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탈모 치료 도전
딸네미 시집보낼 때까지 머리카락 유지하기
저는 한창이던 20대 후반부터 머리카락에 힘이 없어지더니 슬금슬금 탈모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원생 시절이었는데, 연구를 하느라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머리카락이 빠진 거라고 변명을 해보았지만, 안타깝게도 머리털까지 희생해 가며 했다는 연구 치고는 그다지 눈여겨 봐줄 만한 결과는 없었습니다. 하여간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탈모가 급격히 진행된 건 아니고, 사십 대가 될 때까지 완만하게 진행된 점이라고 할까요? 모든 동물은 나이가 들면 털이 빠지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 입니다만, 아무리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어도 머릿속이 휑뎅그래 해지는 건 결코 유쾌한 상황은 아닙니다. 전 세계 80억 인구 중에 탈모를 원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탈모가 심해지기 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냉큼 결혼을 하고 아이들도 낳아버렸더니, 그 이후로는 저의 탈모가 제문제가 아닌 아내의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사기 결혼이다, 어머니에게 가서 A/S를 요청하겠다 이러쿵저러쿵 말은 좀 많았지만 말이죠. 어쨌거나 남편이 점점 대머리가 되어가는 건 안타까웠던지, 자꾸만 가늘어가는 머리카락의 생존율을 높여보고자 검은콩 같은 머리 나는데 좋다는 음식도 많이 해줘서 먹고, 탈모 방지에 효과가 좋다는 프랑스제 르네휘테르라던지 독일제 알페신같은 비싼 샴푸들도 사줘서 사용했습니다. 얼마나 속도를 늦추었는지 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안타깝게도 탈모의 진행을 완전히 멈추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피는 못 속인다고, 동생도 탈모 때문에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요. 언젠가 가족 식사자리에서 동생이 회사 선배가 효과를 봤다는 탈모 치료 병원을 소개해 줬다면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진료를 받고 처방을 받아서 탈모 치료 약 복용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뭐 약을 좀 먹는다고 효과가 있겠어? 효과가 있으면 세상에 대머리가 없겠지.' 하며 흘려 들었었습니다.
그 후에도 동생을 몇 번 만날 때까진 잘 몰랐는데, 어느 날 식당에서 가족 모임 식사를 하며 술을 한잔 기울이던 날이었습니다. 분명 밝은 조명아래서 휑~했었던 동생의 머릿속이었는데, 이날 보니 뭔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아니~ 동생. 머리숱이 눈에 띄게 늘은 것 같은데?"
"ㅎㅎㅎ 구래?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선배가 추천해 준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서 6개월 정도 먹었더니 이제 슬슬 효과가 좀 나오는 것 같아."
"진짜 효과가 있구나! 그 병원 어디야? 나도 좀 가보자"
"그럴까? 마침 나도 약을 거의 다 먹어서 새로 처방받으러 갈 때 됐는데.. 같이 가지 뭐~"
'이제 낼모레면 50인데 그까짓 머리털 따위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아닌가?' 탈모는 불치병이라며 자포자기했던 저에게 동생의 머리숱 증가는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며칠 후 동생과 함께 탈모 치료로 유명한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S 내과를 방문하였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한참을 대기한 후 의사 선생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제 머릿속을 이리저리 관찰하고 계신 선생님께 제가 조심스럽게 여쭤봤습니다.
"선생님, 머리숱이 지금보다 좀 많아질 수 있을까요?"
선생님께서 저를 힐끔 한번 쳐다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려고 오신 것 아니세요?"
박력 있는 선생님의 대답에는 자신감이 가득했습니다.
"일단 3개월치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하루에 한 번씩 복용하십시오. 사람에 따라 좀 어지러울 수 있으니 가능하면 주무시기 전에 드시기를 추천합니다. 남성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이 포함되어 있으니 어린아이들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이 약을 받아와서 꾸준히 복용하였더니 3개월 정도 지나고 나니 과연 머리 감고 나서 머리 말리는 수건으로 떨어져 나간 머리카락 수가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고, 반년 정도 지나니 주위 사람들이 조금씩 저의 변화를 알아볼 정도가 되었습니다. 탈모약을 꾸준히 일 년 정도 복용했을 때, 이발을 하러 단골 미용실에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십 년 가까이 다니던 곳이라 이곳에서 머리를 깎을 때는 별다른 주문을 하지 않고 미용사님께 제 머리를 오마카세로 부탁하곤 합니다. 그날은 마침 아내와 쇼핑을 다녀오다가 머리를 좀 깎으로 미용실에 들렀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자리에 앉자마자 그날도 미용사님께 제 머리를 오마카세로 일임하였습니다. 머리가 거의 완성이 되어갈 때쯤 미용사님께서 물끄러미 제 머리를 보시다가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제게 의견을 물어보셨습니다.
"숱을 좀 쳐드릴까요?"
뒤편에서 느긋하게 잡지책을 뒤적거리던 제 아내가 화들짝 놀라 미용실 천장에 머리가 닿을 만큼 뛰어오르며 대답을 합니다.
"아니요~! 그게 얼마짜린데요!!"
숱을 치다니.. 정말 십수 년 만에 들어본 말이었습니다. 그냥 예전보다 숱이 좀 늘었다보다~ 정도였었는데, 나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단골 미용실의 미용사님께서 저의 탈모치료의 효과를 확인해 주신 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는 약을 끊으면 차츰 원래대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복용을 중지할 수 없다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아무래도 남성 호르몬을 좀 조절당하고 있기 때문인지 가끔 이유 없이 기분이 센티해지며 눈물이 핑 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신체의 어느 부분이 더 커진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요. 여튼 탈모로 고민하시는 분들, 포기하지 마시고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꼭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살짝 고민입니다. 정말로 이 약을 딸네미 시집보내는 날까지 먹어야 할지 말이죠.