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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헥토르 Nov 30. 2018

휴가 – 포즈난 (Poznan)

어디를 가도 그 지역/도시에 있는 터미널이라든지 역을 통해서 그곳이 얼마나 큰지 또 발전이라는 길을 얼마나 걸어가고 있는지 대강 알 수가 있는 기준이 된다. 포즈난에 도착했을 때 이곳이 얼마나 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는데 터미널에는 깊은 밤과 새벽의 경계선이 굉장히 애매모호한 시간대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설치며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 그리고 깔끔하게 정돈된 역과 함께 있는 쇼핑몰로 이어진 건물. 게다가 내 몸하나 가눌 수 있을 만한 의자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복도에 놓아져 있는 이곳. 생각보다 크다. 포즈난, 폴란드 사람들도 그 어원을 알 수가 없다고 하였는데, 다만 누군가 사람의 이름으로 된 것만은 확실하다고 한다. 


중심 시가지에서 동쪽으로 Warta 강을 상당히 품위 있어 보이는 교회를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이곳은 Warta 강물 줄기로 둘러 쌓여있어 군사적/정치적/종교적으로 상당한 의미와 신비감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담고 있는 Ostrow Tumski, 한국말로는 대성당 섬이란 뜻이다. 폴란드 역사의 시작을 알린 이곳. 인접 동네 Gniezno와 함께 폴란드의 첫 왕조인 피야스트 왕조의 시발점이자 종교적으로도 Mieszko 1세가 966년 이곳 포즈난에서 첫 세례를 받으며 북동유럽을 카톨릭 세계로 안내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중심이 된 곳이기도 하다. Warta강과 오늘날 시내 중심에 있는 Maltakskie 호수를 통해 생명의 젖줄을 이어나가고 하나님과 함께 폴란드 역사를 하나하나 축적해 나갔으리라. 폴란드는 여기에서 시작하고 그래서 그런지 여기 사람들은 새벽부터 분주하다. 제법 추워도 여기 사람들은 덜 추위를 느끼는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뛰고, 자전거를 밟고, 걷는다. 한참을 달려도 좀처럼 강과 나무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사우디와 달리 이곳 폴란드는 공업도시라 불리는 포즈난에서도 강에 강 사람들이 살고, 호수에 호수 사람들이 살며, 언덕에 언덕 사람들이 산다. 질리지 않을 정도로 푸르고, 풍요로움을 가진 이곳. 풍요의 땅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곳은 염소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건물에서나 거리에서나, 조각으로서의 염소는 이곳 포즈난을 상징하는 동물로 존재하고 있었다. 전설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시청에 화재로 소실된 시계탑을 다시 재건한 기념식에서 한 요리사가 그 연회를 기념하기 위한 사슴고기를 굽다가 다 태워먹은 큰 실수를 하고 만다. 이건 마치 회사에서 보고를 하기 위해 엑셀로 몇 시간 동안 작업을 하다가 저장하기도 전에 컴퓨터가 멈추어 버리는 것과 같은 대형참사가 아닌가. 그리하여 요리사는 재빨리 가까운 목초지에서 염소 2마리를 훔쳤는데, 그 염소가 살기를 느꼈는지 그만 시계탑으로 도망가게 되었고, 새로운 시계탑 선반 위에서 염소 2마리가 서로를 뿔로 들이받는 모습을 본 포즈난 시민들이 염소를 잡으러 그 탑으로 황급히 올라갔는데, 참 공교롭게도 그때 탑에서 불이 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염소를 잡으러 간 포즈난 시민들이 탑으로 올라갔던 길이었으므로 재빨리 불을 끌 수가 있었고, 염소 덕에 화재를 막게 되어 기뻐하였으며, 포즈난 지사는 요리를 망친 요리사를 용서하고, 기술자인 바솔로뮤에게 이를 기념하기 위한 뿔로 들이받는 염소 장치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염소는 포즈난을 대변하는 전설로 남았으며, 지금도 시청 앞에서는 매 정오 때마다 뿔로 들이받는 두 마리의 염소가 포즈난을 찾는 사람들에게 볼거리로 남아있다.


새파란 아침, 포즈난의 허파라고 할 수 있는 Cytadela 공원을 방문하여 “Unrecognized”라고 불리는 조각 예술품과 지난 과거의 옛사람들을 떠 올린다. 내 키보다 더 큰 얼굴 없는 조각상들 사이사이로 걸어갈 때면 표현할 수 없는 침묵이 흘러간다. 정처 없이 떠 도는 영혼의 모습을 마주하기에 더욱더 숙연해진다. 


1956년 포즈난에서 처음으로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하여 노동 파업을 한 사건을 기억하는 박물관 앞에 선다. 박물관의 안내자인 담배를 뿜고 있는 중장년의 여성이 내가 들어가는 시늉을 하자 담배를 물며 들어가라고 손짓한다. 한번 자신들의 역사를 느껴보라는 것일까? 


포즈난 하면 역시 크로아상 박물관이다. 폴란드식 크로아상 빵인 St. Martin Croissants의 유래와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의 기회까지 제공되고 있어, 우리가 흔히 먹는 이 빵에 대해 다시 한번 다른 시각으로 보는 계기가 된다. 예전에 유럽의 크로아상 빵은 비엔나 전투 이후에 터키군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이슬람의 상징 문양인 초승달 모양으로 빵을 만들어 먹었다는 것에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폴란드 크로아상은 말발굽의 모양을 따서 만들었다고 설명을 듣게 된다. 유래가 어디든 어떠랴? 맛만 있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빵이면 되지. 이곳에서 의외로 폴란드의 건국 역사를 듣게 되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옛날 체흐, 레흐, 루스라는 삼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각기 집을 나와서 각자의 나라를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그 중에 레흐는 커다란 참나무가 있어 그곳에서 쉬고 있는 중에 커다란 흰 독수리가 레흐 무리의 주변으로 날고 있었다. 그것을 본 무리 중 한 명이 활을 쏘아 떨어트리려 했지만 레흐가 만류하였고, 주위를 둘러보니 땅이 비옥하고 물을 쉽게 구할 수가 있어 그곳에서 폴란드라는 나라를 세우기로 결정하였다는 건국신화이다. 실제로 흰 독수리는 그 이후로 폴란드의 국가 상징이 되었고, 지금도 레흐의 이름을 딴 폴란드 맥주가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가 있다. 한편 체흐는 지금의 체코를 건국하였고, 루스는 우크라이나를 세웠다고 한다. 포즈난에서 멀지 않은 곳에 Gniezno라는 소도시가 있는데, 여기서 폴란드의 초대 카톨릭 왕국인 피야스트 왕조가 10세기에 일어나 지금의 폴란드라는 국가적인 민족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족의 형성도 참으로 우연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나타나는 신화를 보면 그 나라에 대해 보다 더 이해하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만의 신화는 요즘 어디에 있을까? 


[위에서부터 포즈난 올드타운, 크로아상 박물관 수업, 그리고 포즈난 노동파업 박물관 앞]


[19세기에 맥주공장이었지만 지금은 멋진 쇼핑몰로 잡은 포즈난의 명물 중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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