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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지나간 자리

<재즈를 찾아서>

by 밤 비행이 좋아


누구에게나 작고 일상적인 혼란이 존재한다. 산사태처럼 갑작스러운 붕괴가 아니더라도, 틈새에 스며든 균열은 어느 순간 무너져 내릴 수 있다. 2025년은 시작부터 불안정했다. 새해가 밝았건만 세상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내 수입도 하향선을 그렸다.


어느 삶에나 작은 혼란은 있기 마련이다. 어릴 적 나를 교묘하게 괴롭히던 한 친구 때문에 불안에 시달렸지만, 누구에게도 티 낸 적 없었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우등생처럼 행동했지만, 꼬투리 잡힐까, 의심을 살까, 눈치를 봐야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 삶은 작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남들이 알게 되면 예민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유별난 사람으로 비칠까 두려운 나만의 혼란들이 내 안을 가득 채워 미처 다른 것들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혼란을 극복한다면 더 성숙하고 건강한 인간으로 거듭날 테지만, 혼란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국 잠식당할 것이다. 당시 나는 잠식당하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직장인의 삶이 얼마나 바쁘고 정신없는지 잘 안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고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다가 퇴근하면 저녁을 먹고, 밀린 집안일을 끝내고 나면, 다음날 출근하기 위해 침대에 누워야 한다. 일상적인 혼란을 돌볼 시간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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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은 일상의 혼란처럼 타올랐다. 최초로 산불이 발견된 건 3월 22일 오전이었다. 같은 군 내에서도 비교적 먼 곳에서 산불이 났다길래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서 불길이 잡히길 바라고는 평소처럼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장을 봤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거센 바람과 건조한 기후에 불길이 잡히지 않아 큰일이라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다.

“어쩌나, 빨리 잡혀야 할 텐데.”
“소방관들도 고생이다, 진짜.”


산소에 성묘 왔다가 불을 냈다, 굿을 했다, 불을 질렀다더라. 소문만 무성해졌고, 불길을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불길은 강풍을 따라 북쪽으로 빠르게 번졌고, 이웃 면을 차례대로 넘어 군 전체를 집어삼킬 듯 타올랐다. 벌써 삼일째였다. 누군가의 라이터에서 시작된 불이 축구장 약 6만 4,500개를 집어삼킬 정도로 번져 자연과 타인의 삶을 망쳐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자연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는 상황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내가 사는 곳은 신라시대 때부터 천 년 이상 보존된 유명 절과 숲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안전할 터였다.


불은 숲도 절도 가리지 않았다. 분 단위로 울리는 긴급 대피 안내 문자와 도로 통제 문자로 핸드폰은 불통 지경이었고, 어떤 정보를 믿어야 할지 의심스러웠다. 전날 밤부터 고속도로가 통제되었고, 화마는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동네 주민들의 아우성 속에서 피신을 떠나야 하나 갈팡질팡 망설이고 있던 순간, 문득 거실 창문에 걸린 커튼이 검붉게 물들었다. 다음 순간 무슨 일이 닥칠지 본능이 먼저 알아챘다. 탈출, 파괴, 아비규환.


거칠게 커튼을 열어젖히고 얼려다 본 하늘은 혼란 그 자체였다. 까만 재는 눈처럼 공기 중에 날렸고, 산등성이 너머에서 빠르게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당최 알 수 없어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이러다가 진짜로 무슨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본능적인 직감으로 당장 쥐고 있던 핸드폰과 가장 중요한 노트북 가방을 챙겨 들고 나왔다. 통제된 고속도로 IC를 뒤로 하고 국도로 서행하면서 화선을 보았다.


불의 선은 누군가 일부러 길을 놔준 것처럼 띠를 이루며 작지만 끈질기게 우리를 앞질러 가고 있었다.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으면서 등에 진땀이 났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공포라는 감정. 이름 모를 들풀이 수분을 빼앗겨 바싹 말라버렸고 강한 돌풍에 형체를 잃고 으스러져 공중을 날아다녔다. 봄을 기다리며 새싹을 피웠을 생명들이 안타까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문득 홍콩야자가 떠올랐다. 검붉어진 실내 공기에 커튼을 열어젖히던 순간, 창가 선반에 홍콩야자가 놓여있었다. 함께 바깥 상황을 목격했을 터다. 마음이 아팠다. 불에 타 형체조차 남지 않았겠지. 견딜 수 없는 실내 공기에 수분을 모조리 빼앗기며 처참하게 비명을 질렀을 수도 있다. 이사하며 서울에서 열심히 날아온 책들, 열심히 써 모은 내 글, 2층 발코니의 여인초. 아, 발코니 구석에 굴처럼 생긴 제비집이 있었지. 매년 봄이면 찾아오던 녀석들이 이제 어리둥절해하며 폐허 위를 빙빙 돌 것이다. 우린 함께 터전을 잃었다. 나도 제비도 새로운 집이 필요하게 되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심연으로 빠진다.

'왜 하필 이 집으로 이사 왔을까'

'왜 퇴사했을까'

'왜 귀촌을 했을까’

....


후회조차 사치다. 이제는 돌아갈 곳이 사라져 버렸다.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체육관에 모여 이불도 없이 쪽잠을 잔다고 했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하룻밤에, 아니 몇 분 만에 평생 일군 전부를 잃은 기분은 얼마나 황망할 것인가. 이제 알 것 같다.


어린 시절, 바다에서 한참 물놀이를 하고 민박집으로 돌아오면, 보이지 않는 파도가 물먹은 솜처럼 축 처진 내 몸을 끊임없이 통과하곤 했다. 보이지 않는 밀물과 썰물의 연속.

“그만 놀고 싶어. 나 좀 이제 놔둬.”

잠결에 나를 가만히 두라고 투정을 부렸다. 파도는 끊임없이 나를 쥐고 흔들었다. 모든 게 쓸려나간 기분이란 이런 걸까? 말 그대로 모든 게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작은 불이 떼어낼 수 없게 이 마을을, 나를 옭아매 그대로 집어삼켰다. 내 삶은 작은 균열조차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불타올라 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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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후 나의 삶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산불 전후로 나뉜다. 산불은 나를 반으로 쪼개 놓았고, 그제야 자잘한 균열들이 드러났다. 애써 모른 척 숨겨 놓았던 일상의 혼란을 더 이상 모른척하지 않는다. 불은 꺼졌지만, 나는 삶아 남았고, 찬찬히 균열을 메꾸고 있다.


산불이 나고 며칠이 흐른 뒤, 익숙한 이름이 휴대폰 액정에 떴다. 전국적으로 산불 이재민을 위해 모금이 진행되고 있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직접 위로금을 보내주신 분들이 계신다. 어떻게 이 마음을 갚을지 모르겠다는 감사 인사에 혹여 나중에 같은 상황에 처한 이가 나타나면 그 사람에게 베풀어 달라는 가슴 뜨거운 말까지, 부족한 내게 과한 지인들이 넘친다. 이밖에도 나를 걱정하며 보내준 응원의 메시지와 선물들까지, 내 삶은 작은 사랑들로 다시 채워지고 있었다. 누구의 삶에나 작고 일상적인 혼란이 존재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사소하지만 소중한 사랑으로 메꿔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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