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업의 전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적 Nov 29. 2024

나의 첫 환경 강의



나의 첫 환경 강의가 끝났다.



플리마켓으로 한창 바빴던 지난가을부터 틈틈이 강의 준비를 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부담을 잔뜩 안고 있다가 다 털어내고 나니 홀가분하다. 강의 자료를 구성하고 준비하는 시간들에 촘촘하게 긴장이 함께 했다. 삶에도 적당한 긴장감이 필요하듯 싫지 않은 설렘이었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돌 연습생과도 같았다. 연습할 땐 디테일 하나까지 치열하게 준비했고 무대 위에선 그저 즐기며 나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 적은 인원이었지만 환경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나의 데뷔 무대를 지켜봤다.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와 채식을 선택하고, 제로웨이스트샵 운영을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이 외로움은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소수만 관심 갖는 영역을 선택함으로써 따라오는 사회적 외로움이었다. 단순히 판매량이 작은 것을 떠나 어떤 일을 기획하고 알렸을 때 관심 갖고 모여드는 사람의 수가 적은 것을 여실히 느꼈다. 문화를 만들겠다고 눈덩이를 열심히 굴리지만 좀처럼 불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막막하기도 했다. 다양한 활동을 하며 영역을 확장해나갈수록 갈증도 심해졌다.


한마디 한마디를 이어가며 강의하는 동안 내 안의 긴장감은 점차 가라앉았고 마음은 따뜻한 무언가로 채워졌다. 일방적인 가르침을 주는 강의가 아니라 대화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공간의 모든 것이 너무도 친절하게 느껴졌다. 산 정상에 올라 거친 숨을 몰아쉬다 벌컥벌컥 들이켠 냉수처럼 시원하기도 했다. 다 쏟아냈기에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았다. 그간의 갈증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나 정말 목말랐었구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구나 싶었다.


1회차 강연에 제로웨이스트샵의 활동과 친환경 제품들에 대해 소개하고 2회차에 <나의 제로웨이스트 취향 찾기>를 주제로 내가 제로웨이스트를 하게 되었던 과정들을 공유했다. 지구에 덜 해로운 생활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각자의 일상도 지속 가능해야 하기에 취향을 버리지 말고 가치관에 녹여내자는 이야기를 전달했다. 각자의 방식대로 건강하고 단단하게 하지만 부드럽게 나아갈 수 있는 마음가짐을 위해 질문을 건네고 함께 고민하는 시간도 가졌다.


고작 첫 경험에 앞으로 내가 어떤 식으로 강의를 해나가야 할지 어떤 걸 잘할 수 있을지 나만의 길을 찾았다. 대단한 정답을 말하는게 아니라 나와 어울리고 잘 맞는다고 느껴지는 일종의 감각이다. 결국 내가 원했던 건 또 살롱이었다. 취향을 탐색하겠다고 독립서점과 카페를 돌아다니고 팟캐스트와 살롱을 진행했던 지난 시간들이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잠자고 있다 이번 기회에 다 같이 깃발을 들었다. 나 아직 여기 있다고. 이제 너의 가치관으로 나를 다시 잘 엮어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마치 무의식처럼.


연남동 녹음실에서 녹음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늘 '스프링플레어'라는 독립서점이 있었다. 매번 지나치지 못하고 그 공간에 발을 들였다. 어쩜 가져다 놓은 책들마다 그렇게 내 취향인지 감탄했던 곳이었다. 나열된 책 제목을 읽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렇게 최애 책방에서 최애 작가의 신간을 발견했고 환경에 진심이 아니었을 때 '아무튼, 비건'이란 책을 읽었다. 오로지 살롱을 잘 해보고 싶은 마음에 제로웨이스트숍을 방문했고 한 달간 내가 만들어낸 쓰레기를 기록한 쓰레기 일기를 썼다. 친환경 라이프를 콘텐츠로만 바라보던 시간들이었지만 그 호기심들은 이후의 나에게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단단한 씨앗이 되었다. 다만 싹을 틔우기까지 잠자는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아무튼, 비건'에 소개된 이론이 하나 있다. 김한민 작가님이 '혜성을 닮은 방'이란 책을 쓰며 만들어낸 이론이라고 하는데 바로 'M.C (I미디어 커리큘럼)'이다. 내가 흘러가듯 보고 접하는 것들이 나에게 어떤 커리큘럼처럼 쌓여 작용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살면서 수많은 매체들을 접하는데 가끔은 그 매체들이 자꾸 신호를 보내오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우연히 본 신문 기사에, 서점에서 스쳐 지나가며 본 책 제목에, 버스에서 들리는 라디오 방송 책 소개 프로그램에 반복적으로 어떤 신호를 느끼는 것. 헨젤과 그레텔이 빵 부스러기를 줍듯 그 신호를 따라 거슬러 올라다가 보면 예상치도 못한 지혜의 조각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님에게 미디어 커리큘럼 중 하나는 동물이었고 내게는 작가님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비수기의 전문가들'이란 책이 회사에서 밤새우며 일하다 뛰쳐나와 프리랜서의 녹록지 않음을 경험하던 나를 묘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매료되었다. 그다음으로 속초 여행길에 '그림 여행을 권함'이라는 책을 읽었고 그다음이 '아무튼, 비건'이었다.


어쩌면 사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래도 나는 이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지구를 위해 쓰레기를 줄입시다!'라고 정면으로 메시지를 내세우기 보다는 돌려 말하고 싶었다. 어쩐지 나는 그게 더 강력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더 오래 더 꾸준히 즐기며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한 번에 휘발될 강의라고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았다. 작은 강의 일지 몰라도 내 인생의 포트폴리오를 쌓아 올린다는 마음으로, 앞으로 또 이야기할 기회가 분명히 올 거라는 확신으로 이야기를 담았다. 완벽하진  않았어도 만족스러웠다.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도 앞으로의 내가 배우고 고쳐나갈 테니 그 또한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이번 강의에서 초보 환경 강사였던 내가 남긴 부스러기들이 누군가에게 좋은 신호가 되었기를. 그 부스러기가 각자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조각에 쓰일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