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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m Nov 04. 2020

스물여덟 그리고 퇴사


 3살 배기 아들을 이유이자 핑계로 결국 나는 퇴사를 마주했다. 제법 던 학기말이었지만 후줄근하게 보이긴 싫어 나름 예쁘게 입고 마지막 출근을 했다. 롱 패딩의 유혹을 물리치고 원피스에 코트를 입으며,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진한 향수 대신 핸드크림을 듬뿍 바르고 만족했다. 그냥 스스로 그렇게 누리고 싶었던 날이었던 것 같다. 잘한 선택이라고, 최선의 결정이라고. 아쉬움을 전하며 앓는 소리를 하는 동료 교사들에게 한껏 밝은 표정과 톤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축하해줘야지! 이제 조기 출근 탈출, 무급 야근 탈출인데! 부럽다고 따라 나오면 안 되는 거 알지?"

 퇴사 첫날은 일요일 같았다. 다음날은 공휴일, 계속되니 연휴인가 싶다가 정확히 일주일 뒤, "나 이렇게 놀아도 돼?" 하고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 그동안 고생 많았잖아. 모처럼 푹 쉬면서 호야랑 좋은 시간 보내." 사려 깊은 우리 남편은 내가 듣고 싶은 말만 쏙쏙 골라서 답해 준다. "고생은 뭘, 남들처럼 산 거지." 미적지근한 내 반응이 신경 쓰였는지 연신 기분을 살피는 남편이다. '앞으로 뭐해 먹고살지 다시 생각해봐야겠어. 뭔지 몰라도 당장 뛰쳐나가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야.' 난 왜 이 말을 삼켰을까? '그럼 애는?'하고 돌아올 그의 반문이 무서워서였을까?

 나름 그 말을 오래도 참았다. 대학시절 알바를 쉬지 않고 해서 알바몬으로 불렸던 내가 집 근처 카페의 구인공고를 보기 전까지는. 고민은 딱 반나절,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겉옷을 벗기도 전에 나름 설득력 있는 이유덧붙이며 알바 전선에 뛰어들 것임을 선언했다. 남편은 나와 참 다른 사람이다. 말하기 전에 자신의 생각과, 말투와, 어조와, 제스처가 정리되어야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나는 그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할게? 한다? 한다고 했다?”, 그도 묻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겠지. “자기야, 그럼 애는?”


아들아, 우린 어떻게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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