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피야, 너에게 이 집을 바친다
경사로에 콘크리트가 채워지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 집을 관통하는 좁고 긴 경사로. 여기엔 수많은 번뇌와 고민이 담겨 있다.
“흠. 그래도 개는 사람보다 수명이 짧잖아요. 앞으로 본인 살 날이 훨씬 긴데, 그것도 생각해야지.”
경사로가 들어선 설계도를 보고 어느 지인이 꺼낸 걱정 어린 얘기. 낮은 건폐율 때문에 1층 면적이 썩 넓지 못한 상황. 경사로의 주인공 수명을 고려하면 공간 낭비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경사로 얘길 하면 대부분의 반응이 그랬다. 효율과 효용의 시각들. 개들을 고려한 경사로는 집 짓기의 현실을 아직 모르는 초보 건축주의 순진한 망상일까?
외로운 망상에 실현의 양기陽氣가 드리운 건 바이아키텍쳐 이병엽 소장님과의 대화를 통해서였다. 그는 경사로에 대해 호의적 반응을 보인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 오히려 재밌겠다는 반응이다. 대신 미션이 주어졌다. '길쭉한 땅 찾기.'
여기서 잠시, 벗友이기도 한 그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코멘트를 덧붙여본다. 대체로 그는 진중한 으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가끔은 소년처럼 엉뚱하다. 그래서 “그럼 길쭉한 땅을 찾으면 되겠네”라고 그 왕방울만 한 눈을 번뜩였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지금 이 말은 진지한 으른이 하는 말인가? 아니면 엉뚱한 소년이 하는 말인가? 기다란 땅이 있기야 있겠지만, 몹시 드물다는 걸 알 텐데. 하지만 그 큰 눈을 치켜뜨고 말하면 청자인 나에게 책임감 같은 게 생긴다. '어떻게든 길쭉한 땅을 찾아야해.' 책임감은 오기로 변한다. 결과적으로 땅 찾기 말미에 길쭉한 땅이 눈앞에 나타나다니, 운명 같다.
2022년 11월 18일, 산책하던 계피가 휘청거리더니 넘어졌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더니, 목을 가누지 못했고, 조금 지나자 눈알도 빙글빙글 돌아갔다. 당황해서 애니님에게 전화를 해버렸다. 놀라 울부짖는 나 대신 병원 예약을 잡아준 그녀 덕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계피를 들쳐 안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그날은 내가 기나긴 단발 인생을 종결하고 숏컷 인생을 시작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래서 괜히 머리카락을 잘라서 이런 불운이 터진 건가, 자책도 했다.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하루. 아무런 준비 없이 계피와 이별하는 줄 알았다. 평생 흘렸던 눈물의 총량을 하루 만에 다시 쏟았다. ‘특발성 전정계 증후군’이라는 애매한 진단이 있었고, 한참 후에 ‘중이염’이었다는 걸 확인했다. 같은 증상이 몇 번 재발하며 고비를 넘긴 뒤, 요즘엔 큰탈 없이 지낸다. 하지만 그날 이후, 계피의 균형 감각이 손상되었다는 걸 느낀다. 영민하게 오르내리던 계단에서 발이 꼬여 넘어지고, 충분히 점프를 못해 계단 챌판에 정수리를 박고, 어디선가 뛰어내리다 접질려 한쪽 발을 들고 낑낑거리며 나를 찾는 횟수도 늘었다.
나의 ‘계단 노이로제’는 그렇게 시작됐다. 계단뿐이랴. 식탁 의자, 높은 침대. 계피의 키보다 높은 구조물은 다 싫어졌다. 출입할 때 다섯 번의 계단을 거쳐야 하는 이 아파트에서의 산책길은 ‘외출’이 아닌 ‘탈출’이다. 오직 하나, 아파트 입구의 휠체어용 경사로만이 마음 놓고 계피를 내려놓을 수 있는, 이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맘에 드는 부분이다.
단층집을 짓고 싶지만 건폐율이 모자라고, 엘리베이터는 치토가 온몸으로 싫단다. 해법은 경사로뿐. 그렇게 1년 정도, 경사로를 만날 때마다 맨땅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기울기를 측정해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휠체어용 경사로 기울기는 1/12라고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높이 1m를 오르려면 12m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공용 경사로의 기울기를 재보면 대체로 7도 이하다. 걸어 다니는 입장에서 7도는 완만하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오직 상체의 힘으로 7도의 기울기를 견딘다고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기울기다. 당시 다니던 수영장이 소아마비협회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이었는데, 장애인 회원이 많았다. 그래서 경사로가 특히 널찍했는데, 기울기를 재보니 5도 정도로 아주 완만했다. 하지만 우리 집 경사로가 겨우 1~2도 더 가파르다고 큰 지장이 있을까? 기울기를 1도 가파르게 하면 경사도 길이를 대폭 줄일 수 있는데.
그 의문은 헬스장 클라이머가 해소해 줬다. 7도는, 몸이 편안하다. 8도,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9도, 엉덩이를 거쳐 허리까지 힘이 들어가며 상체가 약간 굽어진다. 10도, 땀샘이 열린다. 결국은 7도가 답이다. 여기에 맞추자면 이 집은 정말 경사로가 중심인 집이 되어 버릴 텐데. 집이 대체 얼마나 길어야 할까? 동시에 건폐율에 맞추려면 집은 그만큼 얇아질 것이다. 막막한 부분. 공간의 효율은 챙기고 싶고 경사로는 필요하고. 그래서 막판엔 경사로에 대한 자신감이 급락했다.
나는 월권을 하는 것도, 당하는 것도 몹시 싫다. 훌륭한 설계자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고유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되도록 그림이 아닌 텍스트로 요청 사항을 전했지만, 경사로만큼은 꼭 그려봐야 했다. ‘당최 말이 되는’ 요구사항인지 나부터 알고 봐야 했기에. 그래서 그려본 입면. 어떻게든 경사로를 넣었는데, 각도도 가파르고, 나머지 공간은 어쩔 줄 모르겠다.
건축가들과 함께라 든든한 점이 바로 그런 점이다. 도통 대안이 생각나지 않아 어쩔 줄 모를 때, 그들은 공간의 경험으로 그것을 실현해 준다. 거기에 적절한 실용과 심미성까지 더해서. 그렇게 경사로는 우리 집의 중심축이 됐다. 마지막 남은 짧은 외부 계단마저 도면에서 모조리 소멸시키자 비로소 안온함이 느껴졌다.
다시 지인의 걱정 어린 조언으로 돌아가, 효율과 효능 문제를 따져보자. 개들의 수명은 짧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들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7배 빠르다는 설이 있다. 내가 한 시간 외출하면 개들은 일곱 시간 혼자 있다 느끼고, 우리가 하루를 살 때 개들의 시간은 일주일이 지나있다는 것. 계산을 해보자. 계피의 시간이 5년 남았다고 하면, 내게는 짧은 5년이지만 계피에게는 기나긴 35년인 셈이다. 7년 남았다면, 거의 50년이다. 그 정도면 경사로가 집의 절반을 차지한다 해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개들과 쌓아 온 시간과 추억을 생각하면 그런 식의 효율 계산법은 무색하다. 친구, 친족, 부부 사이에도 ‘계산’이 있지만, 유일하게 우리 사이에는 계산법이 없다. 조건 없는 사랑(unconditional love). 계산할 필요 없이 마음껏 사랑하고 정성을 쏟는 것. 불가능하다 믿었던 그것이 개들과 함께 살면서 가능해졌다. 나와 개들은 어제의 사랑마저도 매일 갱신하는 초월적인 사랑 속에 산다. (나만 그렇게 느끼니?)
계단 오르는 게 힘들어진 계피처럼, 나도 계단을 오르기 힘든 노년을 맞이할 것이다. 경사로의 첫 주인공이 떠난 후에도 이 경사로는 쓸모가 있다. 일종의 ‘유니버설 디자인’인 셈이다. 연약해진 무릎 때문에 계단을 오르기 힘들거나, 계단 자체를 오를 수 없는 새로운 주인공을 맞이할지도 모를 일. 사실 계단이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이들에게나 쓸모 있지, 누군가에겐 가장 불필요하고 불평등한 구조일지 모른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경사로에 의지할 때가 오지 않을까.
우리의 안전한 시간을 담을 길. 뭐든 개척자의 이름을 붙이는 법이니, 이 길의 이름은 ‘계피로드(Cinnamon Road)’가 적당하겠다.
계피야, 들리니? 너에게 이 집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