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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형박사 Aug 31. 2022

일단 긁어...

『다음 칼럼은 90년대~ 00년대 이시형 박사가 젊은이들에게 보냈던 이야기입니다. 약 20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젊은이들은 4-50대의 중년이 되었고, 이제 다시 새로운 20대의 젊은이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이야기를 읽으며, 그때에 비해 지금은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어떠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이번 추석엔 못 갑니다. 수해도 났다는데 맨손으로 어떻게 갑니까.”

불안 공포에 시달리던 그는 이제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들었다.

2년 전만 해도 잘나가던 청년이었다. 중고차에 선물꾸러미를 싣고 신나게 달려 간 고향길이었다. 대학, 군대를 마치고 어려운 취업도 하게 되었으니 그로선 기고만장이었다. 체면치레로 옷도 사 입고 친구와 술을 마시고 데이트하는 데도 자금이 꽤 들었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랴. 카드만 내밀면 척척이었다. 그렇게 쓴 게 어느덧 600만원. 봉급 선불, 카드 돌려 막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연체는 자꾸 늘어만 갔다. 드디어 ‘손 쉬운’ 사채를 썼다. 그게 치명타였다. 2년 동안 갚은 이자만도 원금의 2배, 그러고도 원금은 3배로 불어났다.


▼신용관리능력결핍증 심각▼

처음엔 전화로 독촉하더니 이젠 물리적 협박까지 가해왔다. 거기다 회사는 노사 분규에 휘말리고 보너스는커녕 봉급도 제때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문을 닫게 되자 조폭 같은 주먹이 생명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극심한 공포에 떨면서 정신과를 찾아왔을 때의 그 모습은 참으로 처참했다.

나이 28세, 건강한 이성과 판단력을 갖춘 대졸 출신이 어쩌면 그렇게 균형감각이 없을까. 수입과 지출, 회사 전망, 조금만 천천히 따져볼 수 있었다면 절제의 기능이 작용할 수 있었을 텐데. 진료실 의자에 큰 죄나 지은 듯 고개 숙이고 앉은 그에게 나 역시 무력감에 빠진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요즈음 신문을 훑으면서 빚이니 연체니 하는 기사가 유난히 눈에 띄게 된 것도 이 젊은이를 진료하고 나서부터다. 한마디로 ‘어떻게 이럴 수가…’이다. 입을 다물 수 없다. 솔직히 개인도 기업도 정부도 한심하다는 생각을 금할 길 없다.

우리나라 가구의 절반 이상이 5000만원의 빚이 있고 이건 가처분소득의 1.8배에 이른단다. 이걸 옳게 갚을 수 있는 가구가 얼마나 될까.

휴대전화, 신용카드 연체로 인한 신용 불량자 238만명, 그나마 매달 5만∼7만명이 폭증하는 추세라고 한다. 특히 젊은 층의 소비 및 금융 이용 행태는 미국 일본에 비해 너무나 방만하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결제대금 부족을 경험했고 끝내 해결 못한 것도 11%나 된다. 135만명이 평균16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월수입의 70%를 부모에게 의존하며 61%는 저축 한 푼 하지 않는다.

신용의 의미를 가볍게, 우습게 알고 있다.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정부에서도 이를 엄히 가르칠 생각조차 않는다. 걸핏하면 구제다.

회수 불능의 공적자금이 69조원, 은행권에서 탕감해 준 것만도 7조5000억원이다. 그런 특혜를 입은 기업들의 면면들을 보노라니 화가 난다. 한때는 잘나가던 기업들이다. 염치도 없다. 힘센 사람이 거들거나 말만 잘 하면 수백억원을 탕감받는다. 금융 최고 책임자까지 나서 회수를 전제로 한 돈이 아니라고 하니 세상에 이렇게 좋은 기업 환경이 또 있을까.

국민연금 3조원, 건보료 연체 1조원, 미적거리면 이 역시 안 내도 된다. 개인, 기업 할 것 없이 중증의 신용관리능력 결핍증에 걸려 있다. 이보다 더한 중병도 없다.

슈퍼마켓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엄마를 따라온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끄집어내 먹고 있다. 점원이 나무라자 돈 내면 될 걸 왜 그러느냐고 엄마가 호통을 친다. 재래시장에선 값을 치르고 물건을 가져가는데 슈퍼마켓에선 엄마가 바구니에 그냥 집어 담으니까 아이는 공짜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슈퍼에선 아이들 금전 교육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신용은 생명이다˝▼

지난해 아프리카 땅 끝에서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카드를 내밀었더니 덜컥 결제가 됐다. 우리집 앞 작은 은행지점에서 발급된 카드가 여기서까지 통하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편리해서 좋긴 하지만 어쩐지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구 어딜 가도 보이지 않는 그물로 꽉 매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용카드란, 실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나의 사회적 인격이요, 사회와의 엄숙한 약속이다. 여기에 결격 사유가 생기면 사회인으로서 실격자다. 정부에서도 불량자에겐 엄히 응징해 신용을 지킨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야 한다.

‘한국에선 떼먹어도 괜찮다. 돈은 일단 쓰고 보는 거야. 못 갚으면 그만이지 어쩔 것이여. 개인 워크아웃제도 있고 장사도 하다 안 되면 공자금이 있다. 이건 공짜다….’ 이러한 생각들이 국민 사이에 만연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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