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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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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 Nov 20. 2020

어떤 기다림 혹은 배회

1

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가운데 혼자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나는 그들처럼 줄을 서서 내내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마음이 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등 뒤로 내게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던 것이다. 아마도 그 시선에는 제까짓 게 뭔데 줄도 안 서고 유난스럽게 구느냐는 식의 힐난이 담겨 있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휘감고 있었기에 온전히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줄지어 선 행렬이 의미 없다고 느낀 것은 주최 측에서 이미 대기표를 나눠주었고 내 번호가 까마득한 후순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

나는 한적한 마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뭔가를 하릴없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누구와 만나기로 했거나 어쩌면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좀처럼 지나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기다림 외엔 별 다른 할일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한자리를 맴돌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다 대문이 열려 있는 어느 집 안마당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그곳에 거대한 조각상이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아마도 성모마리아상이리라 짐작했다. 그 순간 나는 이 집이 대학 후배 L의 집이고 그의 종교를 생각하면 그 조각상이 있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의 집이라 쉽사리 들어갈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어떤 남자가 대문 안으로 들어가 조각상을 둘러보는 모습을 보았다. 조각상이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대문 안쪽을 들여다봤으나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3

아이는 새를 조종할 줄 안다.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새를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게 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아이다. 아이는 참새만 한 크기의 작은 새를 조종하며 노는 중이다. 시골의 한 작은 마을에서 자란 아이에게 그런 능력은 최고의 유희일 것이다. 아이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띤 채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마치 연날리기를 하듯 새를 날리며 언덕길을 달음질친다. 까르륵거리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새는 빠른 속도로 포물선을 그리며 낮게 떨어지다가 땅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다시 솟아오르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새의 곡예비행은 오래지 않아 중단되고 만다. 빠르게 하강하던 새가 적절한 위치에서 방향을 틀지 못하고 땅에 긁히더니 몇 차례 튕기며 나가떨어진 것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의 유희를 지켜보던 나는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어느새 모여든 마을사람들이 새의 장례 행렬을 이루듯 길게 늘어선 가운데 나는 새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한 줌도 채 되지 않는 그것 앞에서 목놓아 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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