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번쯤 만들어 보고 싶던 책 같은 집
인쇄물을 만들 때 가장 아쉬울 때는 코팅을 해야 할 때다. 개인적으로 코팅을 좋아하지 않는다. 실은, 너무너무 싫다. 속상해서 마음이 아플 정도로.
첫째, 종이 본연의 질감을 잃게 만든다. 둘째, 코팅 필름은 결국 석유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이다. 셋째, 가장 재활용이 용이한 자원인 종이를 코팅하면 재활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책을 랩핑하는 방법이 있는데 랩핑 비닐도 플라스틱인 데다, 책 안팎을 구석구석 보고 나야 구매를 결정하는 편이라 랩핑된 책은 조금 야속해 보인다.
코팅의 인상을 갖는 게 유리한 디자인도 있다. 잉크 묻어남 때문에 반드시 코팅을 해야 하는 종이도 있다. 특수한 질감을 흉내 낸 코팅도 있다. 하지만 코팅하는 순간 책의 얼굴이 획일화되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코팅으로 덮어버리기에 세상엔 아름답고 흥미로운 종이가 무궁무진하게 많다.
많은 책이 코팅을 택하는 것은 유통/보관 과정에서의 손상을 줄이기 위함이 크다. 손상이 덜한 특수지도 있지만 대량 출판에 사용하기엔 비싸다. 게다가 손상이 덜한 것이지 없지도 않다. 띠지가 조금 찢어져서, 모서리가 조금 찍혀서, 표지에 뭐가 묻어서, 접힌 자국이 나서. 그렇게 상품성 없다는 이유로 많은 책이 반품된다. 그 반품 기준은 무코팅 책에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가끔은 내 역할이 코팅했을 때 괜찮은 책을 디자인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 돈으로 만드는 책도 아닌데 코팅이 벗어날 수 없는 제약이라면, 코팅했을 때도 괜찮은 물성의 책을 만드는 게 디자이너 역할 아니겠느냐고.
그러나 종이는 원래 구겨진다. 종이는 원래 젖는다. 종이는 원래 찢어진다. 종이는 원래 색이 바랜다. 사람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처지는 것처럼. 걸음이 느려지고 허리가 굽는 것처럼. 생각이 깊어지고 흰 머리가 생기는 것처럼.
플라스틱은 변형이 쉽고, 썩지 않고, 방수도 된다. 정말 획기적이긴 하나, 그 편의를 과하게 추구하다보니 지구가 이 꼴이 났다. 우리는 이제 ‘사물의 낡음’이라는 당연한 자연의 섭리를 재고할 필요가 있지 않나. 북 디자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해도 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독자들에게 늘 당부하고 싶었다. “책의 낡음에 순응하소서.”
그래서 우리 집이 좋다. 코팅 필름이나 별다른 후가공 없는 책 한 권 같다. 날 것 투성이 집. 깨끗하고 말끔한 도장보다, 여기저기 빈틈이 보이는 거친 콘크리트가 먼저 반긴다. 내가 이 집에 거는 주요한 기대: 철근과 콘크리트의 튼튼한 조합이 나와 개들을, 그리고 다음 세대의 거주자도 오랜 시간 지켜줄 거라는 사실. 집의 가장 중요한 기능, 쉘터로써의 역할에 충실하다. 책이 활자를 잘 읽을 수 있으면 그만인 물건이듯.
설계할 때, 건축가들은 외부의 콘크리트 벽은 흐르는 물때 자국이 생길 것이라 했다. 그들은 그것이 우리 집에서는 나쁘지 않을 것이라 했고, 나도 그게 싫지 않다고 답했다. 내부 콘크리트 벽도 깨끗하게 갈아내거나 미장으로 채우지 말고 거친 흔적을 적당히 남기기로 했다. 벽난로 연통도 도장하지 않기로 했는데, 언젠가 그을음이 생길 거라고 했지만 우리는 그것도 그냥 둬 보기로 했다.
더하고 채우기보다 덜어내고 비우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용기가 필요하다. 여러 첫 시도가 모인 이 집에서 우리는 불안과 용기를 나누는 관계이기도 했다.
손가락에 전해지는 표지 종이의 텍스쳐. 벌키하고 누르스름한 종이의 두툼한 모음. 불 번지듯 모서리부터 점점 헤져가는 몸체. 헌책처럼 늙고 낡기에 무리 없으며 세월 흐름에 순응하는 집. 시간의 흔적이 기대되는 집. 언젠가 내 돈 들여 한 번쯤 만들어 보고 싶던 책 같은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