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국 프리세일즈, 왜 이렇게 힘들까?

by 최종일

올해 PreSales Lab에서 PoC 관련 설문을 두 번 진행했습니다. 결과를 보며 '아, 정말 많은 분들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과 리소스 부족의 가장 큰 이유를 묻자 절반이 ‘데모/PoC 준비’라고 답했습니다. PoC 기간도 3~4주가 가장 많았고(47%), 2개월 이상이라는 응답(29%)도 적지 않았습니다.


반면, 강화하고 싶은 역량으로는 대부분이 '고객 Pain Point 도출과 문제 정의 능력'을 선택했습니다. 정작 PoC 역량을 더 키우고 싶다는 답변은 많지 않았습니다.


즉, 문제 해결 역량을 키우고 싶지만 PoC 과부하 때문에 시간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인 거죠. 저도 세미나에서 비슷한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프리세일즈 업무 중 PoC가 가장 힘들다'

'PoC 때문에 판매 주기가 길어진다.'


실제로 PoC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환경 세팅, 보안 검증, 테스트, 스크립트 작성, 장애 대응, 경쟁사 대비까지.. 대부분의 단계가 프리세일즈 손을 거쳐야 하죠.


그러다 보니 ‘일의 양’은 많은데, ‘성과’는 낮은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SA는 고생하지만 고객 의사결정은 늦고, 내부 결재 과정에서는 또 '근거 자료를 더 주세요'라는 요청이 반복됩니다. 당연히 인력이 소모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 점수에 직접 영향을 주는 PoC 특성상 신입을 투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시니어는 과부하로 번아웃되고, 정작 중요한 전략적 준비나 역량 개발은 뒤로 밀립니다. 저 역시 PoC 부담으로 팀원이 떠나는 모습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하지만 변화의 흐름도 보입니다.


SaaS 시장이 커지면서, 기능 테스트 중심의 PoC 대신 '이 솔루션이 우리 조직에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가?'를 검증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기술 검증 중심의 PoC보다 PoV(Proof of Value)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PoV로 전환하려면 몇 가지 변화가 필요합니다.


첫째, 검증 범위를 줄이는 것입니다.
전체 기술 테스트를 다 하려고 하면 리소스는 금방 한계에 부딪힙니다. 핵심 기능만 검증해도 충분합니다.


둘째, 시나리오를 기술이 아닌 ‘고객이 하려는 일(JTBD)’과 ‘비즈니스 KPI’ 기준으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검증 결과가 고객의 의사결정 기준과 바로 연결됩니다.


셋째, 결과 문서를 기술 체크가 아닌 비즈니스 인사이트 중심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기술 보고서는 IT팀만 이해하지만, 인사이트 중심 문서는 사업부, 팀장, 임원 모두가 이해합니다. 그래서 결재 속도도 훨씬 빨라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서구권에서는 제안 이후 필요할 때 선택적으로 PoC/PoV를 진행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PoC 결과가 제안서 기술 점수에 반영되는 구조라 순서가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각 방식에 장단점은 있지만, SaaS 중심 시장에서는 점점 PoV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SaaS 기업들은 이미 PoV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판매 주기가 단축되고

Win Rate가 상승하며

프리세일즈 과부하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고객에게 'PoC는 하지 말자'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PoC를 PoV 관점으로 재설계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변화가 프리세일즈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꼭 필요한 방향이라고 믿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AI에게 ‘전체 다시 만들어줘’를 외친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