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기분이야
표가 결혼을 했다. 6년 넘게 만난 10살 많은 남자친구와. 결국. 결혼을 했다.
장기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표가 커피를 마시다 말했다. 나 결혼해. 사실 훨씬 전에 결정했는데 너한테 카톡으로 말하긴 싫었어. 나는 커피잔을 손에 꼭 쥔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몇 달 뒤 출판사와 계약을 하던 날, 표에게 연락했다. 표는 축하한다는 말을 표현 방식을 바꿔가며 수차례 전했다. 액정 너머로 그 애의 진심 어린 축하가 닿았다.
한 시간 전에 식장에 도착했다. 버진로드에서 예행연습을 하던 표를 바라봤다. 조명이 하도 쨍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사실 그때 18살의 그 애를 봤다. 매일 아침 7시 15분에 우리 집 앞에 서있던 표. 산꼭대기에 있는 학교를 수백 번 함께 오르내리던 표. 독서실에 가방만 놓고 같이 야채곱창을 먹으러 가던 표. 독서실 계단에 있는 목욕탕 의자에 앉아 온갖 수치스러운 비밀을 나누던 표. 조금 짧은 교복 치마와 책가방을 둘러맨 그 애. 왜 우는지도 모르는 채 화장실에 숨어 펑펑 울었다. 내가 엄마도 아니고, 아니 결혼이 어디 팔려가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울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도 연신 눈물을 쏟았다.
결혼식 일주일 전, 표가 문득 출판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 출판사랑 개정판을 낸다며, 정말 축하해. 나는 결혼을 하고 너는 계속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네. 결혼해도 하고 싶은 거 계속할 수 있지만 그래도 뭔가,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기분이야. 일주일 내내 그 말을 곱씹었다. 결혼식 내내 계속 자문했다. 이제 우리가 다른 세상에 살게 되는 걸까. 우리의 간극은 이제 벌어질 일만 남은 걸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울고, 서운하고, 또 더할 나위 없이 한 몸 같던 과거의 너를 떠올리는 걸까. 이후에도 친한 친구들이 결혼을 하면 나는 또 이런 상실감을 느끼게 될까. 결혼은 상실일까. 결혼을 하지 않을 나는 받기만 할 감정일 텐데.
복잡한 마음과는 별개로 표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조금도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서가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삶을 살아보겠다고 결정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니까. 18살부터 조금도 흔들리지 않던 그 강단과 확신으로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다. 처음 결혼 소식을 듣던 그날 제대로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야 해. 진심으로 결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