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부모님과 남편, 아이와 함께 하는 조금 이른 여름 여행이었다. 여행 그 자체는 너무 좋지만, 아래, 위로 다 챙겨야 하는 입장에선 신경 쓸 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채식도 성에 차지 않았고 제로웨이스트 역시 방해꾼 꼬맹이 덕에 완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즐거웠고 욕심내지 않는 소박함으로 순간들을 채울 수 있어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언제나 그렇듯 ‘지속 가능한 여행’에 특별한 기준은 없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완벽하지 못했음에 미련 갖지 말기.
그거면 충분하다.
떠날 때부터 휴게소 알감자 노래를 불렀던 친정 엄마.
용기를 들고 호기롭게 나섰지만 알감자들은 모두 일회용 코팅 종이 용기에 담겨있었다. 미리 담아놓고 손님이 주문하면 꺼내주는 식이었다.
그래도 나는 용기를 내밀어 감자를 받았다. 사용하지 않은 일회용기는 그대로 또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더 바랄 수도 없었다.
다만,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누군가는 일회용기를 원하지 않는구나’ 정도의 인식만 주었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한다. 솔직히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말이다.
감자는 맛있었다.
양양 가는 길에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검색했는데 마침 설악산 입구 근처였다. 간단히 비빔밥 먹자는 부모님 말에 속으로 ‘채식이라 다행이다!’를 외치며 찾은 곳이었다. 관광지라 바가지 쓰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저렴하고 푸짐하고 맛있는 곳이었다.
곰취에 쌈도 싸먹고 각종 나물을 비벼 먹었다. 된장찌개에, 물김치까지 와구와구 열심히 먹었다. 채식이 아니더라도 이런 시골스러운 밥상이 좋다. 속이 부대끼지 않는 배부름이 좋다.
대체로 좋았다. 다섯 살이 세 살 모드가 된 것만 빼면. 전을 더 먹고 싶다고 해서 감자전 시켰는데 메뉴 나오자마자 안 먹는다고 한 것만 빼면. 그래서 남편이랑 나랑 배 터지게 먹은 것만 빼면.
그래도 감자전은 맛있었다.
해가 한참 강하게 내리쬐는 오후 낙산사를 찾았다. 풍경도 아름답고 산책하기 딱 좋은 길들의 연속이었지만 너무 덥고 목이 말라 더 이상 걸어갈 수가 없었다.
카페에 들어가 야외 자리에서 음료 마시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일회용 컵이었다. 익숙하게 한숨을 내쉬며 텀블러를 꺼내기 위해 가방 안을 뒤적거렸다.
텀블러에 담아달라고 했다. 모자라는 수만큼만 일회용 컵에 달라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어느 테이블을 봤는데 유리잔이 보였다. 어리둥절한 채로 카운터 직원분께 유리컵에 음료를 받을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앉아서 먹고 가면 머그와 유리컵에 받을 수 있는 거였고 종이 빨대를 쓰고 있는 곳이었다. 불필요한 에너지를 쓴 기분이 들었다. 다회용기에 달라고 했을 때 먹고 가는 거냐는 질문을 받았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혼선이었던 건지 모르겠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되었던 걸까.
경험을 통한 피해의식이 과정을 복잡하게 만든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지난 여행이 딱 그랬다. 절 초입에 ‘일회용품 사용 금지’라는 문구를 보고 마음 편하게 둘러보다 카페에 들어갔는데 일회용 컵을 쓰고 있었다. 앉아서 먹고 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플라스틱 컵이 제공된 걸 보고 적잖이 실망했던 기억.
이번엔 아니었는데도 그 기억이 나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연식이 오래된, 하지만 깨끗한, 너무 비싸지 않은 숙소에 체크인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단정하고 있을 것 다 있고 다섯 명이 함께 묵기에 그리 좁지 않은 창밖으로 소나무가 보이는 방이었다.
화려한 감성 인테리어는 아니었지만 주인 내외분이 참 열심히 관리하시고 신경 쓰는 곳이라는 게 느껴졌다. 손님들과 자주 소통하는 모습이 친절하고 다정해 보였다.
이래저래 마음에 드는 게 많은 곳이었는데 제일 좋은 건 따로 있었다.
“아침으로 누룽지 어떠세요?”
조식으로 샌드위치가 나왔다는 후기를 보고 ‘햄 빼달라고 말해야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누룽지라서 반가웠다. 고구마, 감자가 있으니 쪄서 함께 먹으면 딱이겠다 싶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고 찡찡이 모드 된 다섯 살을 마당에 데리고 나와 훈육하던 참이었다. 사장님이 큰 쟁반에 조식을 가지고 나오시는데 콩나물국과 각종 채소 반찬까지 너무 푸짐해서 깜짝 놀랐다. 훈육 종료.
밤호박, 고구마순 무침, 배추김치, 이름 모를 나물 무침까지 어쩜 다 내 취향이었다.
엄마가 쪄놓으신 감자, 고구마와 함께 먹으니 양도 딱 적당하고 좋았다. 전날 편의점에서 사온 구운 계란은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하나씩 나눠먹었다.
이튿날 비가 내려 바다에서 짧은 모래놀이를 마친 후 양양시장으로 향했다. 메밀국수를 먹으면 좋은데 비가 와서 당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맛집을 찾아냈다.
감자옹심이 파는 곳이라고 했더니 아빠는 시큰둥한 눈치였지만 엄마는 좋아하셨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핫한데. 기본은 하겠네.
감자옹심이는 계란이 들어가 있었다. ‘비건(vegan)’이 아닌 ‘오보(ovo)’에 해당한다. 멸치 육수를 사용했다면 정확히는 ‘페스코(pesco)’일지도 모르겠다. 고기가 들어가 있는 오징어순대는 나를 제외한 가족들만 먹었다.
메밀 전병이 튀겨져 나오는 게 아주 별미였다. 김치맛과 곤드레맛 두 가지 중 김치맛에만 고기가 없는 걸로 유추되어 김치만 먹었다.
적당히 걸러내고 자주 타협하는 여행이었다.
식당 바로 건너편에 찐 옥수수 파는 곳이 있었다. 아빠가 드시고 싶다고 해서 사려는 데 20분 걸린단다. 시장 구경할 동안 그 정도 시간은 흐를 것 같아 주문을 해두었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용기부터 꺼냈다.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나 대신 엄마가 가게에 용기를 주고 오셨다. 어떻게 말했냐고 묻는 내게 엄마는 황당해했다. 그냥 통에 담아달라고 하면 그렇게 줄텐데 왜 당연한 걸 묻냐는 식이었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
20분이 지났고 옥수수는 비닐에 쌓인 채로 곱게 용기
안에 담겨있었다. 그것 봐 엄마..
상인분을 탓할 생각이 없다. 오랫동안 비닐 포장은 우리 사회에서 당연했고 익숙했고 예의이자 매너이기까지 했다. 지금도 그렇다. 용기를 왜 내미는지 모르셨을 거다. 그래서 설명이 필요한 거다.
“쓰레기 좀 줄이고 싶어서요.
이 비닐은 다시 써주세요.“
그 자리에서 비닐을 벗겨 다시 드렸고 그 비닐은 무언가를 쌓아둔 곳으로 두둥실 날아가듯 떨어졌다. 버려진 건지, 다시 쓸모를 찾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차 타러 가는 길에 싱그러운 복숭아가 눈에 들어왔다. 이걸로 내 마음에 무언가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빠알간 천도복숭아를 집에서 가져온 재사용 지퍼백(재사용=여러번 사용한, 새로 구매하지 않은, 당근 거래할 때 받은,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온)에 골라 담았다.
옥수수에서 나동그라진 마음을 복숭아로 극복했다.
복숭아는 참 달았다.
오후엔 아이가 노래를 불렀던 아이스크림 카페에 갔다. 배 농장을 하면서 배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었다. 남편과 아이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지인 가족과 함께 아빠와 아이들만 떠났던 지난 여행에서 조금이라도 건강한 거 먹이겠다고 남편이 찾아냈던 곳이었다.
이젠 나보다 더한 사람..
아이스크림엔 또 준비된 용기가 있지.
“여기에 담아주실 수 있을까요?"
종이컵 사이즈의 다회용 ‘하루컵’을 내밀었다. 여행 내내 물컵으로 쓰고 있었는데 아이스크림을 넉넉히 담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제 내게 ‘용기내 챌린지’는 더 이상 챌린지가 아니다. 그냥 일상에 스며든 습관일 뿐 일회용기가 더 어색하고 불편하다. 속상하기도 하고.
컵이 크다고 더 담아주셨다. 용기를 내면 이렇게 종종 덤이 생긴다. 행복한 덤.
다 먹고 가려는데 사장님께서 컵을 헹궈주시겠다고 했다. 민망해하며 감사하다고 답했다. 컵이 너무 좋아보인다고 이야기하셨다.
“제가 파는 건데 목재 컵이라 미세 플라스틱과 환경 호르몬이 나오지 않아요. 식기세척기도 사용할 수 있고요.”
홍보하려고 가지고 다닌 건 아닌데 그런 셈이 되었네. 더 열심히 가지고 다녀야할 이유가 생겼다.
그건 그렇고. 대화를 나누다가 몰랐던 뒷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매장 내 물컵으로 크라프트 종이컵이 비치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가 플라스틱 컵을 사람들이 자꾸 가져가 분실률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환경에 대한 관심이 있지만 현실적인 이유들 사이에 내가 모르는 많은 자영업자들의 고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이 필요하고.
결국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만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엔 변함이 없다. 환경을 위해 애쓰는 소상공인들을 국가에서 지원해 주어야 하고 매장에서는 설거지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손님들은 남의 컵을 가져가지 말아야 한다.
다음날의 조식도 푸짐했다. 누룽지, 된장국, 콩나물무침, 밤호박 찜 등이 나왔다. 공교롭게도 모두 채식이었다. 사장님이 채식주의자일까. 건강하고 속 편한 아침을 준비하다 보니 생긴 우연의 일치일까.
뭐든 좋았다. 시장에서 사 온 감자떡, 감자, 천도복숭아까지 더해져 두 번째 아침도 푸짐하고 무해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춘천에 들러 메밀막국수를 먹었다. 여기도 손님이 많은 맛집이었다. ‘양념 따로’ 옵션으로 주문해 아이와 국수를 나누어 먹고 수수부꾸미를 추가로 주문했다.
수수부꾸미는 엄마가 참 좋아하는 음식인데 아이도 할마니 입맛을 닮았는지 너무 잘 먹었다. 또 먹고 싶다는 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는 할머니가 손주를 위해 포장 주문을 추가했다.
그 사이에 낀 나의 역할은 준비된 용기를 내미는 것.
춘천에서의 마지막 시간은 뜨거운 더위를 달래줄 시원한 커피였다. 춘천 시내가 바라다보이는 전망이 좋은 카페였는데 애석하게도 다회용 컵이 제공되지 않았다. 이상했다. 분명 머그와 유리컵이 엎어져있는 게 보이는데도 일회용 컵을 쓴다는 것이.
“왜 다회용 컵에 제공되지 않는 건가요.”
사람 없는 평일엔 다회용 컵을 사용하지만 주말엔 매장 안에서도 일회용 컵을 쓰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에게 다회용 컵을 제공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하니 요청해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차로 돌아가 텀블러들을 꺼냈다. 입구가 좁거나 크기가 작은 텀블러들은 음료를 담기 적합하지 않아 곤란했다. 결국 두 잔만 텀블러에 담아달라고 했고 나머지 두 잔은 다른 사장님이 오셔서 다회용 잔에 받을 수 있었다. 빨대는 빼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이의 요거트 음료에 꽂혀서 나왔다.
고군분투하다 커피를 받고 자리에 앉으니 다행스러우면서도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요청이 무리한 것이었을까. 그럼 더 이상 난 어떻게 해야 했을까.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일회용 컵에 마셨으면 되는 일이었을까. 텀블러가 아닌 머그컵을 가지도 다녀야할까.
세상이 흘러가는 것을 거스르지 않는 것, 그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을까.
그렇게는 못하겠다.
아이와 함께 박물관에 들렀다. 드넓게 펼쳐진 습지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곳이었다. 박물관 안 전시실을 둘러보다 빨간 우체통 하나를 발견했다. 1년 뒤에 보내주는 느린 우체통이었다. 신기한 아이는 사촌 누나, 형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아직 글을 모르니 ‘같이 놀자’는 말을 몇 줄로 늘여 대신 써주고 함께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1년 뒤에 이걸 받아본 누나, 형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30년 뒤에 편지를 보내주는 우체통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계절은 그때와 얼마나 다를까. 내가 지금 어른으로 살아가는 세상과 아이가 어른으로 살아가야 할 30년 후는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암울한 이야기들을 덮어둔 채 그때는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여행이 얼마나 지속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화려하지 않은 다섯 살 여름날의 여행이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괜찮다. 아이의 무의식 속 작은 점 하나가 되어 정서의 파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숱한 노력들을 몰라줘도 괜찮다. 알아주길 바라서가 아니라 사랑하니까 다 주는 거다. 내 방식의 가치와 의미와 시간들을.
즐거웠다. 그리고 편했다. 어렵지 않았다. 엄마가 플렉시테리언이라서. 남편이 나보다 제로웨이스트를 더 잘 실천해서. 아이가 입 닦을 때 손수건을 익숙해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