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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May 09. 2024

좋은 집터를 고르는 방법

… 그런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마다 좋아하는 집터의 조건은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특히 반려동물 친구들에게도 통용될 좋은 집터의 조건 하나만 꼽자면 ‘산책로’라고 말하고 싶다.


서울과 제주에서 세 번의 건축주 경험이 있는 부친께서는 땅을 보러 다니던 내게 “집 근처에 괜찮은 산책로나 계곡이 있으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하신 적이 있다. 개 키우는 입장에서 한적한 시골은 서울에 비하면 산책 난이도가 낮은데, 산책로가 또 필요한가 싶었다. 원하는 토지 조건도 이미 구체적이고 많아 산책로와 계곡까지 따지는 건 욕심이었다.


4개월간 물밑 작업을 했는데, 땅에 얽힌 문제가 까다로워 이 마을에 집 짓기를 포기할 뻔했다. 그때 ‘어떻게든 이곳에 집을 짓고 말리라!’ 마음을 꼭 붙든 것이, 다름 아닌 동네 산책로다. 우연히 산책로 입구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지금쯤 엉뚱한 곳에 집을 짓고 있겠지.



마을을 벗어나 길만 건너면 펼쳐지는 녹색의 고요. 끝을 모르게 펼쳐지는 참나무 숲. 굽이굽이 산책길 따라 펼쳐지는 강물의 윤슬과 가평 특유의 울끈불끈 산세. 이곳에 도달하면 시끄럽던 속내가 침묵한다. 자동차 피하느라, 사람 보이면 도망가느라, 담배 연기에 코 막느라. 리드줄 타고 전해지는 나의 스트레스를 함께 공유해야 했던 계피와 치토의 꼬리놀림도 이곳에선 한껏 여유롭다. 시골 산책하는 우리 셋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는 제목을 감히 붙일 만하다.


걷고 싶은 길. 지루할 틈 없는 길. 계절에 따른 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하루하루 다른 모습이다. 어제는 햇볕에 마른 건조한 공기 속을 비집고 아카시아꽃 내음이 코를 후볐다. 오늘은 하루 사이 나무가 더 우거져 축축한 우림의 향이 난다. 제법 지난한 역사를 지닌 산책로다. 가평과 양평의 수변 구역 일대는 지금보다 숙박시설과 상업시설이 즐비했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수질오염이 극심해졌고, 오랜 시간과 예산을 들여 생태 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다. 얼마나 말 많고 탈 많은 행정 의사 결정이었을까? 늦게 태어난 덕에 혜택만 본다.



공사 현장 소음이 평소보다 심했던 어제, 조용히 숲으로 숨어들었다. 걷다 보면 누군가 가져다 놓은 의자가 보인다. 멀찍이 강가에 무리지은 은사시나무를 감상할 수 있다. 아직 서늘한 그늘 아래, 포토샵 누끼 따기 노동을 감행했다. 10분쯤 지나니 엉덩이가 아려, 두고 온 캠핑 의자가 눈앞에 아른. 20분쯤 지나니 수달인지 고라니인지 꿩인지 숲 속에서 누군가 부스럭대는 소리에 신경을 빼앗기고 만다. 노트북은 무리, 돗자리에 누워 책 읽기에는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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