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화해
새해 첫날에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와 나 사이 간격은 깊고도 가까운 협곡 같다. 훌쩍 뛰어넘으면 금방일까 싶다가도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보면 이내 뒤돌고 만다.
어렸을 때 가장 싫어하던 말은 '너에게 실망했다'는 말이었다. 외양도 천성도 유독 아빠와 닮은 첫째 딸로 태어나 기대를 몸에 꾹 눌러 담고 살아온 내게 그 말은 일종의 형벌이었다. 그 말이 내 유년시절을 깎아먹었고, 덕분에 나는 끊임없이 인정 욕구에 시달리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기말고사 평균점수가 중간고사 평균점수보다 2점 떨어지면, 엎드린 채 2점 곱하기 10대를 맞아야 했던 중학교 시절. 밴드 활동에 재미를 붙인 나를 숨겨줬다는 이유로 감히 가장에게 비밀이 어딨냐고, 네가 네 자식을 망치고 있다며 엄마에게 이혼을 말하던 아빠. 학대와도 같은 각종 폭력에 맞서 싸우던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죄책감이었다.
아빠가 원하던 외고를, 스카이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죄책감. 유일하게 경제적 노동을 하는 아빠에 대한 미안함. 가끔 만취한 채 돌아와 나와 동생을 껴안고 세상이 무너져도 언제나 니들 편이라며 부르짖던 아빠의 쉰 목소리. 그 무수한 순간들이 모이면 무력해졌다. 아빠에게 맞서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올해 스물아홉이 되었다. 아빠와의 화해는 여전히 어렵다. 아빠를 이해해야만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게 필요한 일인지, 여러 사정을 고려해서 아빠의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를 찾아 합리화하는 게 이제 와서 의미가 있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휴대폰을 앞에 두고 몇 번을 망설였는지 모른다. 설거지만 하고 해야지. 이거만 정리하고 해야지.
아빠, 새해 복 많이 받아.
그래, 아픈 데는 없고?
아픈 데가 어딨어. 그냥 그렇지 뭐.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응, 아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