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대로 망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냥 스쳐 지나갈지도 모르겠다. 큰 도로에서 매운탕집을 옆에 두고 오른쪽으로 꺾어 작은 길로 들어서도 눈에 띄는 거라곤 온통 똑같이 생긴 한옥 가정집이라 이렇다 할 특별함은 없어 보인다. 게다가 근처에 지나가는 생명체라곤 길고양이뿐인데 혹시 있더라도 연세 지긋한 할머니일 확률이 아주 높으며 우리 공간을 모를 가능성은 100%라 당신이 길을 헤매더라도 물어보거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보물찾기 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좌우를 살피며 걷다 보면 알아차릴 수 있겠다.
"헤밍웨이 책상이 있다는 게 여기구나!"
처음엔 아주 쨍한 민트 색깔의 빈티지 문을 간판 삼아 내놨는데 빈티지라 비가 내릴 대마다 칠한 지 10년도 넘은 페인트 조각이 빗물에 씻겨 나가는 탓에 새롭게 진짜 '집' 모양 간판을 만들었다. '여기에 당신이 찾는 그 집이 있어요'라고 광고하기엔 제격인 모양새일 것이다. 간판을 지나 푸릇푸릇한 화단이 맞아주는 진입로를 통해 대문으로 들어서면 숨겨진 비밀의 방 문을 연 해리처럼 비밀의 한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옥 마당엔 배롱나무도 있고 로즈메리도 있고 잠시 앉아서 멍 때릴 의자도 있다. 내부야 직접 인테리어 한 사람으로서 말할 것도 없으니 완성된 한옥 앞에서 우리는 한글을 뗀 6세 자녀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부모처럼 자부심으로 가득 찼다.
공들여 만든 한옥을 '이제 보러 오세요'라고 공표하며 어떤 기대를 품었을까?
'사람이 너무 몰리면 어쩌지?'
'커피도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돈 진짜 많이 벌 것 같아.'
초대한 손님들이 몰렸던 첫 일주일 동안 공간을 보고 감탄하는 손님들 덕분에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이렇게만 흘러간다면 우리가 바라던 모습 - 기록하는 사람들, 고요하지만 활기 넘치는 한옥, 천천히 흘러가는 소중한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 - 이 금세 실현될 것 같았다.
아무도 오지 않고 우리 둘만 오도카니 마당에 앉아 흘러간 주였다. 진입로 화단을 슬쩍 구경하다가 '안으로 들어와서 보셔도 돼요!'라고 말이라도 걸라치면 아니라고 중얼거리며 도망치듯 급히 나서던 동네 할매들도 보이지 않았다. 날씨 탓을 하기에 하늘은 청명했고 꽃나무는 푸르렀다.
"아무도 안 왔어."
"왜 안 오지?"
"잘 안 보이긴 하지 여기가."
"... 집에 일찍 갈까?"
"우리 이대로 망할 수도 있겠다."
위기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제 겨우 한 달 째였다. 근데, 한 달이 이렇게 느리게 갔던가.
오픈 빨도 없는 자영업자라니. 운도 지지리 없지만 애초에 우리가 선택한 길이었다. 마니아층이 강한 장르를 유, 무형으로 만들어 팔겠다는 다짐 하나로 시작했으니 잘 될 리가 없었다.
당연히 이는 크나큰 착각이자 오류이다. 아무리 매니악한 장르라도 손님 발걸음이 끊기지 않는 곳이 있고, 잘 팔리는 물건은 잘 팔린다. 단지 홍보와 마케팅 분야에 무지하고 무성의했을 뿐이다.
"제가 연필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여기 생긴 줄 알았으면 맨날 왔어요."
두 블록 건너에 사는 손님은 아날로그 감성을 지향하는 우리의 '마니아' 고객층이었는데 이곳이 생긴 줄 몰랐다며 우리의 존재를 아주 기뻐했다. 실은 그날로 비스므리한 이야기를 스무 번 넘게 들은 참이었다. 안동 사는 사람도 '여기에 이런 곳이?' 하는 가게가 바로 우리 한옥이었다. 얼마나 홍보를 안 했으면 저런 이야기를 듣냐고?
할 말이 없다. 홍보는 언제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무작정 돈을 쓴다고 관심사가 같은 이용자에게 도달하고, 최적의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막막했다고 굳이 변명을 해본다. 현수막이라도 만들어서 사거리에 내다 걸고, 포스터를 제작해서 담벼락에 붙였어야 하는 걸까? 아직도 어렵기만 한 분야이다. 급한 대로 소싯적 주워들은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을 따라 열심히 운영하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돈을 들여 유료광고도 집행했다. 그다지 큰 효과는 못 본 것 같다. 이후로도 손님이 오지 않고 흘러간 날이 있었으니.
관광객이 왕창 몰릴 거라 기대했던 토요일 오후, 조용하기로 손꼽히는 안동 어느 마을 골목길 안 한옥 마당에 암울한 고요가 내려앉았고 우린 덫에 갇혀버렸다. 그렇게 자랑하고 싶던 우리 애한테서 벗어나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었다. (절대 이러면 안 되지만) 1시간 일찍 문을 닫고 맛있는 일탈을 찾아 떠났다. 대문을 걸어 잠그고 고속도로에 올라서는 순간까지 혹여나 왜 영업시간보다 일찍 문을 닫았냐는 항의 전화가 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지만 그 어떤 전화도 오지 않았다. 문의 전화가 왔다면 오히려 뛸 듯이 기뻤을 텐데... 그대로 차를 돌려 가게로 향해 우리와 우리 애를 구제해 준 손님에게 통 큰 할인율을 제시했을지도 모른다.
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향신료 냄새가 진동하는 도심 속 쌀국숫집 문을 전투적으로 밀고 들어가자 안도감이 들었다. 익숙한 듯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쌀국수 2개 곱빼기에 '고수 많이 주세요'라고 주문해 놓고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음식을 기다렸다.
"고수 많이 드렸어요."
나오기가 무섭게 서둘러 국물부터 한 숟가락 후루룩 맛봤다.
"이 맛이지."
추가한 고수를 사이좋게 반반 나눴다. 뜨끈하고 끈적거리는 고기 국물, 쫄깃한 생면, 자극적인 향신료.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내 안으로 보드라운 생면과 뜨끈한 국물이 끝없이 들어갈 것만 같은 날이었다. 참았지만 더 먹을 수 있었다. 배부르고 등따시니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진 것일까 아니면 정신적 허기짐이 충족된 것일까? 인간이 느끼는 허기 중 영양소 부족에서 오는 진짜 배고픔은 50%가 넘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내게 없는 결핍, 바라고 바라는 욕망과 갈망으로 인한 착각 그리고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스트레스에서 허기가 발생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진짜' 배고팠다. 그리고 많이 허기졌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합쳐진대도 0%였다.
한 가지 목표를 두고 쉼 없이 달려온 1년여의 시간은 너무 급박하게 흐른 탓에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어떠했는지 잊어버린 모양이다.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국수를 천천히 식혀 먹으면서 불현듯 멀쩡한 시간을 두고 지지부진하게 흘러간다고 탓하던 내가 바보 같아 이제 조급해하지 말고 우리의 속도를 찾아보자고 다시 손을 맞잡았다.
밥을 먹고 근처 산길을 천천히 달리며 흐린 눈을 크게 뜨고 맑고 차가운 공기를 폐가 터질 듯 들이켰다가 몸 안의 모든 것을 비워낼 듯이 천천히 내쉬었다. 정신이 번쩍 뜨이고 오장육부가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산골짜기에 있는 집에서 출퇴근하는 중이라 분명 어제도 산길을 왔다 갔다 했는데 오늘 온 이 산은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도시는 다 똑같아.
요즘엔 서울에 가도 재미없더라.
맞아 그냥 다 카페고 비싸고 맛도 그저 그래.
근데 자연을 달라. 이 산과 저 산이 다르고 산속에 자리 잡은 이 절과 저 절은 달라.
우리 집 가는 길은 정겨운 시골길이고 여기는 우거진 나무 터널이 신비로운 세계처럼 보여.
"근데 우리 서울에서 문 열었으면 대박 났어 벌써. 건물 세웠다."
물론 이는 뇌피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시골로 내려와 이곳에서, 카페도 동료 청년 자영업자도 하나 없는 동네 골목길에 자리 잡은 일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때때로 시간이 지지부진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하고 이러다 망하겠다 위기감에 왜 손님은 오지 않을까 심술도 나지만 다시는 일찍 문을 닫고 쌀국수나 먹으러 가는 짓은 하지 않는다. 차라리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마당을 가꾸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진득하게 앉아있다 보면 문 닫기 직전에도 급하게 골목길을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문 안 닫았죠?"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급히 찾았다는 고마운 손님도 있다. 똑똑한 마케팅 전략과 비싼 홍보 수단이 장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겠지만 가장 중요한 홍보는 꾸준함이다. 꾸준히 그 자리에서 열심히 헤엄치다 보면 어떻게든 알려지는 법이다.
어제는 단골이 되어버린 동네 화원에서 장미덩굴을 사 왔다. 지난주에도 갔다 온 참인데, 이러다가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은 거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 내년 여름에 장미 아치가 생길 것 같은데 그럼 장미를 앞세워 사진이나 왕창 찍어 홍보해야겠다.
"여기 장미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