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업의 전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적 Apr 03. 2024

초보사장의 꽃샘추위보다 더한 감정기복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사회생활을 안 해본 것도 아닌데 제로웨이스트샵도 꽤나 많이 다녀봤는데 이렇게까지 낯설게 느껴질 수가 있을까. 20대 때부터 엎치락 뒤치락하며 힘들게 쌓아온 내 경력과 노하우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 좀 익숙해진 일들과 이별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자니 다시 사회초년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호기로웠지만 결코 만만치 않았던 그때로.


내 사업하면 신나서 날아다닐 줄 알았다. 해보고 싶은 거 실컷 해볼 줄 알았다. 일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일은 일이었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한 무거운 책임감이 엄습했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는지 그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 하다니 믿을 수 없었다. 왜 또 불편한 마음이 드는지 스스로 알아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하루에도 여러 번 복잡한 마음이 들어 묘했다. 제대로 신나 보기도 전에 왜 나는 새로운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이 못하고 겉도는 것일까.


동업자가 지난 2년간 운영해 온 매장을 이전하는 과정에 합류하여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하게 되었다. 자영업은 난생처음인 데다가 일반적인 가게들과는 운영 방식이 전혀 다른 제로웨이스트샵이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목적이 전부였다면 결코 선택할 수 없었을 거다. 효율보다 가치가 먼저인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시스템이 절실한 업종. 모두가 성장을 꿈꾸지만 생존이 급선무인 곳. 그게 바로 내가 선택한 '제로웨이스트 샵'의 정체였다.





너무 모르고 선택한 건 아닐까.



부동산 계약 후 임대인과 여러 사항에 대해 협의하고 인테리어 하는 일련의 과정들에 나는 어리바리했다. 동업자가 없었다면 큰 실수를 여러 번 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자영업에 있어 신생아였다. 나의 똑부러짐은 그런 기초적인 것들이 잘 갖춰져 있을 때 발현되는데 그 기초 공사가 없는 상태에서는 망망대해에 띄워진 한 척의 작은 돛단배처럼 연약하고 불안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천상 직장인이었던 거다. 천만다행으로 몰라서 저질렀어야 할 초보자의 난감한 실수는 경험이 풍부한 동업자 덕분에 예방되고 숨겨지고 스쳐 지나갔다.


기존의 이름, 운영 방식, 재고 등이 잘 갖춰져 있다는 건 행운이었지만 동시에 동전의 양면이기도 했다. 내 옷이 아닌 다른 사람의 옷을 입은 것 같은 거리감이 느껴졌다. 옷에 있어 중요한 건 예쁜 디자인이나 유명한 브랜드가 아니라, 나한테 어울리고 편해야 한다는 점인데 그 부분에서 결정적으로 핏이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볼 때 콕 찍어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의 결'이 없는 게 묘하게 공허하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당연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간을 견디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함께 한다는 정말 좋으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열네 살 많은 동업자는 나와 성향이 정반대다. 그녀는 솔직하고 손재주가 좋으며 자신의 감각대로 바로바로 실행하는 편이다. 상대적으로 나는 은유적인 표현을 좋아하고 말과 글이 편하며 회의, 계획, 체계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이렇게 다르다는 것은 가까워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 처음엔 몰랐다. 


나의 십몇 년은 일정이 몰아치는 강도 높은 회의, 미팅, 출장, 문서 작업으로 채워졌었다. 브랜드의 일관된 행보를 분석하고 트렌드의 흐름을 지켜보며 변화 포인트를 잡아내는 게 나의 주된 시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맥락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고 일의 방식과 태도가 내 안에 켜켜이 쌓였다. 일을 그만뒀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 내 성향이 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사업을 하며 깨달았다. 의사 결정 과정, 문제 해결 방식 같은 것들이 혼자서 오랫동안 자영업을 해왔던 동업자와 너무도 달랐다.

'

이러한 정반대의 성향은 자꾸만 남편을 떠올리게 했다. 자신의 인생을 진심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가치관이 나랑 너무 닮아있는 그는 사사로운 음악 취향이나 입맛이 놀라울 정도로 나와 다르다. 내가 좋아하지 않을 법한 것만 쏙쏙 골라 좋아하는 남편이라 우리는 정말 상호보완이 잘 된다. 서로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도 반대라 가정 안에서 구멍이 덜 생긴다. 그리고 9년째 같이 살다 보니 드디어 서로에게 스며들어 비슷한 것들도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삼한사온



회사에 처음 입사하면 첫 인턴 기간이 3개월인 것처럼 나의 초보 사장 인턴 기간이 지나갔다. 그동안 나는 봄철 꽃샘추위보다 더한 삼한사온의 감정 기복을 느꼈다. 원래 인턴들이 그렇듯 3일은 괜찮고 4일은 안 괜찮았다. 또다시 4일은 괜찮을 것 같기도 했고 3일은 안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러다 나중엔 괜찮은 건지 안 괜찮은 건지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그렇게 조금씩 일상이 되었고 '나의 일'이 되었다. 


인턴 기간 동안엔 플리마켓에도 나가고 어린이집 환경 클래스도 진행하고 병뚜껑 업사이클링 키링을 만드는 일도 새롭게 시작했다. 매일 그 자리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스마트스토어에 친환경 물건들을 업데이트했다. 희미하게나마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들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그 모든 건 현재 진행형이며 이제는 매서운 꽃샘추위 대신 우직하게 해야 할 것 들을 정돈하는 시간이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