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야 적어도 바다는 네가 가졌으면 좋겠어
아쿠아리움에 가지 않는다.
집이 없는 서러움에 대해 안다면 고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까. 거대한 사회 안에서 너무나 작은 존재가 된 듯 무력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어떨까. 선택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건 고래나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다.
바닷속 세계는 눈으로 보기 어렵고 자연은 너무 크고 다채로워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기 어렵다. 끝이 없을 것 같은 무궁무진한 세계를 전부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막연한 두려움, 희망, 영감 같은 것들이 버무려져 어느 순간 환상이 되어버렸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환상.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삐뚤어진 환상.
내 삶에서 아이와 함께 수조 안에 갇힌 고래를 보러 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신기하다며 쳐다보라고 말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하루에 1000km를 이동하는 고래가 좁은 수족관 벽에 부딪혀 다시 돌아오는 초음파로 인한 이명에 시달리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지 않다. 아이가 어둠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알면서도 눈 감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단체 생활을 하며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호기심이 내 선택을 넘어서는 순간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내 의견은 뒷전이 되고 무력하고 씁쓸하게 바라만 봐야 하는 상황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주어지는 것들에 대한 선택은 변함이 없기를.
미디어 아트 전시를 보러 갔다. 거대한 공간 안에 심연의 바닷속 모습이 영상으로 재현되고 있었다. 아쿠아리움보다 더 환상적인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상어 입속에 들어가는 듯한 장면이 3d로 다이내믹하게 연출되는 가상 현실의 세계. 아이들은 이곳이 놀이터인 듯, 바다 속인 듯 움직이는 것들에 반응하며 신나게 놀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은 묘했다. 참 모순적이고 환상적이라고 느껴졌다. 인공적인 자연의 모습은 진짜보다 화려하고 지나치게 이상적이었다. 쓰레기 하나 마주칠 일이 없는 가짜 바다였다. 진짜 바닷속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어떨까. 하얗게 죽어버린 산호들과 둥둥 떠다니는 쓰레기들을 마주해야 하는 건 아닐까. 병든 생명체들이 뒤엉켜 사라져가고 있는 건 아닐까.
영상 속 자연은 이미 사라져버린 환상처럼 느껴졌다. 먼 미래에 정말로 자연은 신화 속 이야기처럼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잃어버린 존재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으로만 남게 되는 건 아닐까. 깨끗한 자연이 허상의 유니콘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 내 아이가 남겨지게 되는 건 아닐까.
봉사하는 마음이 아니다. 내가 그리 이타적인 사람이기 때문도 아니다. 걱정이 아니다. 두려움이다. 피가 거꾸로 솟을 뜻한 뜨거움이다. 슬프고 막막하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뿐이다.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붙이고 살아가고 싶다. 오늘에 충실하며 온 마음으로 내 삶을 열심히 살고 싶다. 좋은 집도, 나쁜 집도 원하지 않는다.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내 몫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큰 기쁨이자 행복일 것 같다.
환상은 환상으로 남겨두고.
고래야 적어도 바다는 네가 가졌으면 좋겠어
고래야 헤엄하던 대로 계속 헤엄했으면 좋겠어
부러워 난 고래야 네가
아마도 다들 그럴 거야
아마도 다들 그래서
바다를 빼앗으려는지 몰라
오 거대한 너의 그림자를 동경해
이 넓은 바다를 누비는 너의 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