패터슨씨는 할 말을 잃는다.

미야와키씨는 그래도 한국을 좋아한다. 사회 전체가 활력에 넘치고 화끈하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용감하다. 순간의 판단력, 기민성, 기동력, 과단성,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도전. 이런 벤처 정신이 오늘의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가는 힘이다.

실패도 많지만 그만큼 성공도 많다. 21세기 정보화 사회, 한국이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한다.

반면 일본은 돌다리도 두드리고 앉아 있다. 한 푼을 쓰지 못해 부들부들 떨고 있다. 10년 넘어 이러고 있다. 너무 조심스러워 도대체 움직임이 없다. 불황의 늪을 헤쳐 나올 힘마저 잃은 것 같다. 신중하게, 실수없이…. 이건 산업사회에선 유용한 덕목이었다. 일본이 한때 잘 나갈 수 있었던 건 그래서였다.

하지만 앞으로의 벤처 사회는 이래서야 살아날 방법이 없다. 정부도 온갖 수단 다 써 봤다. 제발 돈 좀 쓰라고 상품권까지 나누어 준 나라가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그래도 안 쓴다. 겁이 나서….

한국 사람은 대충 보고 건너간다. 그러다 빠지면 헤엄쳐 나오고…. 돈도 잘 쓴다.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쓴다. 카드로 그으면 되니까. 갚을 생각은 그 다음이다. 분수도 모른다. 남이 쓰면 나도 써야 하니까.

그러고 보니 미국의 합리적 소비 패턴을 한일 양국이 배워야 할 것 같다. 미국 가정은 어릴 적부터 금전에 대한 교육이 철저하고 엄격하다. 무엇보다 자기 용돈은 자기가 벌어야 한다. 집에서 타 쓸 때도 그만한 값어치의 일을 하고 그 보수로 받는다.

좀 별난 엄마는 슈퍼마켓에 갈 때 아이를 데려가지 않는다. 슈퍼마켓에선 부모의 지출과 상관없이 아이가 원하는 건 뭐든지 카트에 담기만 하면 공짜이기 때문이다. 철부지에게 행여 이런 기분을 줄까 두려운 것이다. 수표나 카드도, 제 손으로 벌어 분명한 자기 통제력이 생겨야 쓴다. 그 전까지는 현찰이다. 그래야 돈에 대한 감각이 확실해진다는 논리다. 쓰되 계획적으로 자기 분수에 맞게 자기답게 쓴다.

한국 부모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용돈도 푸짐하고, 기분대로 쓰고, 신용 불량자로 몰려도 면책해주고….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 게 한국 사회다. 이런 구석도 있어야 사람 사는 훈기가 난다.

그러나 미국에서라면 어림없는 소리다. 미국에서 신용카드는 진짜 신용의 상징이다. 길거리 가판대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한번 신용 불량자로 몰리면 이건 가히 사회적 죽음이다. 이로써 그의 인생은 끝장이다. 어떻게든 이것만은 면해야겠다고 버둥거리는 걸 보면 ‘사는 게 이렇게 엄격해서야’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인정 넘치는 신용사회 됐으면▼

서구 사회는 불신에서 출발한다. 서로 믿지 못한다는 전제를 깔고 거래를 한다. 서면 계약을 하고 증인을 세우고, 그도 모자라 공증까지 한다. 만약 어기면 엄한 처벌이 가해지는 경찰 문화다. “사는 재미가 없어요. 으스스해요”라는 패터슨씨의 엄살에 우린 웃을 수도 없었다.

미국인들은 불신에서 출발해 결국 신용 사회를 만들었다. 한국은 서로 ‘믿는다’는 데서 출발했지만 결국 불신 사회가 되고 말았다.

이번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2단계나 껑충 뛰게 되면서 국제적 위상 향상은 물론이고 당장 외채 이자가 떨어진다. 신용이 곧 돈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국가도, 회사도, 그리고 개인도 결코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미국의 합리성, 일본의 절제와 신중함, 거기다 한국의 인정이 접목될 수 있다면 우린 단연 세계 정상이다.


이시형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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