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 루틴’ 열풍과 완벽한 일상에 대한 환상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중초점 안경, 주행 거리계, 도뇨관 등 다양한 발명을 한 역사적 천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 ‘허슬(Hustle) 문화’의 시초 역시 그에게 어느 정도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세기에 프랭클린은 자기 일일 루틴을 자서전에 공개했고, 이것이 오늘날의 “새벽 5시 기상, 철저한 시간 관리, 뚜렷한 일과” 같은 생산성∙루틴 열풍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 화제를 모았다.
이 루틴에서 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 세 끼 식사, 업무를 시간 블록으로 나누어 진행하기, 아침과 저녁마다 자기 점검하기 등을 강조했다. 300년 전에 적힌 내용이지만, 요즘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는 “성공한 사람들의 하루 루틴”과 닮아 놀랍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영감과 동경: “성공한 사람이 이렇게 산다”는 이야기는 언제나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질서감 추구: 복잡한 세상 속에서, 규칙적인 생활 패턴은 일종의 안정감을 준다.
약간의 엿보기: 타인의 사생활 일부를 보는 데서 오는 즐거움도 무시 못 한다.
반면, 이런 루틴은 종종 현실성 없는 퍼포먼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새벽 2:30에 일어나서 3:40에 운동, 9:30에 냉각 요법…” 같은 루틴은 일반인이 따라 하기엔 너무 비현실적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허슬 포르노(Hustle Porn)”라고 부르며 조롱 섞인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연구자 칼 세더스트룀(Carl Cederström)은 현대 자본주의가 “개인 스스로를 무한정 개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한다고 지적한다. SNS는 완벽해 보이는 일상을 손쉽게 과시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완벽함을 강요하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
작가 윌 스토(Will Storr)는 “완벽주의는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치명적 아이디어”라며, 많은 이들이 “그들이 되지 못한 환상적 자아(fantasy self)에게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이 ‘생산성 열풍’을 확산시킨 만큼, 그에 대한 반동도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허슬 포르노”라는 용어가 대표적이고, 이른바 ‘안티 생산성’ 혹은 ‘과로 탈출’을 주장하는 책들도 쏟아진다.
《Do Nothing》, 《Can’t Even》, 《How to Do Nothing》 등은 지나친 자기계발, 과도한 경쟁·성과주의가 어떻게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조명한다.
한편, SNS에서는 #slowliving, #antiwork 같은 해시태그가 확산되며 새로운 흐름을 형성 중이다.
원래 생산성(Productivity)은 경제학적으로 ‘투입 대비 산출을 최대화’한다는 개념이다. 국가·기업 차원에서 효율이 높아지면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사회 전반이 풍족해진다는 이론적 배경이 있다.
그러나 ‘개인 생산성’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부상했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사무직(화이트칼라)이 늘어나고, 지식 노동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기업의 효율을 높이는 일이 개인의 책임이 된 동시에, 무한한 업무 요구가 개인에게 전가되었다.
더 잘해내기 위해선 ‘새로운 생산성 툴과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겼고, 이는 자기계발 산업과 생산성 앱·솔루션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다.
문제는 개개인의 시간은 유한하다는 점이다. 새로운 생산성 도구를 쓰거나, 가족·취미 시간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계속 더 높은 효율을 요구하는 구조가, 우리의 삶을 점차 피로하게 만든다는 것이 핵심 비판이다.
거품을 경계: “이번 생산성 앱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식의 과장된 홍보를 경계하자.
남과 비교하지 말 것: 남이 공개하는 루틴은 개인의 맥락이 빠져 있을 때가 많다. 자기 상황에 맞지 않는 목표 설정은 “생산성 왜곡”을 부를 수 있다.
장기적 웰빙이 우선: 업무 효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신체·정신적 건강이 우선돼야 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프랭클린이 일상 루틴을 소개하면서도 “아침 시간을 옷을 걸치지 않은 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보냈다”는 고백을 따로 남겼다는 것이다. 그의 루틴 표에는 없던 내용이었다.
결국, 아무리 유명 인사의 루틴이라도 숨겨진 ‘진짜 일상’이 있기 마련이며, 우리 역시 드러난 부분만 보고 무작정 따를 필요는 없다. 루틴이든 생산성이든,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적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자기계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