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타듯이 의례적으로 감기에 걸리던 아들의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은 밤이었다. 아들은 두 시간 간격으로 밤잠을 설치며 깼고 어스름한 새벽 아이가 먹을 보리차를 끓이던 난, 그날 있을 야간대학 면접을 걱정했다.한 번도 모범생이었던 적은 없었지만 언제나 예쁨 받는 학생이었고, 공부를 좋아한 적은 없어도 배움을 통해 성장하며 인정받는 쾌감을 즐겼다. 육아를 이유로 유치원을 관두려 할 때, 원장직을 겸하던 대학교수님은 내게 꾸준히 공부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선생님, 끈을 놓지 마. 그럼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붙잡고 있던 끈은 미련이 되었고, 퇴사 1년 만에 좀 더 공부해보자 마음먹었던 때였다.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절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마침 그때아이가 아플 줄이야.
"면접 말이야. 안 갈까 봐. 호야도 아프고... 그냥... 그럴 때가 아닌데 욕심부리는 것 같아."
"그럴 때가 따로 있어? 후회해 자기야. 어린이집에 보내기 걱정되면 엄마한테 맡기고 다녀와. 알았지?"
아침이 되자 아이의 상태가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미 포기했다고 다짐한 건 마음이 아니라 머리였다. 부랴부랴 원에서 먹을 약과 따뜻한 보리차를 보온병에 챙기고, 간 밤에 있던 아이의 증상을 메모지에 적어 어린이집 가방에 넣었다.혹여 가는 길에 바람이 들어 감기 기운이 심해지지는 않을까.모자며, 목수건이며 조금의 틈도 없이 무장을 하고집을 나섰다.
"되도록이면 쉬려고 했는데 급한 볼일이 생겨서요. 4시간 정도 아니, 3시간 반 정도면 될 것 같아요. 최대한 빨리 하원 하겠습니다."
아픈 아이를 기관에 맡기며 거듭 죄송하다고 인사하던 재직 당시의 학부모들이 떠올랐다. 유치원 교사로서 숱하게 겪어온 상황이었지만정반대 입장에 놓인 오늘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았다. 스스로를 무책임한 엄마라고 자책하면서도 컨디션이 괜찮아 보이니 걱정 말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믿으려 애썼다. 그렇게 마음이 조급했던 날은 또 없었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하원을 서두르기 위해 걸을 수 있는 모든 길은 다 뛰어다녔다. 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의 감기가 똑 떨어지기만을 바랬다. 무심하게도 아이의 감기는 갈수록심해졌고, 조금 더 공부해보고자 했던 결심은 단꿈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많이 웃고, 밝은 겉모습을 가진 사람의 이면에 오히려 숨겨진 우울증이 많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아이의 감기가 심해져 폐렴으로 입원하게 되었을 때 내 모습이 그랬다. 병실에서 아이를 돌보는 동안은 밝은 엄마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가 잠든 밤이면 이유 없이 찾아오는 우울감에 괴로웠다. 그 감정을 우울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모성애가 부족한 철없는 엄마의 투정이 될까 봐 꾹꾹 눌러 담았다.
아이의 감기가 뚜렷한 원인 없이 찾아온 것처럼, 내 마음도 이렇다 할 이유 없이 서서히 아팠는지 모른다. 마음이 아플 때 왜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 언제부터 아팠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저 아이의 잔기침 소리에 보리차를 끓이고, 목수건을 챙기며, 수시로 컨디션을 챙기는 흔한 엄마들의 모습처럼 내 마음이 아파지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차려 주기만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하나그해 겨울 아픈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