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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May 19. 2024

건축주의 특권



착공 후 한 달 반 가량 지났다. 거푸집을 걷어내자 계피로드*의 난간벽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2층 벽이 올라가면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속 모습이다. 덜 말라 어둑한 콘크리트는 곧 뽀얗고 매끄럽게 변하게 된다. 이미 밝은 회색 톤으로 마르고 있는 윗부분이 보인다.


*계피로드(Cinnamon Road): 계단 오르기를 사랑했지만, 이제 고령으로 인해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거나 꽈당하는 조계피(17세)를 위한 경사로. 집 내외부의 모든 계단을 대체한다.


거푸집 상태에 따른 콘크리트 표면 차이를 설명해 주시는 현장 소장님. 거푸집 표면이 더러우면 단순히 표면 질감만 다를 것 같았는데, 그 요철 자국의 그림자 때문에 명암은 물론, 색감마저 묘하게 달라지는 것이 신기하다. (흡수와 관련 있다고 하셨는데 기억이…) 그래서 외부 미장이 덮일 곳은 재활용 거푸집을 사용해 비용을 줄이되, 생활공간인 내부 노출 콘크리트 면은 깨끗한 새 거푸집이 사용되었다는 설명을 덧붙여주신다.


그도 그럴 것이 먼저 작업된 외부 난간벽의 경우 매끄럽기가 화이트 큐브 갤러리 수준이다. 내게는 과분한 깨끗함. 시간이 지나며 집주인 닮아 거칠고 얼룩덜룩해지기를. 군데군데 완벽하게 채워지지 않아, 콘크리트 재료인 자갈 더미가 노출된 곳이 보인다. 현장 소장님은 깨끗하게 채워지지 않은 것을 크게 아쉬워하시는데, 나는 그 자연스러움과 거침이 아름다워 연신 사진을 찍는다. 딱 바라던 바다.



본가에서 현장까지 35분. 멀지 않은 거리라 거의 매일 현장을 찾고 있다. 처음엔 의무감이 다였지만, 지금은 갈수록 커지는 호기심으로. 공사를 지켜보며 궁금한 것은 여쭤보기도 하고, 휴식 시간에 대화를 나누다 자연스레 다음 공정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그러다 보면 아무에게나 말해주지 않을 것 같은 노하우도 듣게 된다. 이런 앎을 통해 집 한 채에 투여되는 ‘느린 정성’을 피부로 느끼고, ‘빨리 지어지기만 하면 좋겠다’ 던 조바심은 누그러진다.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건축주의 엄청난 특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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