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잉위잉 전동 기계 소리, 뚝딱뚝딱 수공구 소리, 서로를 부르는 거친 고함 소리, 드나드는 트럭의 굉음. 현장의 소리들 속에 둘러싸이면 나도 괜스레 강인해진다. 걸음도 성큼성큼 걷고, 뭔지 모를 더러운 쓰레기도 덥석덥석 줍고, 무거운 것도 번쩍 들고, 더위와 땀도 받아들이고, 큰 벌레도 평소만큼 무섭지 않다. 말 습관도 바뀌는 듯하다. 이제 콘크리트는 콘크리트가 아니다. 공구리다. “소장님! 오늘 공구리쳐요?”
몇 해 전까지 다양한 ‘현장’ 속에 살았다. 뜨거운 한여름이거나, 매서운 한겨울이거나. 환경은 하나같이 혹독했다. 눈이 맵도록 악취가 심했고, 장화발이 푹푹 들어가던 그것은 개들의 배설물이었고, 녹슨 뜬장과 울타리에 긁히기 십상이라 집에 돌아가면 몸 여기저기 이유를 알 수 없는 멍과 상처가 남아있었다.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개들을 도둑질하려는 작자들이 늘 도사리고 있어 경비에는 밤낮이 없었고, 날마다 위급 상황이 벌어져 체계라는 것이 무의미했다.
그곳을 지키던 95% 이상은 늘 여성들이었다. 현장 가까이 차가 닿지 못하면 그들은 2리터짜리 생수 6개 들이를 양손에 들고 십 수 번을 왔다 갔다 했다. 제 몸크기만 한 사료 포대를 양 어깨에 이고 지고 다녔다. 제 무게보다 더 나가는 개들을 거대한 이동장에 넣어 두 사람이서 좁은 길을 곡예하듯 날랐다. 절단기와 그라인더로 뜬장을 꼼꼼하게 잘라내며 화난 마음을 잠재웠다. 학대자와 싸울 때는 세상에 있는 욕 없는 욕을 모조리 쏟아붓다가도, 네 발 달린 가여운 아이들을 대할 때만큼은 몸에 애기동자가 들어서서, 낼 수 있는 최대치의 하이톤으로 겁에 질린 아이들을 달래려 애를 썼다. 좁은 뜬장에 들어가 개와 한마음이 되어보려고도 하고, 필요하면 개똥 위에 드러눕기도 했다. 땀도 더러움도 무서움도 잊게 하는 곳. 내가 경험한 ‘현장’에는 늘 같은 뜻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에너지가 있었다.
건축 자재 밑에 숨은 쓰레기를 줍고 다니다 보니 온몸에서 땀이 난다. 뙤약볕과 땀이 어우러지면 그날들이 떠오른다. 위대한 여성 동료들의 얼굴. 이제, 더운 날씨에는 밖에 나와 노동하는 것이 필연으로 느껴진다. 그곳들의 악취에 비하면 레미콘 트럭이 휩쓸고 간 후의 모래 먼지의 냄새는 참 세련되기 그지없다.
오늘은 레미콘 트럭에 밟혔는지 막 옆구리가 터져 고통에 몸부림치는 뱀을 마을 입구에서 발견했다. 우리 집 짓느라 온 레미콘 트럭이니 내 탓이 크다. 로드킬 당한 동물을 만지는 건 왜 그리도 무서울까? 마지막 가는 길 조금이라도 편안하라고 풀숲에 옮겨주고픈데, 심지어 죽은 것도 아니라 더 소름 돋는다. 나뭇가지로 살짝 건드려 물컹함을 예행연습하고, 몇 번의 심호흡 후 나뭇가지 끝에 그를 걸어 올렸다가 얼굴을 보았다. 죽음을 예감한 듯 눈을 질끈 감은, 피범벅이 된 그의 얼굴을 보니 참 미안했다. 그래도, 현장의 강인한 기운을 얻어 뱀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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