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취업의 굴레
원주에 내려왔다. 공공기관 취업준비를 하면서 지방살이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지만 이렇게 빨리 닥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실감이다. 여기, 원주 혁신도시는 삭막하다. 주말이면 거리가 텅 빈다. 가게들은 문을 닫고 도시에는 눈만 펑펑 내린다. 내려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다 새 것인, 삭막한 도시.
95명의 인턴을 뽑기 위해 2,800명이 지원했다고 했다. 정규직 전환형도 아니고 5개월 계약직에 불과한 이 자리를 얻기 위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소서를 썼고, 면접을 봤다. 경력이 도합 3년은 되는 나도 인턴들 사이에서는 중간치의 나이다. 텅 빈 원룸에 가스보일러를 아무리 켜도 원주가 춥게 느껴지는 건 치열하게 얻은 이 일터가 아주 일시적이며 끝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다.
작년에 냈던 독립출판물 에필로그에 적었던 문장이 떠오른다.
첫 번째 퇴사 후,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저는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하고, 오늘을 분초로 쪼개 내일을 준비하는 그런 삶은 살지 않을 겁니다. 자존감을 깎아내며 상대의 사랑을 구걸하는 일은 최대한 피하기로 합니다. 이 모든 다짐을 담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썸머였다』를 만들었습니다.
취업 준비를 다시 시작하면서 이 결심들은 빠르게 풍화되었다. 지원자님의 장점은 뭔가요? 단점은요? 쏟아지는 질문에 꾸며낸 답변들을 한 것은 물론이고, 면접관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쉴 틈 없이 살피고 판단하고 위축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또 공기업을 가겠다고 설쳐서 이런 상황을 만드나 자책하기도 했다. 금방 떠날 5개월짜리 빈 방에서 예전에 썼던 글을 읽을 때마다 퇴사하고 떠났던 여행지에서의 마음으로 평생을 살 수 없다는 걸 실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썼던 글을 읽고, 미래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위로가 된다. 에필로그에 적었던 자의식 과잉의 저 문장들도 그런 마음에서 왔다. 그러니 보일러를 60도에 맞춰두고, 홀로 낯선 방에서, 5개월 간 이런저런 자기 위로의 글을 써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