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n Nov 26. 2020

우울할 땐 일을 하자.

 


  심리검사 결과 우울증 진단과 함께 약을 처방받았다. 이십 대에 임산부와 워킹맘, 전업주부 타이틀을 오가며 수많은 병명을 진단받아왔지만 우울증만큼은 예상에도, 보기에 없었다.


"약을 꼭 먹어야 되나요?"

"약을 드시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나요?"

"조금 우울할 뿐이지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요."

"우울의 정도에 따라 약을 처방해드려요. 물론 약을 꼭 먹어야 낫는 것도 아니지만요. 몸이 아플 때처럼 정신이 보다 효과적으로 낫기 위한 방법일 뿐이에요."


 나의 경우 우울증과 함께 동반된 몇 가지 증상이 있었다.

1. 깨질듯한 두통
2. 이유 없는 매스꺼움
3. 무기력함
4. 과민함

 소문난 겁보인지라 정신을 통제하는 약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으나, 우울한만큼 심해지 두통을 견디는 것 또한 무척 괴로웠기에 일단 복용해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소위 약발이 잘 받는 편이다. 유도분만 때는 무통주사 한 방에 곧장 잠이 들었고, 어느 부위든 소량 마취만으로도 금세 얼얼해진다. 그런 나에게 우울증 약은 직빵 그 이상이었다. 약간 몽롱한 환각 상태에서 슬프지도, 기쁘지도, 웃기지도, 놀랍지도 않았다. 그러나 약효가 떨어질 즈음엔 느끼지 못하고 있던 두통이 두세배 강도로 몰려왔다. 더 이상 약을 복용하면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지켜보던 남편이 먼저 만류했다.) 약을 대신할 솔루션이 필요했다. 어떤 상황이 또는 어떤 감정이 우울감을  망각하게 할 수 있을까? 시시콜콜 늘어놓던 수다 중 남편에게 곧잘 하던 말이 떠올랐다.


"난 일을 할 때면 아무 생각도 안 들어. 생각이 없다가 아니라, 일 생각만 나서 말이야."


 그렇게 집에 어항을 들였다. 바다생물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어항 가꾸는 일을 자처했다. 매일 물고기들의 안부를 살피며 밥을 주겠다고 나서는 아들과, 순전히 내 의지만으로 이 집의 구성원이 된 물고기들을 생각하며 어항 관리에 최선을 다했다. 아들이 느지막이 낮잠에 든 어느 날, 식탁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어항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며 10분 정도 그렇게 앉아있었을까. 문득 잊고 있던 두통이 떠올랐다. 약을 먹지 않고도 어항을 가꾸는 일 만으로 우울증을 이겨낸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일, 그로써 나 자신을 대견하게 느끼고 보람을 얻는 일이었던 것이다. 단 주부에게는 집안일 제외, 직장인에게는 회사일 제외. 하고 싶지 않지만 해내야만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은 근본적인 만족감을 줄 수 없다. 토록 가치로운 일을 찾는다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말인 즉, 나는 쉽지 않은 일을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는 사람라는 반증이 아닐까. 적어도 나의 경우를 예로 들면 우울한 사람은 마음이 아픈 사람이기 전에,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아픔을 치유해낼 수 있는 사람 듯하다. 이제 우울증 약이든, 진통제든 두통을 없애기 위해 무슨 을 먹을지가 아닌 내일은 또 무슨 일을 벌여볼 고민한다. 가끔은 새로운 일을 벌일 내일이 기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게 코로나 때문이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