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에 슬슬 적응이 되어갈 때쯤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어떤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일들과 마주해야만 하는 그 고단하고 지난한 시간들. 아무 일도 없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든 그런 시간들. 마음은 급한데 결과는 바로 따라오지 않는 '계단식 성장'에서의 정체기. 그저 뚜벅뚜벅 쉬지 않고 걸어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그런 시간들이 거대한 산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이 있건 없건, 매출이 좋건 나쁘건 매일 아침 아이를 등원시키고 상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나의 루틴은 계속되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도어락이 아닌 열쇠를 돌려 상점의 문을 열고 불을 키는 일. 입간판을 대신하는 칠판을 내놓고 나면 상점에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포스기를 켜 영업을 시작하고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블루투스에 연결시킨다. 다회용 커피 필터 위에 진한 원두를 차르르 쏟아 하루의 카페인을 충전할 핸드드립 커피를 내린다. 포스기 바로 옆이자 선반 뒤 동굴처럼 만들어놓은 나만의 공간에서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켠 후 노트북을 열어 업무를 시작한다.
아침 오픈 시간에 손님이 오는 일은 드문 일이라 보통은 메일과 스마트스토어 주문을 체크하고 sns에 업로드할 글을 쓰거나 사진 보정, 정산 등 앉아서 노트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처리한다. 오전 11시가 되면 바로 옆 카페가 문을 열고 슬슬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시작한다. 손님을 응대하거나 매장의 물건을 정리하고 사진을 찍고 올리고 전화를 받고 그러다 보면 동업자가 출근한다.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면 상점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따로 또 같이의 시간이다. 함께 해야 할 일들이 있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있다. 정반대의 성향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분업화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주었다. 회의를 할 때, 병뚜껑 키링을 만들 때, 손님이 많을 땐 함께 일하는 시간이다. 반면, 동업자가 자투리 원단으로 현수막과 스크런치를 만드는 시간에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제품 사진을 찍어 스마트스토어에 업로드를 하거나 온라인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이다.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퇴근을 하고 나면 동업자는 혼자서 상점을 지키다 문을 닫는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동네 작은 친환경 로컬 상점의 결과는 어느 날 갑자기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는 수십만 뷰의 릴스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매일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차곡차곡 쌓으며 걸어갈 뿐이다. 새로 생긴 단골손님에 기뻐하기도 하고 자원순환 수거함에 담뱃갑 쓰레기를 버리고 간 행인에 씩씩거리기도 하는 작고 작은 나날들이다.
그래도 켜켜이 쌓아간다. 기다림과 만남과 기쁨과 아쉬움이 뒤섞인 매일의 시간들을 보내며 공간을 채워간다. 환경에 진심이어서, 지나가다 우연히, 몇 번 오다보니 괜찮아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물건을 파는 가게가 아닌 새로운 영감과 친환경 문화의 씨앗이 되는 곳이길 바라며 숨쉬듯 걸어간다. 뚜벅뚜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