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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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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 Nov 24. 2020

혼돈의 기숙사

기숙사 방 안에서 나는 룸메이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각자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은 채였다. 대화라고 해봤자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내용들이었다. 


룸메이트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방학 때 어디에 놀러 갈지, 무엇을 할지 따위의 계획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은 없었지만 어딘가 가슴 한구석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었다. 방학이 되면 모두 기숙사를 박차고 나가 가족이 반겨주는 집으로 향할 테지만 내게는 기숙사가 집이나 다름없었다. 달리 갈 곳이 없는 나를 앞에 두고 자신의 계획을 들려주는 데 골몰하고 있는 그의 입가엔 천진한 미소가 흘렀다.


나는 바깥 세계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마음속엔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이제 곧 대이동이 시작될 참이었다. 학생들이 어느 건물 앞에 운집해 있었고 나 역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오직 그 문만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대열이 건물 주변을 까맣게 뒤덮었다. 아마도 그곳에서 방학식이 열릴 터였다. 학생들은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체격이 우람한 남자가 건물 입구를 지키고 서서 학생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남자는 마치 공항 게이트 안에서 검색대를 지키는 보안검색요원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굵고 낮은 목소리로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며 한 명 한 명 들여보내고 있었는데 그곳을 통과하는 일이 가장 큰 난관으로 여겨질 만큼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던 중 끝없이 몰려드는 학생들로 대열이 흐트러지면서 갑작스레 일대 혼란이 벌어졌고 나는 파도에 떠밀리듯 건물 입구에 다다랐다. 내게도 질문이 던져졌는지 모르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 북새통에 어물쩍 건물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건물 안에는 닫힌 문이 하나 보였다.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미 앞서 들어온 학생들이 기다랗게 늘어선 낮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신발을 벗은 상태로 바닥에 앉은 모습이었다. 


부산스러운 학생들을 감독하던 지도 교사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는 다가와 왜 양말을 신고 있냐며 나를 다그쳤다. 그 말을 듣고 발을 살펴보니 내가 덧신 양말을 신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학생들도 전부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왜 내게만 뭐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 후 교장 선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내 키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마련된 연단에서 재주를 부리며 좌우로 뛰어다녔다. 그러면서 악을 써 댔는데 학생들을 향해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하며 학생들을 다그치고 몰아세웠다. 


나는 참을 수 없어 맞대응했다. 들을 테면 들으라는 기세로 연단을 향해 빈정거림과 야유 섞인 말들을 쏟아냈다. 그 말들은 군중 속에 묻혔고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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