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뽑은 그의 필모그래피 속 최고의 순간들
원체 다작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홍상수 감독인데도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왜 이렇게 기다려지는지 모르겠다. 그의 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개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설레는 마음을 붙잡고, 일전에 다른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조금 수정하여 옮겨본다. '개인적인 홍상수 어워즈(awards)'.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작품, 장면, 대사, 등장인물 등을 뽑아본 것이다. 늘 비슷한 듯하면서도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는 홍상수 감독이니만큼, 기존 영화들을 되새기고 곱씹어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본 글에는 다수 영화에 대한 내용 누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게 홍상수 감독의 최고의 영화는 역시 <북촌방향>이다. 군복무 중이었던 개봉 당시, 휴가를 나와 극장에 달려가 보고서는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전작 <옥희의 영화>에서 이미 내러티브를 모호하게 하는 형식적 실험을 시도했던 그이지만, 본격적으로 시간이라는 틀 자체를 지워버리고 인물의 동일성까지 해체시킨 극영화를 만들 줄은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진 상상도 못했었다.
이 영화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야말로 '영화적이기' 때문이다. 삶을 담아내는 데에 있어서 다른 어떤 매체로도 표현할 수가 없는, '영화라서' 가능한 것들을 보여준다는 것. 그 점이 내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볼 때 가장 감화되는 부분이고 특히 <북촌방향>은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상황을 조금씩 다르게 변주하여 늘어놓은 채 어떠한 우연이 일어나고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되는지 그저 가만히 지켜보며, 영화 속 인과관계 상의 시간은 불분명하지만(또는 무의미하지만) 관객들이 경험하는 영화로서의 시간은 명확히 하여 축적된 정보들을 매 장면마다 십분 활용하고, 미로같이 얽히고설킨 이야기와 지난한 삶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술 한 잔의 목넘김 마냥 가볍게 털어버리듯 그려내는... 아무리 그럴싸한 말들로 설명해보려 해도 내가 받은 그 느낌을 잘 설명해낼 수가 없다. 그저 영화로만, 그것도 80여 분을 온전하게 써야만 표현 가능한 무언가를 이 영화는 태연하게 담고 있다.
조금씩 구체화되거나 발전된 비슷한 주제들이 변주되고 있는 그의 최근작들 모두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작품이 (전작 <옥희의 영화>와 함께) 그 원형적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번 보았지만 매번 볼 때마다 새로운 감상과 생각에 잠기도록 하는 이 작품을 큰 고민 없이 개인적인 최고의 작품으로 뽑았다.
곧바로 중복되는 작품을 고르고 싶진 않았는데 이건 어쩔 수가 없다. 누군가 생의 시간을 스크린에 가장 고스란히 담아낸 장면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난 고민 없이 이 장면을 고를 것이다. 동 트는 새벽(영화 속 시간대가 불분명한 작품이므로 이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술집에서 나온 등장인물들이 택시를 잡아 차례로 떠나가는 모습은 소름 끼칠 정도로 실제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장면을 촬영할 때 택시를 따로 섭외하지 않고 정말 택시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배우들이 실제로 택시를 잡아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한다. 내용적으로나 방법론적으로나 그야말로 우연으로 이루어진 장면인 셈. 처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을 때,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비현실인지, 인물들의 기억이 꼬인 것인지 아니면 시간이 꼬인 것인지 등에 대해 이런 저런 추측들을 시도하며 보고 있다가, 영화 중반의 이 아름다운 장면에 이르러서야 쓸데없는 추측들을 모두 내려놓았던 기억이 난다.
비록 최고의 장면으로 꼽진 않았지만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기엔 너무 아까운, 우연의 기운이 서린 또 다른 명장면이 있다. <우리 선희>를 본 관객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문수의 술주정 신. "끝까지 파봐야 가는 거고, 파봐야 가는 거고, 파고, 가고, 파고, 가고..." 똑같은 얘기를 하고 또 하다 잠깐 쉬고 또 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 그럴싸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실제로 이선균 배우가 술에 취해 다음 대사를 잊어버렸을 때 나온 컷이라고 한다. 보통이라면 NG가 됐을 그 상황에서 상대 배우인 정재영은 그의 주정을 계속 받아주었고 감독과 스텝들은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내가 홍상수 감독을 처음 접하게 된 영화다. 처음엔 극적 사건 없이 일상성에 갇힌 인물들만 계속 비추는 나른한 서사가 생소해 멍하니 보고만 있었는데, 마지막 바닷가 신에서 고현정 배우가 툭 내뱉은 이 대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딱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사람 맘 하나 잡기가 정말 참 힘들죠." 이 대사는 '척'하기 좋아하는 우리네 일상사에 던지는 메시지로 읽히기도 하고, 감독 자신의 영화적 태도를 함축하는 한 마디 같기도 하다. <다른 나라에서>에 출연했던 이자벨 위페르의 말을 인용하자면, 홍상수는 '최소한의 것을 해서 최대의 결과를 얻어내는' 감독이다. 다른 이들이 많은 것들을 하고도 작은 결과를 얻어낼 동안 말이다. 그건 그가 자신이 느껴보지 않은 감정이나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표현하려 들지 않고, 직접 경험한 범위 안에서만 영화를 찍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하하>에서 문경의 꿈 장면에 난데없이 등장해 여러 주옥 같은 대사들을 남기고 사라졌던 뜬금포(?) 카메오 이순신 장군(김영호 배우가 연기했다). 그가 남긴 명대사 시리즈들 중에서도 특히 이 한 마디는 왠지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
사실 옥희를 선정하는 데에 정유미 배우에 대한 팬심의 영향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김광식 감독의 <내 깡패 같은 애인>을 보고 한눈에 반했던 그녀가 홍감독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다는데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나! 개인적으로 추측하기를, 이 옥희라는 캐릭터(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우리 선희>의 선희까지)가 홍상수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여성의 모습일 것이라 생각한다(남성 캐릭터의 경우 유준상 배우가 연기한 인물들이 그런 느낌이다). 지적이면서 의존적이지 않고 당찬 그녀의 등장은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감독의 방식이 변하기 시작한 어떤 전환점 같기도 하다.
큰 고민 없이 바로 옥희(또는 선희)를 고르기는 했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고순(고현정), <다른 나라에서>의 안느(이자벨 위페르),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해원(정은채)도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들이다. 이렇게 늘어놓고 나니 문득, 이들이 연령대만 다르게 하여 변주한 동일한 인물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남성 등장인물에 애정을 갖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같은 남자로서 보기에도 너무 창피한, 때로는 속내를 들키는 것만 같아 뜨끔하게 하는 그들의 소위 '찌질함'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많은 관객들을 불편하게 해왔다. 김상경 배우가 연기한 대표적인 상찌질이 캐릭터들에서부터, 이선균 배우의 개찌질이 캐릭터들로 정점을 찍는가 했는데, 뭔가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유준상 배우가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하하하>에서 그가 연기한 중식은 물론 찌질하기도 했으나 나름의 순애보도 있었고, 그 어설픔이 일면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의 이름 없는 안전요원의 경우 좀 바보 같아 보이기는 해도 찌질하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이렇게 조금씩 진화해온 '홍상수의 남자들' 목록에 드디어 추가된 '낭만적인 남자'가 <자유의 언덕>의 주인공 모리다. 그는 자신이 아는 가장 훌륭한 여자인 권을 만나기 위해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다. 그가 진정 '착한' 남자인지 확신까지는 못하겠지만 이제껏 낭만적인 '척'만 하던 다른 남성 캐릭터들 사이에서 차별성이 느껴지는 건 확실하다(여성을 칭찬할 때 쓰는 최고급 형용사가 예쁘다에서 훌륭하다로 바뀐 것만 봐도 엄청난 변화다). 카세 료의 영화를 본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었는데, 외국 배우가 소주를 마시고 얼굴이 벌게진 채 연기하는 모습이 썩 인상적이었다.
사실 (홍상수 영화 속 커플들이 익히 그러하듯)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나야만 하는 이들의 사랑은 지극히 지리멸렬하다. 자신의 관계를 인정받고자 하는 연주는 유부남인 중식의 애매한 태도를 책망하는데, 중식은 매번 이야기를 회피하고 결정을 유보하려고만 한다. 이들의 상황을 글로 적어놓고 보니 '최고의 커플' 이라는 말이 참 무색한 것 같지만, 영화에서 두 사람의 너절한 연애는 시종 귀엽게 그려진다. 사소한 계기들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할 때마다 아이(바보)들처럼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은 심지어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백치'를 넘어선 '순수'를 간직한 여남 캐릭터가 이렇게 커플로 등장한 것은 이들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우산 하나에 의지한 채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통영 부둣가에서 서로를 꼭 안고 서있는 모습은 <하하하>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 중 하나다. 정작 서로의 사랑을 행복하게 낙관하는 마지막 기차 신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현실적 상황을 상기시켜 씁쓸함을 남긴다.
이 커플은 유일하게 두 편의 영화에 같은 역할로 등장한 캐릭터들이기도 하다. 극장에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보고 있는데 이들이 능청스레 걸어나오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모두 빵 터졌던 기억이 난다. 다른 영화에서도 이들의 후일담을 또 볼 수 있을까? 뭐, 계속 똑같은 신세일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하 하 하...
가장 고르기 힘들었던 부문이다. 촬영 장소의 정서를 영화의 중요한 한 축으로 삼는 홍상수 감독이기에 대부분의 영화들에서 배경이 되는 장소들이 정말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특히 최근작들의 경우 촬영 전에 찍을 장소와 배우들 정도만을 결정하고 제작에 들어간다고 하니, 완성된 영화에서 장소가 갖는 비중은 그의 페르소나들이 갖는 그것과 다름 아닐 것이다.
<강원도의 힘>의 설악산과 <북촌방향>, <자유의 언덕>의 북촌, <다른 나라에서>의 부안 모항,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남한산성, <우리 선희>의 창경궁 등의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고심하다 결국 <하하하>의 통영을 골랐다. 파란 바다와 하얀 건물들이 어우러진 이 작은 항구도시는 언뜻 나폴리 등의 유럽의 항구 도시를 연상시키다가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극히 한국적인 토속성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언덕으로 된 골목들이 얼기설기 얽혀있는 소박한 동네와, 녹색에 둘러싸인 팔각정이 함께 있는 곳. 바닷바람이 거세고 날씨도 변덕이 심하지만 바닷가 특유의 새파란 하늘부터 몰아치는 비바람까지 썩 '예쁘게' 어울리는,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의 도시라는 역사성까지 간직한 작은 도시. 재작년 여름 통영으로 여행을 갔을 때, 이곳의 정서를 고스란히 영화에 담아낸 감독의 감각에 새삼 탄복했더랬다. 특히 문소리 배우의 사투리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지역 문화해설가 성옥이라는 캐릭터는 지역의 색을 한껏 살려주었던 인물로 기억에 남는다.
나는 사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하 <해원>)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두 영화에 삽입된 음악이 같은 음악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밤과 낮>을 보고 나서야 <해원>을 볼 때 느껴졌던 왠지 모를 스산한 기운이 이 음악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 영화가 일기 형식으로 생의 시간을 분절적으로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단 사실도 눈치챌 수 있었다. 두 영화 모두 중간중간에 끊어지던 음악의 클라이막스를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온전히 들려주는데, 그 느낌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프게, 또 약간은 공포스럽게도 느껴진다. 특히 <해원>의 경우 영화 속에서 성준이 카세트를 들고 다니며 계속 이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도 재미있는 지점이다.
(음악 링크 : Beethoven Symphony no.7 II - Leonard Bernstein)
<우리 선희>에서 주인공들이 이동하는 곳마다 흘러나오는(그래서 장면 전환 시점을 알려주는) 가수 최은진의 '고향'이라는 곡도 꼭 언급해두고 싶다. 고상한 음악이나 미술 작품 등만 인용되던 홍상수 영화에 처음 등장한 이 뽕끼 충만한 노래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우리 선희>라는 영화가 갖고 있는 스탠스를 나타내 주는 것 같다.
(음악 링크 : 고향 (live) - 최은진)
<하하하>에서 문경이 꿈에서 이순신 장군을 만나는 장면은 어떠한 유머에도 진지함을 잃지 않고 영화에 집중하던 관객들까지도 모두 무장 해제시키는 장면이다. 문경이 꿈에서 깨어나 바로 적어둔 것처럼 "예쁜 시를 매일 한 편씩 써 봐라.", "난 좋은 것만 본다. 항상 좋은 것만 보고 아름다운 것만 보지." 등의 대사들을 나도 노트 한 켠에 적어두기도 했었다. 영화 전체의 느낌도 그렇지만 특히 이 대목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이창동 감독의 <시>와 이 작품이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는 생각(억측)을 해보기도 했었다. 여하튼 우스꽝스럽게 등장하여 진지한 명대사들을 포풍같이 읊어주신 장군님. 그러고 보니 이 장면이, 홍감독의 영화에서 꿈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기 직전의 가장 '꿈다운 꿈' 장면이기도 하다.
배우들을 그때그때 생각 나는 대로 연락해서 섭외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에는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카메오들이 더러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역대급 '웃픈' 장면을 만들어주었던 젊은 화가 조씨 역의 하정우 배우(처음엔 하정우인지도 몰랐다)와 첫 영화 출연에 프랑스 국민 여배우와 능청스레 선문답을 주고받았던 <다른 나라에서>의 도올 김용옥 씨 등도 잊기 힘든 카메오들이다.
3부로 나누어져 있는 <다른 나라에서>의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술에 취한 안느가 소주병을 해변에 던져 버리는 장면이 나올 때 아마 적잖은 관객들이 '아' 하고 소리 없는 탄식을 뱉었을 것이다. 이전에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다른' 안느와 일행들이 해변에서 깨진 소주병을 보고 '한국 사람들의 수준'에 대해 운운하는 장면을 이미 보았었기 때문이다. 이 소주병과 그 소주병이 같은 것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항상 '차이와 반복'이라는 방식으로 우리의 크고 작은 오해들을 적나라하게 들춰내 왔는데, 이 깨진 소주병은 그 오해들을 집적시켜 놓은 소품이라 할 수 있다. 너무나도 쉽게 범하는, 내가 누군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것이라는 오해, 그리고 수많은 것들을 아우르는 일반성을 간단한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으리라는 오해.
동일한 작품에서 영화의 형식적인 구조와 안느라는 사랑스러운 캐릭터의 색깔을 동시에 드러내 주었던 안느의 우산과,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성준의 카세트도 이 부문의 유력한 후보들이었다. <자유의 언덕>의 뒤섞인 편지도 결정적 소품이라 할 만하다.
대망의 마지막 부문이다. 최고의 대사 부문에서 이미 같은 작품을 다루었으니 여기선 짤막하게만. 제목이 영화 전체를 이렇게 잘 대변해주는 경우도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담고 있는 내용도, 착착 달라붙는 어감도 너무 마음에 든다. 영어 제목 <Like You Know It All>도 참 좋았다.
외에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우리 선희>, <자유의 언덕> 등 좋아하는 제목들이 많다. 영어 제목들 중에서는 <The Day He Arrives>(북촌방향)를 좋아한다.
실은 '최고의 예고편'이라는 부문을 만들어서 넣어보려다 너무 억지스러운 것 같아서 뺐다. 이 독특한 예고편을 꼭 소개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거꾸로 재생시킨 영화 속 장면을 예고편으로 활용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북촌방향> 때는 아무런 대사가 없었던 데에 반해, 이번에는 인물들의 대화 장면을 역재생시켜 알 수 없는 이상한 언어의 소리가 들리도록 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자막으로는 (절대 원래 대사일 리 없는) 의미불명의 대화가 지나간다.
신작의 제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영어 제목은 <Right Now, Wrong Then>이다. 언뜻 보면 직역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알다시피 'right now'는 '지금이 맞다'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는 뜻으로 주로 쓰이는 표현이다. 추측컨대 이 말장난 같은 영어 제목을 먼저 정한 뒤에 이를 국내용 제목으로 번역했으리라. 실험적이고 재치 있는 예고편과 제목, 본편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