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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리스본’

<재즈를 찾아서>

by 밤 비행이 좋아


돌이켜보면 집에 불이 난 사건은 내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애벌레가 껍질을 까고 나오면 나비가 되어 비상하듯 예전 삶을 DELETE 키를 눌러 삭제해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렇다고 정체성을 버리고 신분을 세탁한 뒤 아예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언제부턴가 삶에 매몰된 채 이리저리 이끌려 다닌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내 삶의 주체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알림으로 뜨는 5년 전 사진을 보면서 노스탤직 감성에 젖어 ‘달라진 건 없네’ 체념했다. 단순히 과거에 입던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산다고 내 삶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냥 막연하게 좁은 집을 가득 채운 쓸모없는 짐들을 싹 다 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배낭 하나만 짊어진 채 이 집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면 나는 내 삶을 새롭게 계획할 수 있을 텐데. 내 삶을 내가 지배할 수 있다는 갈망이 꿈틀거렸다.

물론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불길 속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던 것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담긴 사진, 여행지에서 산 자석들, 손 편지, 오래된 스웨터 한 벌. 집을 떠날 때 배낭 안에 들어있어야 했을 내 인생 최후의 조각들이었다.

남은 것 없이 모조리 한 줌 재가 되어버렸다. 의도치 않게 바라던 상황이 조금 과하게 실현되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나는 예상했던 대로 홀가분해졌다. 경북 산불은 올 상반기에 발생한 최악의 재난이었기 때문에 연일 뉴스에 보도되었고, 동네방네 집에 불이 나서 이재민이 되었다고 소문낸 탓에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모두가 내게 괜찮냐고 물은 뒤,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다행이다. 그래도 얼굴이 너무 밝아서. 걱정했는데 정신력이 참 강해.”

당연하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는걸.


산불이 나고, 2주에 한 번씩 면사무소에 식권을 받으러 가면서도 나는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산불로 모든 걸 잃어버린 농촌지역 어르신들께서 들으면 기함할 소리지만, 나는 비로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안도했다. 과거의 모든 욕심, 짐, 추억, 흔적을 지워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고 난 뒤, 나는 자연스럽게 오래전 나를 붙들었던 ‘리스본’을 다시 떠올렸다. 끝내 완독 하지 못했던 책들, 내가 매번 도전하는 대상들.


리스본.png 영화 갈무리


이재민 컨테이너에 입주한 후, 제일 먼저 산 책은 <리스본행 야간열차>다. 한 푼이 아쉬워 가까운 중고 서점을 찾아 한 권 남아있던 책을 선점했고, 근처 카페에서 따뜻한 카페라테를 마시며 베른의 광장을 걷는 주인공을 다시 만났다. 고속도로비, 커피값, 왕복 3시간의 소요 비용을 따지자면 차라리 새 책을 한 권 인터넷에서 구매한 편이 나았을 수도 있지만, 서점 특유의 콤팩트한 공기를 느끼며 A-1, B-19, C-3... 서고를 차례대로 훑으며 종이책의 질감을 느끼는 감성은 가격에 비할 바가 아니다.


쉬쉬하며 입을 다물고 있지만 끝내 결말까지 닿지 못한 애증의 도서 한 권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올해 꼭 읽어야 하는 책’
‘저번에 못 읽었으니, 이번엔 꼭 완독해야 하는 책’
‘도서관 반납 알림 문자가 날아오면 대출을 연장하지만, 끝내 결말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책’

내게도 이런 책이 있다. 그리고 이런 책을 ‘리스본’이라고 부른다.


나에게 ‘리스본’은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장소이자, 평생 미완으로 남아있는 어떤 갈망의 다른 이름이다. 언제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대학 도서관에서 ‘리스본’이라는 단어 하나에 마음이 끌렸던 그 시절이었을 것이다. 라벤더색 표지와 묵직한 두께가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그 매혹은 늘 절반까지 읽다가 멈춘 자리에서 사라지곤 했다. 책을 적어도 열 번은 대출했지만, 매번 절반쯤 읽고 반납했다. 졸업할 때까지 끝내 완독 하지 못했다. 미완의 상태가 어쩐지 나와 닮았다.


리스본은 그렇게 잊혔다. 끝까지 읽지 못했던 이유가 뭘까? 두께를 탓하자니, 책장에 꽂혀 있던 <불안의 서>와 <해리포터 시리즈>가 나를 비웃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읽었던 부분을 기억했다가 거기부터 읽으면 되잖아.’

어림없는 소리다. 한 번 읽다가 내려놓은 책을 처음이 아닌 중간부터 읽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 책은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롭고, 나와는 전혀 다른 주인공 ‘문두스’에게 자꾸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특히 안경과 시력에 집착하는 대목은 매번 알 길 없이 짜증이 치밀어 올라 책을 덮고 만다.


처음 이 책을 빌렸을 때, 아마도 ‘라틴어 교사가 돌발적으로 떠난 리스본행 여행기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집어 들었던 것 같다. 단순한 호기심은 진지한 내면 탐색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리스본행 야간열차> 빌리고 또 빌렸던 이유는 여행 때문이었다. 다만, 물리적 여행이 아닌, 내면으로 향하는 영혼의 여행이 그리워서였다.


이대로 계속 살아도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겠구나. 그렇다면 그 삶에서 벗어나 새롭게 자신의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겠느냐. 한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되돌리고자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가는 선택은 보통의 용기로 불가능한 일이다. 자발적으로 시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늘 ‘작은 우연’이 필요하다. 삶의 변화는 언제나 이 우연에서 찾아오는 법이다. 그레고리우스가 우연히 만난 단어 하나에 이끌려 삶을 바꾸듯, 나도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어떤 끌림 때문에 재즈를 좇고, 시골로 향했다. 아무 연고 없는 시골 마을로 홀린 듯 떠나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지만,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 동물이듯 예전 삶으로 회귀하는 행동을 일삼고 다시 나 자신을 잃어버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의 ‘리스본’들을 펼쳐 내면으로 여행을 떠난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 오래전에 예약해 둔 리스본행 비행기표를 날린 일이 있다. 어느 나라도 타국의 여행자를 반기지 않았고, 그렇다고 환불받을 수도 없는 티켓이었다. 속이 쓰렸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리스본행 왕복 비행기표는 그대로 증발해 버렸고, 거의 매일 밤 꿈속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꿈을 꿨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리스본에 닿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을 향해 다시 걸어간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가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다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는 새로운 리스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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