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n Nov 06. 2020

엄마도, 엄마가 소중해


 12월생인걸 감안하고도 아들의 발달은 또래에 비해 많이 느렸다. 특히 수다쟁이 엄마를 둔 것이 의아할 정도로 말이 느린 편이었다. 때문에 남편과 시댁에서는 되도록 어린이집을 나중에 보내고 싶어 했지만, 웬만하면 시어머님이 아닌 내 능력 안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싶었다. 심지어 하루 4시간 아르바이트가 아니던가. 친정엄마 이상으로 살뜰히 챙겨주시는 시어머님이었지만, 넘을 수 없는 고부관계의 벽과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아이를 돌봐주시는 시어머님에게 잘 보이고 잘하고 싶을수록, 시어머님이 손주를 아들처럼 사랑해주실수록 번번이 마찰이 생겼다. 그 시대에 온 정성을 다해 아들 둘을 키워내며 맏며느리 살림을 꾸렸던 그녀와, 유아교육을 전공한 욕심 많은 신식 아들 엄마의 양육방식을 절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며느리의 고집이 승리하며, 아이는 어린이집에 입소하게 되었다. 등원 후 즐기는 짜릿한 티타임이나 우아한 브런치를 기대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등원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아이가 돌아오는 하원 전까지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기 바빴다. 노동의 강도나 시간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로서, 나로서 하루를 충실히 살고 있다는 만족감이 좋았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어라 했던가. 전공을 살려 아동미술 프로그램 강의를 맡게 되는 기회까지 생겼다. 낮에는 아르바이트, 오후에는 강의, 저녁엔 집안일, 아이를 씻기고 잠자리에 누우면 몰려드는 피로를 견디기 힘들었지만 나의 하루는 참으로 풍족하게 굴러갔다. 아이가 조금씩 말을 배우기 시작한 게 이쯤이었다.


"호야, 엄마 졸려.", "졸려?"

"응, 근데 좋아.", "아!"

"이제 잘까?", "자장, 자장..."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날 토닥여주는 아들의 자장가에 울컥하고 눈물이 차올랐던 까닭은 아직도 알 수 없다. 너무 피곤해서 눈을 감으면 당장이라도 잠이 들 것만 같은 그냥 그런 날이었는데, 그런 날까지도 잘했다고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너에게 난 참 소중한 사람이구나. 엄마도 늘 열심히 사는 엄마가 소중해.'


매거진의 이전글 스물여덟 그리고 퇴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