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공휴일을 앞두고,
서른의 나와, 서른여덟의 남편.
여덟 살 차이의 우리는 여느 부부들처럼 반복되는 문제, 사소한 습관, 서로의 이기심으로 투닥거리기를 5년째 반복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의 다툼은 하루 이틀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
가장 최근의 다툼은 며칠 전 퇴근길에 있었다. 새벽같이 출근하면서도 늘 퇴근이 늦던 남편이 모처럼 비가 갑작스레 많이 내리던 날이었음에도 정시에 끝났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의 정시퇴근이 무척 반가웠지만 “나보다 먼저 도착하겠네? 웬일이야?” 퉁명스러운 척을 하곤 집에서 보자며 전화를 마쳤다. 빗길에 차가 더 막히기 시작할 즈음 남편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잘 가고 있어?” 어쩐지 싸한 느낌에 어디쯤인지 묻자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무척이나 대수롭지 않았다. “방금 출발했어. 일 좀 더 하고 오느라.” 휴가를 반납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을까, 근래 반복되던 야근 때문이었을까 이상하게 화가 올라왔다. 애써 화를 누르고 튀어나온 말은 “당연히 집에 다 와갈 줄 알았어. 난 항상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가서 저녁 차릴 걱정, 애 볼 생각, 늘 종종걸음인데 자긴... 좀 생각이 많아지네, 자기야.”였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남편은 무슨 생각이 많아졌다는 건지 따져 물었고, 보나 마나 다툼 거리가 될 듯하여 난 최대한 말을 아꼈다. 항상 싸움의 원인 제공은 남편이었고, 그 작은 불씨를 키우는 건 건 나였으니 말이다.
평소와 다르게 남편은 참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자기야, 내가 일 끝나고 술을 마시고 들어오니? 늘 끝나면 집으로 곧장 가는 걸 알면서... 왜 매번 늦는다는 둥, 안 쉰다는 둥...” 오늘의 불씨를 키운 건 남편이었다. “그래, 자기 말 한번 잘했다. 남들처럼 주말, 공휴일, 휴가 손꼽아 기다리며 정시 출근해서 어쩌다 야근하고, 어쩌다 술 마시고 그런 거면 나 이렇게까지 화 안나. 휴가도 반납해, 끽해야 일요일 하루 쉬는 것도 일 나가기 일쑤야. 공휴일도 남일인데 퇴근이라도 제 때 한 적 있어? 나도 자기테 열 번 잔소리하려다 자기 속상할까 봐 참다 참다 한번 말하는 거야. 이렇게라도 어쩌다 한마디 해야 밖에서 세상 좋은 사람인 자기가 마누라 잔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할 것 같아서! 그런 내 속은 어떤지 알아? 나라고 자기 속상할 소리인 거 뻔히 알면서 이러고 싶겠어?” 5년째 참았던 말들이 신혼의 끝자락을 달리며 터졌던 건지, 추적추적 비 내리던 날씨 탓이었던 건지, 둘째 임신 중 넘치는 호르몬 탓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정적 뒤에 눈치 없게 흐르는 눈물 덕에 그날의 싸움은 어찌 저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찾아온 주말, 아들과 물고기를 잡기로 한 약속을 한참 미루던 남편을 향해 최대한 얄밉게 운을 떼었다. “물고기 잡으러 갈 거야? 아들~ 아빠가 오늘은 일요일라서 쉬고, 내일은 대체공휴일이라서 쉬고 그래서 같이 물고기 잡으러 갈 수 있대! 아빠한테 물고기 잡으러 갈 거예요? 하고 물어봐봐.” 한껏 들뜬 아들과, 내심 기대하는 내 표정을 읽은 그가 웬일로 흔쾌히 “그래!” 하고 대답한다. 정말 내일도 쉬는 거냐고 몇 번을 되물었는지 모른다.
이 정도면 싸움의 수확이 상당하다. 다투며 소모되는 에너지가 너무 크지만 반가운 싸움이었다. 한편으론 싸움이 반갑다 느껴질 만큼 가족이 함께 보낼 시간이 절실했을까 싶어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우리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공휴일을 함께 맞이할 예정이다.
오늘을 위해 견뎌온 지난 모든 휴일 나의 독박 육아와, 그런 가족을 두고 일터에 나갔을 우리 집 가장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더불어 달력에 공휴일을 빨갛게 칠 해 놓고 기다렸을 모든 이들에게도 공감과 그 나름의 사정에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