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이랑 코인이 저를 잡아먹고 있는데요
하루 종일 작은 아이폰 화면 속 오르락내리락거리는 숫자들을 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현타'라는 것이 온다. 내가 이런 데에나 쓸려고 10년 전에 비싼 돈도 주고, 아파서 눈물도 줄줄 흘리면서 라식 수술을 했나. 하면서도 눈알 두 개는 도록도록 차트를 따라 움직인다.
한 달은 일해야 벌 수 있을 것 같은 돈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겼다가 써보지도 못하고 없어졌다가. 놀이공원을 왜 가나. 강원랜드를 왜 가나. 내 손안에 롤러코스터가 있고 슬롯머신이 있는데. 막상 수익을 실현한 것도 아니니 어찌 보면 사이버 머니에 불과한데도 빨간 글자만 보면 꼭 돈을 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리고 그 착각이 주는 짜릿함과 희열은 감히 쾌락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사람들이 그리고 감정들이 거쳐갔는가. 그 수많은 시간들이 갈고 또 닦아가며 만들어준 소중한 지금의 내가 고작 이런 사이버 숫자 놀이가 주는 쾌감에나 중독되어 젊은 날의 하루를 다 쓴다고? 고개를 마악 흔들어가며 정신줄을 붙잡으려 하다가도 갑자기,
시간당 몇 천 원짜리 일을 하며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이 작은 아이폰 화면 속 움직이는 숫자들을 못 따라간단 생각이 번뜩이면 그리 소중한 내 노동의 가치가 하릴없이 작아지는 것이다. 쉽게 거둬지지 않는 이 찝찝함.
그렇게 나는 복리의 마법을 꿈꾸며 미국 주식도 하고 코인도 하면서, 속으론 '인간이 범죄 안 저지르고 성실히 노동하고 살면 노후에 폐지 줍는 신세 정도는 면하게 해 주는 게 국가의 역할 아니냐!' 한다.
비겁하게 내 눈은 호가창을 탐색하고 있으면서
손가락은 매수 버튼 위에 올라가 있으면서
정작 노동은 하지 않고 손쉽게 돈을 벌려고 하면서
속으로만 그렇게 소리친다.
그래도 또 난 몇 천 원짜리 일을 하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는다. 아이폰 밖의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숫자를 위해, 나는 머리를 쓰고 시간을 쓰고. 그리고 밤에 잠들기 전에 오늘도 사람 구실은 했다고 스스로 위안하자.
아무것도 아닌 숫자와 맞바꿔질 나의 노동은 작은 뿌듯함. 그 뿌듯함은 아무것도 아닌 숫자를 넘고도 남고 또 남겠지. 그러면 남은 뿌듯함은 더 나아질 내일의 나를 위해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