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의 역사는 짧지만, 그 영향력은 매우 빠른 속도로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었다. 단순히 디지털 플랫폼의 기능을 넘어서 우리의 습관에서부터 사고와 소통의 방식까지 바꿔 놓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고,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아도 무엇이든 살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친구와의 대화보다, 방금 울린 메시지 알림이 더 신경 쓰이는 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인다. 다양한 형태의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무엇을 기준으로 모이고, 언제 어디서 모여서 무얼 하는 걸까. 사람들은 언제나 공통적 특성에 따라 모이고 사귀어왔다.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이제 와서 모임의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이유가 무얼까. 참고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공동체는 사회가 정해놓은 학교나 회사 같은 프레임이 아니다. 같은 지역 출신이랄지, 같은 학교 선후배랄지 하는 것들이 가져다주는 유대감이 더 이상 사람들을 묶어줄 수 있는 테두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어떤 감투와 배경을 가졌는가 보다는 어떤 삶의 방식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갈릴 수 있는 성향과 취향으로 모이는 '공동체'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개인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 정해진 프레임 속에 각자를 맞추는 형태가 아닌, 철저히 자율적이고 주최적인 참여의 모임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체적 모임이 사회적 시스템에 무조건 동떨어진 행보인 것만은 아니다. 달라진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은 배움에서부터 먹고사는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선택까지 바꿔놓고 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는 상점도 작품을 보는 미술관도 커피를 마시는 카페도 모두 공간의 경험이 중요해지고 있다. 경험이란 것은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이며 주관적인 것인데, 어떻게 그것을 실체화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적용되는 방식은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컨셉, 익숙한 듯 새로운 공간 디자인, SNS에 업로드할 수 있는 포토존들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 재미있고 즐거운 놀이적 요소나 아름다운 음악, 기분 좋은 향 등 복합적이고 감각적인 것들이 더해진다. 모든 요소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경험의 과정을 조화롭게 만들어낸다면, 그 공간의 경험은 꽤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속 가능한 공간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주제가 있어야 한다. '주제'라는 것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군집하게 만드는 힘으로 컨셉과는 조금 구별되는 의미를 지닌다. 주제 안에는 취미와 취향,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 등 삶의 다양한 개별적 장르들이 담긴다. 이러한 주제들로 채워진 공간은 더 이상 물리적인 개념의 장소가 아닌 모임 그 자체가 된다.
주제가 있는 공간과 모임은 취미를 공유하는 과거의 동호회와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닌다. 숫자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꼭 많은 사람이 모여야 할 필요도 없다. 일대일이어도 상관없다. 각자의 리듬이 있고, 함께 공유하는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자유롭지만 적절한 무게감을 가진 모임이 된다. 사회가 만들어낸 시스템에 들어가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그들이 군집을 이루게 되면서 '불특정 소수를 위한 살롱'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은 마치 인간이 처음 마을을 이루고 사회를 꾸려갔던 아주 먼 과거의 시작점으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가 본질적인 것을 탐구하면 할수록 어떤 편견과 선입견도 없이 시작했던 맨 처음과 맞닿게 된다.
살롱은 18세기 프랑스의 귀족들이 자신의 집에 문인들을 초대하여 작품을 낭독하고 그에 대해 토론과 비평을 나누던 사교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면서 다양한 분야의 많은 이들이 이 사적인 살롱에 드나들었고, 함께 차를 마시거나 공연을 즐기는 형태로 까지 이어졌다.
1920년대 파리에서는 헤밍웨이나 피카소 같은 예술가들이 카페에서 만나 난상토론을 벌이며 서로에게서 영감을 주고받았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간접적으로 나마 그들의 살롱을 경험해볼 수 있는데, 소설가를 꿈꾸는 주인공에게 과거로의 여행은 그 자체로 영감이 되고 새로운 시선을 갖게 만드는 살롱이 되어 주었다.
국내에서도 많은 문학가들이 다방이나 서점을 살롱으로 삼아 교류하고 소통했다. 시인 이상은 1930년대 초 종로 1가에서 '제비다방'을 비롯한 여러 다방을 운영했고, 시인 박인환이 1945년 종로 3가에 차린 서점 '마리서사'는 미술, 문학, 영화계 사람들에게 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자리했었다.
현대판 살롱을 이야기하기 전에 '살롱'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살롱이 영감과 소통의 기점이 된 것은 확실하나, 과거의 모습은 귀족들이 만든 '그들만의 리그'였을 수도 있다. 과거의 살롱을 재현한다는 접근보다는 그 출발의 개념만 가져와서 현재에 유효한 가치관과 재해석을 입힌 앞으로의 살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가까운 과거에도 현대화의 과정에서 비슷한 형태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은 경험을 채우고 영감을 얻는다는 것보다는 경제적 성공 방적식을 공유하고 학습하는 세미나의 모습이 많았다. 유명인의 강연과 그들이 알려주는 꿀팁을 궁금해하며, 그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성공사례를 우리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과거의 가치관이 성과와 성공에 몰두되어 있던 만큼 많은 강연과 세미나들이 찬란한 미래를 그리는 주제와 형태를 취하는 듯했다. 어찌 보면,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성공담'으로 바뀌었던 셈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확신했던 가치관이 무너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우리가 직접 이야기하는 대화의 장'이 강조되고 있다. 카페나 서점에서 좀 더 작은 규모의 워크숍이나 클래스가 열리고, 경제적 성공보다는 자신의 분야에 확실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주제로 이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시각이 하나의 프로젝트 기획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있다. 현대판 살롱을 열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시장을 열고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살롱은 여러 형태로 시험대 위에 올려지고 있다. 돈을 내고 참여하는 독서모임, 유명 마케터나 브랜드 기획자들로 채워진 강연, 미식과 로컬 문화를 탐구하는 주제들. 어쩌면, 또 다른 상업적인 공식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그것들이 소비와 문화 사이에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곳을 궁금해하고 기꺼이 그 시간의 경험에 돈을 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젊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창의적 욕구를 채워주고, 이전과는 다른 삶의 형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안한다.
이상적인 살롱의 형태는 다양한 형태와 분야의 주제들로 모여 서로 이야기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자체로 영감과 소통의 경험이 되는 것이다. 고정된 멘토와 멘티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경제적 성공이 강연자의 자격 기준이 되지 않으며, 누구도 절대적인 우위에서 진리를 설파하지 않는 살롱이라면, 더없이 좋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이상적인 살롱은 존재하기보다는 우리가 끝없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 싶다.
개별적인 모임 하나하나가 쌓여가면서 일관된 방향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서로 다른 만남으로 인한 의외성과 시너지가 더해져 커뮤니티를 형성해나가는 길목에 우리는 지금 서있다. 다수가 아닌 소수의 개인들이 취향과 성향, 삶의 방식에 따라 불특정 하게 모였다가 흩어지고 또 다르게 모일 수 있는 살롱을 기대해 본다.
이 글은 5개월 전 스팀잇에 썼던 글을 수정 및 보완해서 다시 정리한 글인데, 이 글을 쓰고 나는 약 2달 후 '불특정 소수를 위한 영감소'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 가까운 과거를 돌이켜 보니,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던 몇 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방송을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나 혼자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생각한 것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개념들이나 고민의 과정들을 글로 풀었을 때, 그것에 대해 사람들이 반응하고 응원해주었던 것이 동기부여가 되어 나의 실행으로 까지 옮겨진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그 과정 속에서 가상의 살롱을 경험했던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