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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창성 Mar 01. 2021

[무료광고포함]
나를 일하게 하는 세포들에 대하여

여전히 일하게 하는 423개의 브랜드, 아니 세포들.

오늘 아침도 정말 일어나기 싫다. 일어나면 당장이라도 풀썩 쓰러질 것 같다. 어젯밤 서서히 달아오르던 전기장판은 나를 29년 전 엄마의 뱃속으로 회기 시킨다. 안 나가도 탯줄로 연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꽹꽹 울리는 알람에게 하면 안 될 말을 던지고, [5분만]이 아닌 [500년만]이라고 외치려다 전략팀 대장의 얼굴과 사업팀 대장의 얼굴이 번갈아가며 스치고, 일어난다. 아니, 일어나 진다.

3월 1일 기준, 정확히 423개의 세포들이 나를 '일어나 지게' 했다. 500년 더 잘 이유보다는 423개의 세포들이 깨어날 이유를 더 많이 던져줬기 때문이다.


423개의 세포, 2021년 3월까지 내가 돌본 세포의 숫자들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와디즈라는 회사에서 디렉팅(Project Directing)을 맡은 프로젝트(브랜드)의 수이다. 죽은 세포도 분명 존재하지만, 죽은 세포들은 죽은대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배설하지도 않는다.

나를 일어나게 하고, 화장실로 데려가는, 그리고 전신 거울 앞에서 [우-푸-푸-]하며 입을 풀게 하는. 즉, 나를 여전히 일하게 하는 브랜드. 브랜드라는 세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내가 창업하여 일을 했던 시간보다, 와디즈라는 한 회사에서 일한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다.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빠른 싫증으로 무장한 나라는 인간을 보았을 땐 놀랍다.

싫증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세포(브랜드)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강연을 할 때면, 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나를 더 큰 목소리로 말하게 한다. 미팅을 할 때면, 불꽃같은 의지나 의존으로 꽉 찬 눈망울이 나를 더 말하게 한다.

사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세포들이지만, 나의 말에 신뢰라는 보청기를 끼고 '귀 기울임'을 해주는 세포들. 감사한 마음으로 몇 가지 세포들을 [무료광고] 해보려고 한다.

*제품 광고는 아니고, 그 브랜드에서 느낀 점을 나열해놓은 수준이라 체하진 않으실 겁니다.


1번 세포 | 뷰티 브랜드, 코스메쉐프(Cosmechef)

코스메쉐프의 NEW 사무실, 제조공장. 그리고 대표님!

흰 옹기를 떨리는 손으로 잡고, 손과 상충되는 자신감 넘치는 눈빛. 그리고 p-o-w-e-r- 넘치는 어조로 제품을 어필하던 그녀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첫인상이다. 사실 제품에 대한 확신을 갖기보다는, 그녀의 느낌을 믿었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았다.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제품을 받고 써보니,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그래서 그 시절 방판이 잘 됐구나. 듣고 쓰니 더 좋은 것처럼 느껴진다.

강렬했던 첫인상의 인연이, 우여곡절 끝에 2년을 넘게 이어져왔다. 이제 나는 강렬한 첫인상을 믿기로 했다. 강렬한 첫인상이 나와 그녀, 코스메쉐프 이수향 대표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나만 아는 비밀 이야기를 하자면, 흑당고는 이수향 대표의 눈물을 먹고 자랐다. 1억이 넘는 금액이 펀딩 된 순간, 서포터의 자필 편지를 받은 순간, 정성스레 올라오는 후기를 본 순간. 이젠 이 대표의 눈물이 어색하지 않다.

제품을 만든 그들의 눈물을 보며 그들의 비즈니스를 이해한다. 나는 아직도 서당개고, 그들의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과정이 여전히 즐겁다.



2번 세포 | 캠핑 브랜드, 아늑(ANUK)

성수동 아늑 스튜디오에서, 제품 촬영하는 대표님.

브랜드의 이름이 주인과 참 닮아있다. 아늑(ANUK)의 성수동 스튜디오는 분명 쌀쌀한데, 대표님(혹은 작가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늑한 훈기가 돈다.

언젠가 나에게 참 건강한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전한 아늑. 내가 건강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이유는, 나에겐 아득하기만 한 창작을 실현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텐트를 만드는 대표의 모습에선 진정과 현재가 보이고, 셔터를 누르는 작가로의 모습에선 지나온 시간이 보인다.

장난기 어린 말들로 대화의 빈틈을 채우는 나, 혹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독한 피드백을 내뱉는 나. 과거와 현재를 힘 있게 가지고 가는 대표님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3번 세포 | 뷰티 브랜드, 셀룸(Celloom)

성수동 로우키에서, 셀룸의 선세럼을 처음 만나던 날.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착한 대표님, 그리고 그 손에서 탄생한 착한 화장품.

인스타그램은 프로젝트의 연장선이자, 재밌는 별책부록으로 보인다.

좋은 제품이 있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소개를 넘어, 자랑하고 싶은 브랜드는 이곳이다.

수많은 화장품 브랜드가 있지만, 이곳처럼 모든 것에서 친절한 감도를 가진 곳은 드물다.

친절한 감도는 고객을 감동시키고, 역삼에 있는 셀룸을 '집 앞 맛집'처럼 따듯하게 만들어준다.


어나더를 만나고x999 만나다 보니, 본질을 놓치는 이유가 안타깝다. 구구절절한 인디 브랜드로 비치는 것이 싫다거나 파워 세련 브랜딩을 하고 싶어서. 물론 존중하고, 또 존중하지만. 피부에 닿는다는 본질을 지키려면 '친절'이 필요하다.

피부의 닿는 것이니 마음이 닿아야 통한다는 것을 파워 친절 세련으로 보여주고 있는 셀룸!

제품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피부 고민이 있다면 꼭 맞춤형 앰플을 써봤으면 한다.



4번 세포 | 패션 브랜드, 패브릭폼(FABRICFORM)

프로젝트 이후, 가로수길에 생긴 패브릭폼의 탐나던 쇼룸.

훔쳐서 주섬주섬 나의 내적 아카이브에 욱여넣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브랜드가 여기. 속옷과 집에서 입을 수 있는 제품을 '잘' 만드는 패브릭폼이다.

입에 잘 붙는 브랜드명, 괜히 버리기 싫은 마음이 드는 박스까지. 하다못해 패키지에 포인트로 붙어있는 네온 스티커까지 마음에 들었다. 조금 더 크리피하게 들어간다면, 그 네온 스티커 안 FF까지. 그 FF의 자간까지.

위워크 작은 회의실에서 처음 이 브랜드를 만났을 때, "이 브랜드가 '촘촘한' 브랜딩이 되어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볼까?"라고 걱정했다. 역시나, 미리 걱정하는 일들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패브릭폼을 애정 하게 되었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닌, 정갈한 브랜딩 위에 프리미엄 제품을 내어놓는다. 그리고 하나하나 직접 만든 각진 선반 위에 그것들이 올라가 있다. 귀여운 잔고를 잊고 지갑을 연다. 아 배부르다.



5번 세포 | 뷰티 브랜드, 랫어릿(Rat-a-rit)

센스 있는 조향사가 직접 조향 하는 브랜드.

킁킁! 향을 맡는다. 얼굴 중심에 있는 구멍 두 개만으로 걸어, 내가 유럽도 갔다가 지중해도 간다. 또 어떤 날은 감귤이 활짝 열린 돌담길에 있기도 하고.

직접 향을 맡지 않아도, 콘텐츠로 향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그 어려운 것을 해내는 브랜드다.

"PD님, 저 진짜 향에 진심이거든요."라고 얘기한다.

그럼 나는 답한다.
"(벌벌 떨며) 이미 콘텐츠를 봐서 알고 있으니까요, 말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향에 대한 열정으로, 차근차근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매우 즐겁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랫어릿은 어느 순간 뛰고 있을 것이다. 코로 걸어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시켜준 랫어릿. 어느 순간 진짜 유럽에서 랫어릿을 볼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6번 세포 | 의류 브랜드, 일상기술연구소(EVERYDAY LAB)

20년 가을날, 유당분해효소와 함께 받은 대표님의 책

불편한 생활 혹은 따가운 관념 속, 여성들의 자유로운 가슴을 위해 뛰는 일상기술연구소 이유미 대표님. 나와 일하실 땐 노브라 티셔츠를 만든다. 또, SF소설 평론가로 부캐(혹은 본캐)를 살기도 한다. 그녀는 헝거게임 속 캣니스처럼 무언가를 사랑하고, 의식적으로 살아간다.

'이게 될까?'라는 불안한 눈빛으로 제품을 바라보는 우PD, 그리고 뭐든 해보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대표. 뜨겁다 못해 판교를 녹여버릴 것 같은 첫 만남이다. 둘 사이에 튀는 불꽃이 결국 폭죽과 같은 결과를 만들었다.

'불편함을 해소하는' 브랜드의 해우소 같은 모습, 그리고 '새로운 영역에 자신 있게 도전하는' 대표님의 모습을 [찰떡이다.]라고 표현하면 매우 적합할 것 같다.



신뢰라는 보청기를 끼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423개의 고마운 세포 중 6가지 세포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다. 쓰고 나니 고마운 마음은 배가 된다.


'그거 해서 뭐하려고'라는 질문을 받은 지 2년 반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감사하게도 [저 질문]은 나의 머릿속을 계속 따라다닌다. 일하는 이유는 예비 세포들의 눈망울에서 이미 가득 채웠다. 일하는 기쁨은 세포들과 나누는 대화에서부터, 시장에서 죽지 않는 튼튼한 세포가 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까지. 그 뿌듯한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시선에서 오고 있다.

'세포 같다.'라는 마음에서부터 풀어서 여기까지 썼는데, 쓰고나니 브랜드들이 더 세포 같다. 그들의 행복(이를테면 브랜드의 성과, 성장)이 지금의 나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나는 이 세포들을 잃지 않도록, 나 자신이고 내 자산인 것들을 잃지 않도록. 더 열심히 노동해야겠다.


나의 세포들아 애정해!

더 열심히 노동할게요.

우창성 PD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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