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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Jan 07. 2020

홀로 낯선 방에서

끝나지 않을 취업의 굴레


 원주에 내려왔다. 공공기관 취업준비를 하면서 지방살이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지만 이렇게 빨리 닥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실감이다. 여기, 원주 혁신도시는 삭막하다. 주말이면 거리가 텅 빈다. 가게들은 문을 닫고 도시에는 눈만 펑펑 내린다. 내려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다 새 것인, 삭막한 도시.


 95명의 인턴을 뽑기 위해 2,800명이 지원했다고 했다. 정규직 전환형도 아니고 5개월 계약직에 불과한 이 자리를 얻기 위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소서를 썼고, 면접을 봤다. 경력이 도합 3년은 되는 나도 인턴들 사이에서는 중간치의 나이다. 텅 빈 원룸에 가스보일러를 아무리 켜도 원주가 춥게 느껴지는 건 치열하게 얻은 이 일터가 아주 일시적이며 끝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다.


 작년에 냈던 독립출판물 에필로그에 적었던 문장이 떠오른다.

 첫 번째 퇴사 후,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저는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하고, 오늘을 분초로 쪼개 내일을 준비하는 그런 삶은 살지 않을 겁니다. 자존감을 깎아내며 상대의 사랑을 구걸하는 일은 최대한 피하기로 합니다. 이 모든 다짐을 담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썸머였다』를 만들었습니다.


 취업 준비를 다시 시작하면서 이 결심들은 빠르게 풍화되었다. 지원자님의 장점은 뭔가요? 단점은요? 쏟아지는 질문에 꾸며낸 답변들을 한 것은 물론이고, 면접관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쉴 틈 없이 살피고 판단하고 위축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또 공기업을 가겠다고 설쳐서 이런 상황을 만드나 자책하기도 했다. 금방 떠날 5개월짜리 빈 방에서 예전에 썼던 글을 읽을 때마다 퇴사하고 떠났던 여행지에서의 마음으로 평생을 살 수 없다는 걸 실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썼던 글을 읽고, 미래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위로가 된다. 에필로그에 적었던 자의식 과잉의 저 문장들도 그런 마음에서 왔다. 그러니 보일러를 60도에 맞춰두고, 홀로 낯선 방에서, 5개월 간 이런저런 자기 위로의 글을 써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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