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밍봉봉 Nov 03. 2023

그 아까운 회사를 그만두고 공방을 합니다

일곱 번째 이유, 새로운 꿈


< 초판에 포함되지 못했던 이야기, 다섯 >

[퇴사하고 공방 합니다]를 브런치북으로 묶으며,
30편으로 맞추기 위해 빠진 내용들이 있어요.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면 서운 할 이야기들
어쩌면 당신에게 꼭 필요할지 모를 내용들

하나씩 풀어 내 볼게요.



지나간 버스를 놓치듯, 허무하게 보냈던 오래된 꿈 이후 제게 새로운 꿈이 찾아왔습니다.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둬?"


제 퇴사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안타까워했지요. 아깝다고. 아깝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뭘 하고 살려고 그러냐며. 세상이 얼마나 험난한데 그런 철없는 결정을 내렸냐고 했어요. 지금이라도 연락해서 물러 달라고 하면 안 되냐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도 아까웠어요. 참을 수 없이 아까웠지요. 제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일을 찾았는데, 그 시기를 미루는 것이 아까웠어요.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데, 그 행복을 놓치는 것이 아까웠어요. 고작, 회사의 책상 한자리를 지키는 대가로 말이에요.


문득 돌아보니, 저는 지속적으로 ‘멀쩡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살아왔더라고요. 남들이 보기에는 의아하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제게는 확고했던 선택을 내려왔죠.


열세 살에 ‘멀쩡하게’ 잘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캐나다로 유학을 갔어요.

열여덟 살에는 ‘멀쩡하게’ 잘 살던 캐나다를 떠나 미국의 대학교를 선택했고요.

스물세 살에는 ‘멀쩡하게’ 잘 살던 해외 생활을 접고 한국 회사에 입사했지요.


그랬던 서른세 살의 제가 이번에는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 후 공방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어요. 그럭저럭 잘 살 수 있는 상황에서 또 한 번의 도전이라니.






어쩌겠어요. 회사를 다니며 현실에 안주하고 살려던 제게 꿈이 생겨버린 것을요.


꿈을 놓고 선택했던 대학교, 또 그렇게 입사 한 회사였거든요. 그런데 어느덧 새로운 꿈이 마음에 움을 틀어 버린 거예요. 이제는 회사를 버리고 꿈을 선택해야 하는 때가 온 거지요. 이번에도 그냥 보내 버린다면, 꿈이란 녀석, 얄미워서라도 다시는 제게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어요.


미루고 싶지 않았어요. 돈도, 시간도, 능력도 모두 부족했지만 그까짓  상관없었어요. 바로 시작했지요. 부엌  구석에서 사부작사부작  개의 도구만 가지고 말이에요.


처음에는 한, 두 종류의 간단한 클래스만 진행했기에 도구들도 단출했어요. 점점 배우고 싶은 디저트가 늘어나고, 새로운 디저트들을 배우고 싶어 하는 수강생들도 늘어났죠. 그에 맞추어 도구와 재료들을 추가로 구입하다 보니 부엌이 터져나갈 것 같았답니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던 제 눈에 커다란 거실이 들어왔습니다. 티브이도 없는 거실에는 세 식구가 다 앉기엔 너무 덩치가 큰 검은색 소파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거든요. 자리만 차지하는 소파를 치우고, 부엌에 있던 테이블을 거실로 옮기고, 테이블이 비워진 자리에는 수납장을 넣어서 짐을 정리했어요.


그때부터 오늘까지, 햇살이 잘 들어오는 저희 집 거실에서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공방 하는 것을 후회 한 적 없냐고요?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이제야 말하지만 퇴사 후 3-4년 후 까지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꿈도 몇 번 꾸었던 걸요! ‘아 회사에 다니고 있구나!’ 꿈속에서 살짝 안도하기도 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즐거움으로 채워졌어요.


어린 시절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마음껏 책을 읽으며 살고 싶다던 꿈은 다른 형태로 이루어졌답니다. 이제는 마음껏 디저트를 연구하고, 만들고, 가르치며 그 꿈을 다듬어 갑니다.






반대로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어차피 관련 없는 일을 할 건데, 회사를 10년이나 다닌 게 후회되지는 않아요?”


기왕 시작할 거, 10년 더 빨리하지 못하게 아쉽지 않으냐는 물음이죠. 물론 더 빨리 시작했다면 이 분야에서 더 많은 것을 이룰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회사에서 보낸 10년은 버린 시간이 아니에요. ‘훈련의 시간’이었죠. 회사에서 맨몸으로 부딪히며 배우고, 넘어지고, 아프고, 쓰라리게 경험한 것들이 지금은 큰 자산이 되었거든요.


모든 좌절과 환호들이 모이고 모여서 오늘의 저를 만들었어요.


음, 그리고 사실, 잘못 선택했으면 뭐 어때요? 회사를 괜히 그만둔 걸 수도 있어요. 회사를 다닐 필요 없이 바로 창업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옳은 답이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후회는 시간을 되돌려주지도, 바꾸어 주지도 않아요.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는 거라면, 저는 그때의 저를 믿어 볼래요. 그때 제가 선택했던 길이 저에게 최고의 길이었다고, 참 잘 결정한 거라고 등 두드려 줄래요.






얼마 전 [만화의 집]에 갔었어요. 한쪽 벽면에서는 한때 즐겨보던 국내 굵직한 중견 만화가들의 인터뷰 영상이 틀어지고 있었지요. 그분들이 전하는 세부적인 메시지는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었어요.


애써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


그 중견 만화가들이 왕성하게 활동을 하던 70, 80년대에는 인터넷이 그렇게 발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중의 의견이나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저 자신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그렸을 뿐이었대요.


그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시대상에 맞았고, 트렌드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그렇게 길을 터 내며 살고 싶습니다. 제 안의 목소리를 따라서요. 남들이 보기에는 아리송할지 몰라도, 저만의 행복을 찾아 탐험해 보려 합니다.






오늘도 편안한 내 집의 부엌과 거실을 이동해 가며 물을 끓이고, 반죽을 만들고, 손끝으로 예쁜 디저트를 만듭니다. 온전한 나만의 일을 하는 지금, 저는 또각구두를 신고 전 세계를 누비며 출장을 다니 던 때 보다 더 큰 세상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은 발에 딱 맞는 신발처럼 편해요. 제 발에 가장 잘 맞는 레페토처럼 말이에요. 왜 그 고무신 같이 생긴 신발 있잖아요. 남들은 “너는 어째서 더 멋진 루부탱을 신지 않아?” “마놀로 블라닉을 신어야 진정한 패셔니스타지!” 라고 할지 모르지만 제 발에는 이 넓적한 레페토가 최고거든요.


그 아까운 회사를 그만두고 공방을 하고 있습니다. 더 아까운 저의 꿈을 위해서요. 하루 종일 햇살이 들어오는 저희 집 거실에서, 매일 새로운 꿈을 손끝으로 빚어냅니다.








안녕하세요! 블루밍봉봉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퇴사하고 공방합니다] 초판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막 작가로서 한 발을 내디뎌 보았습니다. 응원 부탁드려요!


https://brunch.co.kr/brunchbook/bloomingbonbon




작가의 이전글 세 번의 죽음과 선물 같은 한 번의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