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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Nov 26. 2024

나는 건축과 결혼했다

이제는 이혼하고 싶다

“와장창, 쨍그랑, 와르르…”


이것은 건축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는 소리.


작년 8월, 땀을 뻘뻘 흘리며 박아 둔 경계 말뚝이 사라졌다. 유실을 막기 위해 철물점에서 1m짜리 철근까지 사 와 옆에 같이 박아 두었다. 빨간 노끈으로 리본도 묶어 두었다. 집을 짓기 전 공부한답시고 처음 본 영상에서 ‘경계 말뚝은 목숨처럼 지켜야 한다’라고 배워서다. 그것 때문에 애써 올린 집이나 담장을 부숴야 할 수도 있다고.


2023년 8월, 경계복원측량과 함께 말뚝을 박았다. 이웃집 정 선생님의 도움으로 1m짜리 철근도 추가로 박아 두었다.


공사를 진행하며 소중한 말뚝, 아니 내 목숨이 하나둘 사라지는 광경을 봤다. 또는 현장에서 대충 다시 꽂아 옮겨져 있었다. 집이 대지 경계를 넘는 부분은 없으니 대부분은 없어도 괜찮다. 문제는 옆땅과의 경계에 세워질 외부 담장의 기준점. 자칫하면 남의 땅에 콘크리트 담장을 세우게 될 수도 있다. 마지막 하나 남은 말뚝. 저게 내가 세운 말뚝이 정말 맞나? 현장에서는 그 불분명한 말뚝을 기준으로 외부 담장을 세우려 한다.


외부 담장을 세울, 마지막 목숨을 가운데 두고 이해관계자가 모였다. 동네 어르신도 삼삼오오 모였다. 어제는 국유림관리소에서도 말뚝을 박는다고 찾아온 터라 총 열댓 명의 남성들이 구경 중이다. 자욱한 담배 연기는 필수, 가래침은 옵션.


50에서 80대까지 다채로운 연령의 남성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 사람은 합법, 저 사람은 불법, 요 사람은 편법을. 내게 유리하게 들리는 말들에 현혹되다 그들의 얼굴을 본다. 정신을 차리자. 한두 번 당하냐. 잘못된 담장을 다시 세워줄 놈은 여기 한 명도 없다. 열댓 명의 저음을 뚫고 고음으로 외쳤다.


“남의 땅 1cm도 넘어가기 싫구요, 담장 잘못 쳤다 경계 넘어가면 다시 세워줄 분 없구요, 여기 제 인생 책임져줄 사람 없구요. 그러니까 담장은 경계측량 다시 하고 정확히 세워요. 됐죠? 끝!”


국유림 관리소에서 나온 이들 중 꼬장꼬장해 맘에 안 들던 노인이 호응했다. 저 여자가 정리 잘한다며. 집주인 말이 맞다며.


호탕하게 큰 소리는 쳤으나 돈 문제가 남았다. 측량비 70만 원. 그래, 70만 원 내고 털자. LX국토정보공사에 전화했다. 그새 공시지가와 세금이 올라 측량비가 82만 원이 됐단다. 앞자리가 바뀌니 좀 짜증 난다.


‘이 돈도 결국 내가 내겠지.’


몇 번째일까. 더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 무사히 집에 입성하려 마지못해 남의 잘못을 내 돈으로 덮는 게. 이렇게 억울한 돈이 나갈 때마다 보호소 사룟값에 비교하곤 한다. 지금까지 대신 낸 돈으로 보호소에 사료 300포대쯤은 보냈겠지. 또 억울함에 밤잠을 설치고 새벽 4시에 깨고 말았다.


내가 쓸고 닦은 나의 버진로드(?)


이상하리만치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건축가가 될 것도 아니면서 별별 건축 행사에 찾아다녔다. 내 집도 아니면서 집을 설계한 건축가의 의도가 궁금했다. 환상을 가졌나. 그 환상은 지금 와그리장창 무너지고 있다.


그동안 건축과 ‘연애’를 하다 ‘결혼’을 한 셈이다. 결혼은 현실이라고들 한다. 연애 시절의 콩깍지는 벗겨지고, 돈 문제가 생기고, 볼꼴 못 볼꼴 다 본다. 보기 좋은 건축물, 그 뒤에 가려진 건축주의 애환. 그 산증인이 되어버렸다. 다들 내 남편을 멋있다고 칭찬하는데, 그 뒤에서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도 애증의 남편 건축 씨의 편을 들자면, 건축은 문제가 발생하기 쉬운 영역 같다. 생판 모르던 여러 주체가 모여서 단기간에 호흡을 맞춘다. 문제가 없는 게 이상하다. 다만 문제의 스케일이 크다. 그간 전해 들은 문제에 비하면 내 문제는 새끼발톱 때 정도 일지도.


난 왜 ‘건축주’의 경험담은 궁금해하지 않았나? 건축물의 ‘발제자.’ 특히 그것이 집이라면 건축주는 결과물과 가장 오랜 시간을 부대낄 주인이자 주인공이다. 건축주 얘긴 잘 없기도 하다. 매체는 건축주보다 건축가의 이야기를, 과정보다 결과를 담는다. 건축주의 이야기를 담기엔 수위가 높아서일까. 별로 좋은 내용이 없어서일까. 그것이 건축의 허와 실은 아닐까. 그것은 미래의 건축주를 힘들게 하는 요인 아닐까. 건축주가 맞닥뜨릴 주요한 문제들이 네이버카페에나 떠도는 불운한 누군가의 일화에 지나지 않는 이유 아닐까. 그것이 그나마 건축주 이야기가 나오는 EBS <건축탐구 집>이 부쩍 노잼인 데다 짜고 치는 느낌이 드는 이유 아닐까.


거리에서 집을 보면 어느 건축가가 설계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이제 건축주가 궁금하다. 웃었을까, 울었을까?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결론. 이제는 이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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