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경 Dec 24. 2019

미련이 질릴 만큼 끝까지 바닥에 찰랑거릴 때

Linkin Park, ‘Leave Out All The Rest’

Leave Out All The Rest by Linkin Park


많은 사람들이 린킨파크 1집과 2집을 최고로 꼽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체스터의 멘탈이 가장 바닥을 찍었을 때 나온 앨범은 3집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의 질감을 생각하면 3집이 훨씬 정제되었고 차분한 편이기에 의아한 판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고 내 경험을 들여다보면 분명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다. 사람이 우울과 불안이 극에 달해서 정말 이보다 심할 수 없는 지점을 찍고 나면 묘하게 차분한 시기가 온다. “죽고 싶다”는 감정적인 절규가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 있겠다”는 이성적인 결론이 선다. 삶에 대한,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사라진다. 바로 이런 멘탈리티가 제대로 드러나는 곡이 ‘Shadow Of The Day’와 ‘Leave Out All The Rest’이다. 전자와 마찬가지로 후자 역시 차분한 생각으로 시작한다.


내가 사라지는 꿈을 꿨어
넌 너무나 겁에 질렸지
하지만 아무도 네 부르짖음을 듣지 않았어
아무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꿈에서 깨고 나니
이런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
내 삶이 다하고 나면
내 뒤에 남는 건 뭐지?


물론 이를 두고 무조건 화자가 자살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린킨파크의 곡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그리고 린킨파크 측에서 직접 인정하기도 했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작사가 모호하게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 곡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체스터가 서른 남짓에 자기 이후의 삶을 고민할 일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체스터가 진심으로 뒤에 남을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해서 이런 말을 늘어놓는다기에는 다른 트랙들과도 부조화가 발생한다. 사실 이 곡 맥락만 보더라도 체스터가 들여다보는 건 자기 자신에게 가깝다.


그러니 네가 굳이 궁금하다면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해

그때가 오면
내가 저지른 잘못은 모두 잊어 줘
날 그리워할 만한 이유를
남길 수 있도록 도와줘

그리고 날 원망하지 말아 줘
공허한 마음이 들 때면
네 기억 속에 날 떠올려 줘
나머진 다 잊어 줘


그렇다. 화자는 자신이 사라져서 “겁에 질렸”을 다른 사람들 자체가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가 걱정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는 “날 원망하지 말아 줘”라고 부탁한다. “내가 저지른 잘못은 모두 잊어 줘”라고 부탁한다. 이 지점이 내가 그에게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크기의 연민과 공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체스터는 삶에 대한 미련은 깔끔히 버렸을지언정 인간에 대한 미련은 자신이 죽고 나서도 버릴 자신이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자신의 목숨에 대한 미련을 지키기 위해 인간에 대한 미련을 저버리고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그는… 너무나 불쌍한 운명이다. 체스터의 동료인 마이크는 체스터가 가진 최악의 특성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넌 (사람들을) 너무 많이, 너무 깊이 아껴”라고 답한 적이 있다.


내가 겉으로는 강해 보이겠지만
속까지 그런 건 아니야
사실 난 한 번도 완벽했던 적이 없어
그치만 너도 마찬가지지


물론 체스터가 남을 원망할 이유는 많았다. 실제로 원망하기도 했고. 특히 세상 사람들 모두가 체스터 같지는 않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픈 일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속은 하찮을 만큼 약하며 너무나도 불완전하거늘 그걸 인정해야 하는 것은 늘 체스터의 몫이었다. 상대 앞에서는 속만 삭히다가 이처럼 무대 위에서 소심하게 “너도 마찬가지”라고 내뱉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미어진다. 해석 논란의 여지가 많은 브리지 파트에서는 (개인적으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인간에 대한 미련과 원망이 드러난다.


마음속 상처는 모두 잊어버려
마음 숨기는 법은 지금까지 너무나도 잘 깨우쳐 왔잖아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해 버려
마치 다른 누군가가 날 나로부터 구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말야

하지만 난 네가 아닌 걸


사실 화자가 자신의 좋은 점만 기억하고 슬퍼하지 말라고 했던 것은 약간의 비꼼이 들어가 있었던 셈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 앞에서는 벽을 그렇게나 잘 쳤잖아. 내가 떠났을 때도 그렇게 해 줘. 내가 나 자신 때문에 고통받고 있을 때 마치 다른 무언가가 날 구해줄 수 있는 것처럼 날 외면했잖아. 내가 떠날 때도 그렇게 해 줘.” 도저히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여린 화자는 결국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네가 힘들 이유가 뭐 있어?”, “네가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 거 알잖아”, “재경아, 알지? 난 최선을 다했어”, “결국 이건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해. 네가 극복해야지”, “그냥 들어 주면 된다고? 그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재경아, 다 힘들어”,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요즘 우울증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감정을 숨기는 법도 배워야지”, “그렇게 다 드러내고 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 등등. 우울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다 그런 건 아니라고. 누구나 취약해지는 게 필요하다고. 의지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고. 그냥 들어 주면 된다고. 힘든 데는 원인만 있을 뿐 이유는 없을 수도 있다고. 체스터, 당신이 잘못된 건 하나도 없었다고. 아파하지 않아도 됐다고.


그래도 그대가 그랬던 대로, 나도 끝까지 미련을 놓진 않을게. 적어도 찰랑찰랑하게 바닥에 남겨는 놓을게.


매거진의 이전글 신포도식 솔로예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