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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업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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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Jul 31. 2024

외조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영업의 세계



밤샘 근무가 당연하던 직장인에서 시간이 자유로운 프리랜서가 되었고 선택받아야만 했던 수동적인 프리랜서에서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하는 자영업자가 되었다. 직장인, 프리랜서, 자영업자의 순서는 마치 점점 더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면에서는 맞기도 하다. 일에 내 가치관과 취향을 모두 담을 수 있고 도전해보고자 하는 것들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건 회사 다닐 땐 상상도 해볼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자유다.


평일의 루틴은 이렇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여유롭게 걸어서 상점에 출근한다. 오전에 혼자 매장을 지키며 업무를 보다가 오후 출근한 동업자와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할 일들을 하다가 4-5시쯤 퇴근해 아이를 데리러 간다. (나보다 늦게 출근한 동업자가 6시까지 상점을 지킨다.) 아이와 함께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설거지하고 취침 준비를 하면 하루가 마무리되는 일상이다. 퇴근 시간과 아이의 하원 시간이 겹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 워킹맘이지만 아이와 시간을 충분히 보낼 수 있다는 장점. 다 내 사업하니까 가능한 일이다.


여기까지는 자영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과 육아를 균형 있게 공존할 수 있게 하는 시간의 여유. 그런데 여유가 생긴 만큼 자유를 빼앗아가는 시간들도 있다. 바로 주말이다. 토요일에도 상점 문을 열어야 하는데 유치원에 가지 않는 날이라 남편이 온전히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공휴일에도 업무를 하게 될 경우 그날 역시 육아는 남편의 몫이 된다. 에너지가 최고조에 이른 다섯 살 아들을 하루종일 혼자 돌보는 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봄과 가을은 플리마켓의 계절이다. 상점에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손님이 찾아와 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게 제로웨이스트샵의 현실이다. 제 발로 나서 손님을 만나러 가는 수밖에 없다. 상점을 홍보하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 플리마켓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주로 동네 플리마켓에 참여하는 편이지만 유동인구가 많고 참가비가 저렴할 경우 근처 도시까지 진출한다.


플리마켓의 시간과 날짜는 선택할 수 없다. 기회가 있을 때 신청해야 하고 선정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플리마켓은 대체로 주말에 열리는데 혼자 운영하는 상점일 경우는 매장 문을 닫고 참가해야 한다. 우리는 공동 운영인 덕분에 플리마켓이 열리는 날 한 명은 상점을 지키고 나머지 한 명이 플리마켓에 나간다. 


부스를 지키고 있으면 남편과 아이가 놀러 온다. 공연을 보거나 이벤트에 참여하고 플리마켓을 구경한다. 중간에 매장에 가서 물건을 가져다주거나 마감과 정리를 함께 하는 등 일손을 도울 때도 있다. 남편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면 무언가 할 거리가 필요한데 플리마켓은 좋은 놀이 공간이 된다. 바쁜 와중에 가족들이 곁에 있는건 조금 신경이 쓰이지만 그래도 남편과 아이가 잘 놀고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안심이 된다.


차로 한 시간 넘게 가야 하는 비교적 먼 곳의 플리마켓에 참여한 적이 있다. 거리가 멀어 고민했지만 공간과 기획 의도가 좋아 꼭 참여하고 싶었다. 바닷가 앞이라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함께 갔다. 면허가 없는데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운 곳이라 어차피 남편 없이는 갈 수도 없는 곳이었다. 우직한 남편은 불평불만 하나 없이 기꺼이 나를 외조하며 아이와 함께 그 시간을 즐겼다. 고마운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에 면허를 따야겠다고 결심했다. 


동네 공원 플리마켓에 참가한 어느 주말 저녁이었다. 남편과 아이는 공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집에 돌아갔다. 슬슬 물건을 정리하려던 참이었다. 차에서 아이가 내리더니 손수건에 싼 네모난 무언가를 들고 내게로 걸어왔다. 집에 가서 둘이 저녁을 먹은 후 내 도시락을 싸온 것이었다. 그것도 비건 도시락이라니 감동이었다. 남편이 쌌겠지만 모든 영광은 아이가 받았다. 집에 가서 편하게 밥을 먹고 싶었던 터라 조금 당황했지만 행복하고 고마웠다.


내 사업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외조였다. 남편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일들을 해낼 수 있었을까. 없었을 거다. 남편이 나를 위해 단순히 주말 육아만 전담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들을 존중해 주고 진심으로 응원해 준다. 돈은 제대로 버냐며 남들이 말리는 이 일을 믿어준다. 그 응원과 믿음 속에서 나는 가열하게 애쓰며 나아가고 있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며 사업에 매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직 아이가 어리기에 현실적으로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선택이 없다. 내 일도 중요하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도 소중하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일도 해야 하는 워킹맘의 일상 안에서 가장 중요한 균형이다. 이 균형을 위해 우리 부부는 평일과 주말의 모든 시간들을 꽉 채워 열심히 살고 있다.


오늘도 4시 30분쯤 퇴근해 아이를 데리러 갔다. 함께 놀이터에서 놀다 집에 들어와 아이를 씻기고 부랴부랴 요리를 하고 저녁을 먹었다. 8시쯤 집에 온 남편이 늦은 저녁을 먹고 아이와 함께 잠든 이 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생각들을 정리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지금 하는 것들과 앞으로 할 것들에 대해 찬찬히 나열해 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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