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상하던 업의 전환은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 아주 천천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줄 알았다. 꽤나 우아할 줄 알았다. 현실은 생각보다 더 정신 사나웠다. 13년간 해오던 일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한 시점에 양다리를 걸친 채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래 고민했음에도 막상 결정하고 보니 조금 섣부른 건 아니었나 싶은 혼란이 들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었다. 10대 시절에도 나지 않았던 이마 뾰루지가 3달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기회였다. 누군가 내게 함께 하자고 손을 내미는 일이 몇 번이나 되겠는가. 연봉을 많이 주는 것보다, 책을 내는 것보다 더 귀한 그 한 번의 제안이 나를 뿌리칠 수 없게 했다. 누가 봐도 돈이 안 되는 제로웨이스트샵 운영을 함께 하자는, 나보다 열네 살이나 많은 그녀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정말이지 제로웨이스트샵만큼은 할 생각이 없었다. 숱한 제로웨이스트샵을 다니며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면서도 환경 관련 콘텐츠를 소개하는 큐레이터가 되고자 했지, 내 돈 들여 자본주의 사회를 역행하는 이 일에 발을 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면 계속 프리랜서로 패션 일을 하며 살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내 안의 비전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저 연명할 뿐이었다. 이미 마음이 떠난 지 오래된 일에 대한 결단은 오직 나만이 내릴 수 있었다. 가치관이 변했다고 해서 현실적인 선택을 쉽게 할 수는 없었다. 일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타의적' 불안정 수입의 프리랜서에서 내 돈 들여 손님이 언제 올지 모르는 '자의적' 불안정 수입의 세계로 넘어가는 일을 어찌 쉽게 선택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선택은 해야만 했다. 암흑처럼 새카말지라도, 안개보다 흐릴지라도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꿈만 꿀 수도 없었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다음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걸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