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꽃잎마저 아까워하게 될 줄이야. 빗줄기를 따라 낙화하는 ‘나의’ 배롱나무 꽃잎 한 장마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올해는 꽃피우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심은 해에는 개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설명에 별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무더운 8월이 오자 꽃봉오리가 하나둘 얼굴을 내밀더니 어느 날 아침 팡- 팡- 팝콘 터지든 백일홍 꽃을 활짝 피웠다. 배롱나무 개화 시기는 무더운 여름으로 100일 동안 꽃잎이 활짝 피어있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 불린다. 선인장마저 죽이고 마는 악마적 재능을 지닌 탓에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며 관리법과 물 주는 주기 등을 자세하게 학습하고 달력에 물 주는 날을 표시까지 하며 정성 들여 물을 주니 하나둘 초록 잎이 돋았고, 땡볕에 주변 잡초를 제거하다 보니 벌써 잎이 무성한 여름이었다.
화분갈이를 하는 것처럼 땅을 파고 나무뿌리를 파묻으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식재는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아직 실내 공사도 덜 끝난 시점에 – 심지어 유리와 문도 달리지 않아 사실상 집과 마당의 경계가 없었다 – 마당의 1/4을 차지하는 나무를 심어도 방해가 안 될지, 아래 파묻혀 있는 배관은 어떻게 퍼져 있는지 파악조차 안 된 상태라 이리저리 정신없고, 예민함이 극에 달해 있었다. 게다가 콘크리트 미장 전에 마당에 나무를 심어야 하니, 일부분 비워달라고 요청했는데, 인테리어 업체 측은 나중에 드릴로 부숴줄 수 있으니 일단 미장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식재 당일까지 마당 어디서도 약속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왜 이거 안 해주셨어요. 콘크리트에 나무를 어떻게 심어요.”
“지금 와서 해주실 수 있겠어요?”
입만 열면 책망과 부정의 언어뿐인 요즘, 나무가 트럭에 실려 문 앞까지 와있는 마당에 인테리어 업체를 닦달해 봤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급한 대로 근처에서 드릴을 빌려와서 배관을 피해 자연적인 땅이 드러날 때까지 파고 들어갔다.
‘꼭 마당에 배롱나무를 심어야지’
배롱나무는 이 집을 매매하기 전부터 마음속으로 정해뒀던 1순위다. 책장 디자인, 페인트 색깔, 조명을 결정하기 전부터 먼저 제자리가 있던 녀석이다. 서울에 살 땐 샛노란 은행나무나 손바닥보다 큰 플라타너스 이외의 가로수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가로수란 무릇 크고, 굵고, 푸른 기운을 내뿜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경상도로 귀촌하고 난 첫해 여름 아기자기한 분홍빛 꽃이 만개하는 배롱나무를 처음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고 한옥에 산다면 반드시 배롱나무를 심겠다고 결심했다.
여기는 경상북도 안동시의 좁은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좁다) 동네에 자리 잡은 한옥이다. 바로 6개월 전까지 사람이 살았다는 이 집은 나보다도 나이가 많다. 나라에서 인정한 진짜 기와를 – 기와라고 다 같은 기와가 아니다. 나라에서 인정한 진짜 한옥 기와가 따로 있으며 그래야지 ‘한옥 스테이’ 등으로 인정받는다 - 얹고 두꺼운 대들보가 받치고 있는 전통 한옥은 아니지만 70년대에 지은 집이다.
당위성
나와 짝꿍은 어쩌다 전재산을 털어 안동에 한옥을 매매하게 되었을까? 모든 결정에는 당위성이 따라야 한다. 특히 서른을 앞둔 성인 둘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결정이라면.
우리의 당위성은 한옥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 다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에서 만나 마음이 맞았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짝꿍이 되기로 결심했다. 사랑 이외의 것들을 함께 하기로 했을 때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 결정을 내릴 순 없었다. 우린 철저하게 득실을 따졌다.
“같이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을까?”
“자긴 디자이너잖아.”
“자기는 기획자고.”
“전에 어디서 일했는데? 무슨 프로젝트 맡았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을 앞두고 우리는 무수히 많은 ‘왜’에 답을 해나가야 했다.
1. 왜 안동이 우리의 본부가 되어야 하지?
“안동에는 KTX도 있고, 대형마트도 있잖아. 근데 관광 도시이기도 하고.”
“그래 스타벅스도 4개나 있어.” (한심)
2. 왜 우리가 함께 해야 하지? 따로,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면 안 되는 걸까?
“자, 인력 구성을 생각해 보자. 어차피 기획하고 디자인해야 하는데 직원은 월급 줘야 하잖아.”
(그리고 우린 꽤 잘하기도 하고)
이후로도 우린 스스로 던진 수많은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아냈다.
3. 왜 이 제품을 만들고 싶은 걸까? 매력적인가? 실용적이가?
4. 왜 한옥이어야 하는 거지?
....
전통, 공간, 브랜딩, 한옥, 관광객, 제품, 일... 의식의 흐름을 타고 우리는 아직 실체가 없는 아이템과 꿈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할수록 나오는 답은 하나였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래 여기 다 쏟아보자!”
서로 같은 생각을 품고 합의를 이루면 다음부턴 마법처럼 일이 진행될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먼저 오래된 한옥을 찾는 일부터 막히고 말았다. 지역에선 모든 게 발바닥에 달렸다.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집을 구할 수 있다. 안동 지도를 펼쳐놓고 동네 도장 깨기를 다녔다. 동네 부동산을 들어가도 누구 하나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정보를 주지 않았고 교차로를 뒤져 한옥 빈집을 알아내서 부동산에 문의 전화를 걸어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울 말투의 젊은 여성에게 나이 많은 남성 부동산 중개인은 기싸움도 필요 없다는 듯 제대로 된 답변도 주지 않았다.
“00동에 나와있는 한옥 좀 보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 (묵묵부답)”
“.. 네?”
“매물 번호는요?”
“아, 잠시만요... 0000번이요.”
“그거 나갔어요.”
(팔렸으면 내리셔야죠.)
“그건 좀 골목에 들어가 있어요.”
(저희가 상관이 없어요)
“아, 그거 집주인이 1500을 더 올려 받으려 해서 팔 수 없어요.”
(그래도 건물을 볼 수 있나요?)
“..... 뭐 하시려고요?”
(비밀이에요)
어떠한 개인적인 사상을 대입하지 않고 응대해도 그들은 무례하고 불친절했다. 네 번째 뜨뜻미지근한 추임새를 들었을 때서야 나보다 목소리가 두껍고 사투리를 구사하는 짝꿍이 문의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한옥을 알아보고 있는데요."
"뭐 하실 건데요? 작은데 괜찮은 게 몇 개 있긴 해요."
"꼭 시내랑 가깝지 않아도 되거든요."
"아, 그럼 선택지가 많죠."
사정이 생겨 동행하지 못한다던 중개인은 ‘괜찮은’ 한옥집을 하나 들고 있다며 주소를 보내줬다. 시내에서 차로 20분 넘게 달려간 그 집은 진입로부터 보통이 아니었다.
'차라리 여기가 나았을까'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후회되는 일이 많다. 위치를 결정하는 일은 어렵다.
"맞은편에서 차가 온다면 차라리 논으로 뛰어드는 게 낫겠어."
"완전 외길이네 여기."
뱀이 기어가는 것 마냥 구불구불한 S자 형태의 도로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그 길의 끝에...
"저거라고? ‘괜찮은’ 한옥집이? 내가 볼 땐 그냥 무너지려는 판잣집인데?"
돈만 많았어도 새로 허물고 주택을 지은 후에 아름다운 영국식 정원을 꾸몄을 것이다. 아, 물론 종종 옆으로 ‘쌩 - ’ 소리를 내며 KTX가 횅 지나가는 부분은 감내해야겠지만. 그래서 매매가 5,500이었나 보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통창 너머로 활짝 핀 배롱나무 꽃을 보며 옛날이야기를 풀 듯 술술 적어 내려가고 있지만, 인간의 가장 큰 재능인 ‘망각’ 덕분에 아름답게 헤어진 옛 연인과의 추억을 소개하듯 후련하게 제삼자처럼 일화를 소개할 수 있다. 당연히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 따윈 없다.
“근데 다시 구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서운 소리 하지 마. 내 생에 한옥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모든 방향에서 질문을 던지고 당위성을 획득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을 빠뜨리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질문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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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근데 왜 하필 이 동네, 이 골목길 안에 있는 이 집이어야 하는 거지?’
(p.s 당시 우리는 상권분석을 하지 않았는데 공간만 좋으면 당연히 관광객이 찾아 올거라고 생각했으며 사실 우리가 진행하려는 프로젝트는 주변 상권과 딱히 관련이 없다고 여겼다. 물론 엄청난 실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