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의 효용가치에 대해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자격증 하나로 갑자기 강의를 많이 하게 된다거나 새로운 기회가 바로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ESG 인플루언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공부가 하고 싶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닌 내 안에 쌓일 내공이 필요했다. 여태껏 책과 다큐멘터리, 뉴스 등을 통해 환경에 대한 지식을 쌓아왔는데, 워낙 광범위한 문제라 한 번쯤은 체계적인 틀 안에서 지식을 정리해놓고 싶었다.
업을 전환해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그 필요성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제로웨이스트샵은 단순히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원 순환과 친환경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거점이 되어야 하니 내공을 쌓고 싶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할 일도 많아지고 다양한 매체에 인터뷰할 일이 늘어나다 보니 설득력과 전문성에 있어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ESG의 개념은 환경 외에도 사회, 거버넌스까지 포함하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가졌던 분야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했다. 다소 낯설고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린 인플루언서가 아닌 ESG 인플루언서 자격증을 준비하게 된 건 더 흥미로웠고 내가 여태껏 해왔던 일과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환경에 대한 기초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상황에서 조금 더 파고들어 공부할 만한 분야가 필요했다. 오랫동안 패션 브랜드 컨설팅을 해왔었기에 환경을 중심으로 기업의 경영 방식이나 전략, 마케팅을 다룬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해왔던 일의 노하우를 모두 버리는 게 아니라 친환경이라는 가치관으로 치환하게 된다면 더 즐겁게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공부하며 갖게 되었다.
'친환경'이라는 넓은 영역 안에서 다소 흐릿하게 느껴지던 나의 방향성에 대해서 조금 더 뾰족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지금까지 제로웨이스트와 채식을 실천하며 했던 활동들, sns에 남긴 기록들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인플루언서는 말 그대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기에 활발한 외부적 활동이 자격증 점수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뭐든 내가 열심히 그리고 틈틈이 쌓아 올린 일들이 그냥 흩어지는 건 아니구나. 언젠가는 어떻게든 다 쓸모를 갖게 되는 거구나 싶었다.
6월 15일에 시험을 보고 한 달을 기다렸다. 약간의 자신감은 있었지만 실망하고 싶지 않아 기대하지 않았다. 아니 스스로에게 기대하지 않은 척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한 달이 지난 오늘 합격을 받았다. 내 예상보다 높은 점수로.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준 미션을 성실히 수행하고 성취한 것 같았다. 작게나마 내 안에 작은 내공이 하나 쌓였다는 것에 만족한다.
자격증 하나로 내 인생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준비된 사람이 되었다. 크고 작은 기회가 왔을 때 내밀 수 있는 카드가 한 장 더 생겼고 자신감도 더해졌다.
이래서 공부가 즐거운 거구나. 억지로 해야 하는 공부는 고통이겠지만 스스로 만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깊이를 더하는 공부는 짜릿하다.
자 이제 다음엔 뭘 공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